AC밀란
유럽 3대 명문 클럽 중의 하나 오늘은 AC밀란을 소개해 본다.
유럽 3대 명문 클럽(레알,유베,AC밀란) 중에 한팀으로서 그들은 유베와 함께 세리아를 대표하는 클럽이다.
세리아에서는 유베 다음으로 많은 스쿠테토 를 들어올렸으며 챔피언스 리그에서는 세리아 최다,유럽에서는 레알
다음으로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그들은 지역 라이벌 인터 밀란과 같은 홈구장을 사용하면서 전세계 적으로 유명한 밀라노 더비를 탄생시겼다.
흔히, 국내에서 부르는 팀의 애칭이 있는데 맨유,유베,레알, 처럼 밀란은 인터밀란이 아닌 AC밀란을 가르킨다.
인터 밀란은 밀란이 아닌 인터라고 보통 부르고 있다.
이젠 그들의 혼이 살아 숨쉬는 산시로 구장으로 가보자.
산 시로(San Siro)
준공: 1926/09/19(1990 보수)
개장 첫경기: AC 밀란 3-6 인터밀란
수용인원: 8만5,700명
위치: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 밀라노(Via Piccolomini 5, 20151 Milan )
AC 밀란과 인터 밀란에서의 선수 생활을 하며 34년 이탈리아, 39년 프랑스 월드컵
을 우승으로 이끈 이탈리아의 축구영웅 쥬세페 메차를 기리는 뜻에서 쥬세페 메차 스타디움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이 이름은 AC밀란 보다 인터 밀란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름이다.
유럽 명문 클럽들의 대회인 챔피언스 리그에서 산시로 구장은 다른 명문팀들에겐 지옥의 원정길이나 다름 없었다.
현재 07~08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차지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산시로 에서는 극도의 부진을 보여주었고
다른 프리미어 클럽들 뿐만 아니라, 많은 클럽들이 산시로의 뜨거운 잔디위에 눈물을 흘리고 돌아갔다.
이곳은 매년 인터밀란과 AC밀란의 밀라노 더비 경기가 열리는데 이 더비는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더비중의 하나다
프리메라 리그, 레알과 바르셀로나 의 클래식 더비 ,
프리미어 리그,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붉은장미전쟁 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경기로 손 꼽히고 있다.
밀라노 더비의 열정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산시로의 아이들
인테르 밀란
AC밀란
양팀 서포터스의 엄청난 열정, 승리에 대한 갈망 그리고 승리.
[AC밀란 : 인테르] 역대 전적
★인테르----->>AC밀란 상대로 역대 전적(인테르 홈페이지 기록이므로 인테르 측면에서~)
Serie APldVDLGFGShome84292827126120away84312429118110168605256244230 Champions LeaguePldVDLGFGShome201111away201102402213 Coppa ItaliaPldVDLGFGShome113441013away124351219237792232 TOTALPldVDLGFGShome97323332137134away98352835130131195676167267265
pld= 경기수 , GF= 득점, GS= 실점
세리에A, 코파이탈리아, 챔스 포함 195경기를 한 2007년 현재까지의 기록은 동률~
★AC밀란 : 67승 61무 67패 265득점 267실점>>
★인테르 : 67승 61무 67패 267득점 265실점>>
여기에 그 밖의 다른 경기 71경기 포함하여(195+71= 266) 266경기~
[MILAN DERBY STATS]
(last update after Inter 2 1 AC Milan, Mar. 11, 2007) Inter victoriesDrawsAC Milan victories
Total no. matches pld
Inter goals
AC Milan goals
Serie A
605256168
244
230
Coppa Italia
77923
22
32
Champions L.
-224
1
3
Other23113771*
126*
159*
Total
9072104266*
393*
424*
1908년 10월18일 스위스에서의 경기를 시작으로 2007년 6월까지 통합 266경기를 한 결과~
★ 인테르 : 토탈 90승 72무 104패 393득점 424실점>>
★ AC밀란 : 토탈 104승 72무 90패 424득점 393실점>>
인터 밀란과의 밀라노 더비 경기에서 AC밀란은 다소 우위에 있다.
이것은 리그 성적이나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증명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대 세리아 스쿠테토를 들어 올린팀을 순위로 나열하면
1.유베
2.밀란
3.인테르 순이다.
그리고 챔피언스 리그 순으로 나열해 보면
1.AC밀란
2.유베
3.인테르 밀란 순이다.
그렇다면 AC밀란의 찬란했던 역사를 돌아보자.
유벤투스, 인터 밀란과 함께 이탈리아 축구를 대표하는 클럽 가운데 하나인 AC 밀란은 1899년 영국인 알프레드 에드워즈(Alfred Edwards)에 의해 Milan Cricket & Football Club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되었다.
1905년 Milan Football Club으로 이름을 바꾼 밀란은 이후 30여년이 지난 1938년 현재의 이탈리아식 클럽명인 AC 밀란(Associazione Calcio Milan)이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속에 1908년 클럽 멤버 중 일부가 분파해 새로이 창단한 클럽이 바로 현재의 인터 밀란(Internazionale)이기도 하다.
AC 밀란은 창단 2년째인 1901년 사상 첫 타이틀을 따내는데 성공했다.
비록 전국적인 규모의 리그가 탄생하기 전의 일이긴 했지만 클럽의 짧은 연륜과 당시 이탈리안 챔피언쉽에서 3연패를 거두던 제노아의 아성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이들이 거둔 성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홈구장: Stadio San Siro
수용인원: 85,700 명
이후 세리에 A가 정식출범하기 전까지 두차례의 우승을 더 보태는 데 성공한 밀란은 1926년 홈구장인 산 시로(San Siro) 스타디움의 완성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1907년 이탈리아 챔피언쉽을 차지한 뒤 반세기에 가깝도록 리그 우승과 인연이 없었던 밀란이 다시금 이탈리아 리그 타이틀을 거머쥔 것은 50/51 시즌의 일이었는데 이는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스웨덴을 우승으로 이끈 주역 3인방 군나르 그렌(Gunnar Gren), 군나르 노달(Gunnar Nordahl), 닐스 리에드홀름(Nils Liedholm)의 영입에 힘입은 바 크다.

▶AC밀란의 간판 스트라이커 안드레이 셰브첸코 [게티이미지/유로포토]
54/55 시즌 또한 차례 우승을 보탠 밀란은 이후 50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에 월드컵을 안겨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우루과이의 축구영웅 후안 스키아피노(Juan Schiaffino)를 페냐롤로부터 당시 세계 최고의 이적료인 7만2천 파운드에 영입하면서 50년대 후반 두차례의 리그 타이틀을 보탠 것을 비롯, 챔피언스 리그에 나서 유럽 최고의 클럽타이틀을 놓고, 초대 타이틀을 시작으로 유러피언 컵 5연패의 금자탑을 쌓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와 치열한 각축(56년 준결승, 58년 결승)을 벌였지만 고대했던 클럽 최초의 유러피언 컵 획득은 63년에 가서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경제 호황의 순풍이 축구계에도 불어닥쳤던 60년대 밀란의 황금기를 주도한 인물은 59년 단 16살의 나이에 밀란 유니폼을 입게 된 지아니 리베라(Gianni Rivera)였다.
같은 시절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던 잉글랜드의 조지 베스트와 비틀즈의 인기에 맞먹을 정도로 자국 이탈리아의 우상으로 떠오른 리베라는 각각 두차례의 챔피언스 리그 우승(63년, 69년)과 컵위너스 컵 우승(68년, 73년), 그리고 리그 우승(61/62, 67/68)을 안겨다 준 보배와 같은 존재였다.
70년대에 접어들어 초반 코파 이탈리아에서의 연속우승(72, 73년)과 컵위너스 컵 우승 등으로 지난 영광에 버금가는 성적을 유지해오던 밀란은 재정문제에 얽힌 구단 내부의 문제와 스캔들로 인해 안팎으로 잡음이 일기 시작했다.
78/79 시즌 한차례 스쿠데토를 차지하긴 했지만 다음 시즌 라치오와의 리그 경기에서의 승부조작 사실이 인정돼 80/81
시즌 클럽사상 초유의 세리에 B 강등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클럽의 자존심에 상당한 손상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한차례의 세리에 B 강등을 경험하면서 파산직전에 몰린 AC 밀란은 1986년 현재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가 구단의 소유와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서 클럽 혁신의 일대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 02-03시즌 베스트11 [게티 이미지/유로포토]
미디어 재벌이자 총리를 역임한 바 있는 베를루스코니는 약 2천만 파운드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최정상급의 슈퍼스타들을 끌어모아 클럽의 운명을 변화시키는데 성공했다.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와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와 같은 세계적인 명장들과 오렌지 3총사로 일컬어지는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 루드 굴리트(Ruud Gullit), 프랑크 리카르트(Frank Rijkaard)와 이탈리아 수비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프랑코 바레시(Franco Baresi), 파올로 말디니(Paolo Maldini) 등이 한데 어우러진 밀란은 그야말로 최강의 팀이라 불리기에 손색없는 팀이었다.
87/88 시즌 리그 우승을 시작으로 밀란 시대의 서막을 알린 이들은 89년과 90년 연속해서 챔피언스 컵과 인터컨티넨탈 컵(도요타 컵)을 따내면서 90년대 이탈리아 축구의 황금기를 주도했고, 93년부터 95년까지 3회 연속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해 94년 바르셀로나를 4대0으로 대파하고 한차례 우승을 더 보태, 89년부터 95년 사이에만 총 5번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 진출해 세번의 우승컵을 품안에 안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 같은 밀란의 성공은 자국리그에서의 성공이 밑받침되었다 할 수 있는데 90년대만 다섯번의 스쿠데토를 차지함은 물론, 90/91 시즌부터 92/93 시즌까지 무려 58경기 연속무패의 기록은 90년대 밀란이 보여준 그 누구도 범접키 힘든 위용을 잘 대변해 주는 지표라고 말할 수 있겠다.
앞서 언급한 오렌지 3총사를 비롯한 선수들 이외에도 조지 웨아(George Weah), 장 피에르 파팽(Jean Pierre Papin),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cevic),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로베르토 바지오(Roberto Baggio) 와 같은 수많은 슈퍼스타들이 밀란의 90년대를 장식한 선수들이다.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예전의 면모와는 사뭇 다른 면모로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감이 없지 않은 밀란이지만 과거 그들의 찬란했던 한때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밀란은 여전히 최고의 팀이 분명할 뿐더러, 새로운 비상을 향한 그들의 날갯짓은 언제라도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AC밀란 역사 "출처: 싸커 라인
밀란의 리그와 챔스 및 주요대회 성적
★세리아 A : 우승 17회
★코파 이탈리아 : 우승 5회
★이탈리안 슈퍼컵 : 우승5회
★챔피언스 리그: 우승7회
★컵 위너스 컵 : 우승2회
★유로피언 슈퍼컵: 우승4회
★인터컨티넬탈 컵: 우승3회
밀란의 영광을 함께한 전설적인 선수들과 골든 제너레이션
밀란은 다른 명문팀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선수들이 활약 했으며 팀 명성을 높혀왔다.
리베라, 오렌지 삼총사라 불리는(레이카르트, 쿨리트, 반바스텐) 조지웨아, 데안, 바레시,세브첸코,카투소,말디니
카카,등등 많은 전설적인 선수들과 전설을 만들어 가는 선수들이 클럽에 충성을 다하고 있다.
지아니 리베라와 Serie-B로의 강등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리베라>
60~70년대의 AC밀란을 이끌었던 선수는 AC밀란 최다 출장기록(501경기)을 가지고 있는 지아니 리베라(Gianni Revira)였다.
그가 AC밀란에 안긴 우승컵은 챔피언스리그 2회(62-63, 68-69), Serie-A 3회(61-62, 67-68, 78-79),
코파 이탈리아 4회(66-67, 71-72, 72-73, 76-77), 컵 위너스컵 2회(66-67, 71-72), 인터콘티넨탈컵 1회(1969) 등으로 이루 셀 수가 없을 정도이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추앙받는 리베라는 1969년엔 이탈리아 선수 로서는 최초로 -9;유럽 최우수 선수상-9;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78-79시즌에 AC밀란의 10번째 스쿠데토를 이루고 난 뒤 리베라가 은퇴하자(그는 그후 정치가로 변신했다.), AC밀란 최대의 위기가 찾아오고 말았다.
클럽 창단이후 최초의 Serie-B 강등이라는 수모를 겪고 만 것이다.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AC밀란-라치오의 경기에서 AC밀란의 구단주와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관여했기 때문이었다.
이사건으로 인해 당시의 구단주 펠리체 콜롬보(Felice Colombo)는 축구계에서 영구 추방당했으며, AC밀란은
80-81시즌을 Serie-B에서 보내야만 했다. 다행히도 1년만에 다시 Serie-A로 복귀하기는 했지만, 복귀한 시즌에
14위를 차지하며 82-83시즌에는 -9;진정한 실력으로-9; Serie-B로 강등되었다.

<오렌지 삼총사(레이카르트, 굴리트, 반 바스텐). 이들은 이미 AC밀란의 전설이 되었다.>
이런 암흑기가 끝나게 된 것은 현재의 구단주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986년에 팀을 인수하면서부터였다.
이탈리아 최고의 언론재벌인 베를루스코니는 취임 즉시 그의 지갑을 열어 오렌지 삼총사<루드 굴리트(Ruud Gullit), 마르코 반 바스텐(Marco Van Basten), 프랭크 레이카르트(Frank Rijkaard)>를 영입했고, 그 결과는 87-88 Serie-A, 88-89, 89-90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나타났다.
AC밀란에서 이같은 성공을 거둔 당시의 감독 아리고 사키(Arrigo Sacchi)는 1991년 11월에 이탈리아 대표팀의 감독을 맡기에 이르렀다.
사키가 떠났어도 파비오 카펠로(Fabio Capello)가 새로이 지휘봉을 잡은 AC밀란의 행진은 끝이 없었다.
오렌지삼총사의 활약에 프랑코 바레시(Franco Baresi), 로베르토 도나도니(Roberto Donadoni), 파울로 말디니(Paolo Maldini), 디메트리오 알베르티니(Demetrio Albertini) 등의 이탈리아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AC밀란은 4번의
스쿠데토(91-92, 92-93, 93-94, 95-96)와 93-94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일구어냈다.
이 기간동안 조지 웨아(George Weah), 데얀 사비체비치(Dejan Savicevic), 장 피에르 파팽(Jean Pierre Papin),
로베르토 바지오(Roberto Baggio) 등의 쟁쟁한 스타들이 AC밀란을 거쳐갔다.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선정된 바레시>
물론 위에 언급한 모든 선수들이 위대하지만, 바레시는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하다
.
1974년(15세)에 AC밀란의 유스팀에 입단한 뒤로 AC밀란이 2번이나 Serie-B로 강등되는 동안에도 팀을 떠나지 않고 1997년 은퇴할때까지 오직 AC밀란에서만 뛰어온, 이탈리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바레시. AC밀란과 서포터들은 그의 등번호 -9;6번-9;을 영구결번 시키기로 했을 정도이다.
구단주 베를루스코니는 AC밀란을 발판삼아 1994년엔 이탈리아 총리에 당선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AC밀란의 이 위대했던 시기, 58경기 연속 무패라는 위업을 달성한 이 시기는 -9;밀란 제너레이션(Milan Generation)-9;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 영광의 21세기
98-99시즌 기적의 스쿠데토를 달성한 후 밀란은 밀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입중 하나라고 할수 있는 우크라이나의
안드레이 쉐브첸코(Andriy Shevchenko)를 2000만달러에 영입하게된다.
그 뿐만 아니라 제2의 밀란 제너레이션의 축이라고 할수있는 젠나로 가투소(Gennaro Gattuso)와 세르징요
(Serginho) 까지 영입을 함으로서 자케로니는 99-00 시즌 우승을 향한 일념을 내세우지만 아쉽게도 밀란음
라치오와 유벤투스에 밀려 리그 3위를 차지하게 된다.

- 왼쪽부터 세르징요, 가투소, 쉐브첸코 -
그리고 다가온 00-01 시즌은 밀란에게 있어서 암흑기와 다름없는 시즌이었다.
리그에서는 6위를 하는가 하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별다른 힘을 보여주지 못한채 시즌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쉐브첸코만이 24골을 넣음으로서 득점왕 2위라는 기록만 남겼을뿐 그 어떤 타이틀도 따지 못한채 밀란은
챔피언스리그가 아니라 4 ~ 7위까지 나갈수 있는 웨파컵에 진출하게 된다.
00-01시즌을 마지막으로 즈보니미르 보반(Zvonimir Boban), 올리버 비어호프 (Oliver Bierhof)같은 선수들이
이적을 하게된다.
하지만 이 기간에도 밀란에게 최고의 경기가 있었으니 바로 밀란더비에서 인테르 밀란을 6 : 0 의 점수로
이긴것이다. 형식상 인테르 밀란 홈이기도 했던 이 경기에서 코만디니(2골), 쉐브첸코(2골), 세르징요
(1골 3어시스트), 지운티(1골)의 골로 6 : 0의 승리를 장식, 밀란더비 역사상 최대의 골 스코어가 난것이다.
이경기에서 인테르 역사상 가장 최악의 더비결과가 나오자 팀의 간판 스타였던 비에리(인테르)는 눈물을
떨구고만다. 그리고 이 날의 히어로 세르징요는 가제타 델로 스포르티지에서 평점 9.5라는 점수를 받으며 최고의 평점을 받게 된다.
00-01시즌의 암흑기가 끝난뒤 베를루스코니 밀란 구단주는 피오렌티나의 슈퍼스타 루이 코스타와 유벤투스의
필리포 인자기, 인테르 밀란의 안드레아 피를로, 스페인 알라베스의 콘트라와 하비 모레노를 영입하고
감독도 체사레 말디니에서 파테흐 테림으로 감독교체를 감행한다.
하지만 01-02 시즌 초반에 파테흐 테림은 성적부진이라는 이유로 밀란감독에서 잘리고, 후임으로 전 유벤투스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Carlo Ancelotti) 감독을 역임하게 된다.
당시 감독교체에 밀란팬들 대다수가 의문과 불만을 품었었는데, 그 이유가 성적이 그다지 나쁘지도 않았고
안첼로티 감독의 전술스타일이 당시에는 수비적이었고 우승한번 한적이 없는 감독을 밀란감독으로 하려는데에서
나온 것이었다.(하지만 안첼로티 감독이 당시 유벤투스에서 2위를 할때의 승점이 마르셀로 리피 감독이 이끌었던
01-02, 02-03 시즌 승점보다 높았었다.)

- 제2의 밀란제너레이션 발판을 마련해준 피포, 루이코스타, 피를로 -
하지만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은 당시 공격형 미드필더였던 피를로를 수비형 미드필더(레지스타) 자리로 옮겨놓으면서
피를로의 장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가장 피를로에게 맞는 포지션을 찾아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커리어사상 최악의 시즌을 맞은 루이코스타와 잦은 부상으로 몇경기를 뛰지못한 파올로 말디니의 부재로
인해서 밀란은 리그를 시즌 4위로 마감하게된다.
이 기간에 밀란은 웨파컵 4강에서 도르트문드에게 무릎을 꿇고만다.
01-02 시즌 역시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밀란은 인테르 밀란에서 클로렌스 쉐도르프(Clarence Seedorf)를
코코와 맞트레이드, 페예노르트의 에레디비지 득점왕 욘 달 토마손(John Dahl Tommason)을 자유계약으로,
인테르 밀란의 시미치 역시 밀란으로 자유이적 시키고, 별 다른 재미를 보지못했던 하비 모레노와
윙백이 너무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콘트라를 내보내게된다.
그리고 수비진의 불안을 단번에 해소시킨 라치오의 간판스타 알레산드로 네스타를 영입하게된다.
02-03 시즌은 밀란에게 있어서 암흑기를 내보내고 다시금 과거의 영광스러운 밀란으로 돌아가는 시즌이었다.
안첼로티감독의 전술인 4-3-1-2 에서 3미들 왼쪽의 선수가 쉐도르프가 오기전까지 세르징요였는데
크로스는 리그 최고지만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나 여러가지 패싱력에 있어서 아쉬운 부분이었는데
그 모델에 있어서 최고인 쉐도르프를 영입함으로서 진정한 4-3-1-2 포메이션이 완성된것이다.
이 시즌 밀란은 같은 세리에-A 팀이자 라이벌팀은 유벤투스와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맞붙고 마지막 승부차기끝에
AC밀란이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안첼로티 감독 커리어사상 첫번째 타이틀이자 첫번째 챔피언스리그 타이틀이었다.
또한 이시즌 영입한 쉐도르프는 3개의 팀에서 각각 한번씩 3번의 챔피언스리그를 차지한 이색적인 기록을 남기게 된다.
첫번째 타이틀은 아약스였고, 두번째는 레알 마드리드, 세번째가 밀란이 된것이다.
그리고 그 해 밀란은 코파 이탈리아까지 우승함으로서 더블을 하게된다.
02-03시즌 최고의 시즌을 맞은 밀란은 03-04 시즌전에 펼치는 이탈리아 슈퍼컵에서 코파 이탈리아 준우승을
한 라치오를 맞아 3 : 0 으로 승리하게 된다. 이경기의 영웅은 안드레이 쉐브첸코였는데 진정한 헤트트릭이라고
할수 있는 오른발, 왼발, 헤딩으로 골을 넣는다
03-04 시즌은 몇년간 이루지못한 스쿠데토를 차지하는 해가됐다.
그 첫번째 바로 브라질 상 파울로에서 영입한 신성 카카(Kaka-9;)의 영입이었다.
원래 카카는 첼시에서도 영입하려고 했었는데, 밀란의 스카우터이자 부단장인 밀란의 슈퍼스타였던 레오나르도(Leonardo)의 힘에 의해서밀란으로 이적하게 된것이다. 하지만 원래 안첼로티 감독역시 카카를 영입하자마자 주전으로 쓸 생각은 아니었다.
첫시즌을 임대보낸뒤 그 활약에 따라 다음시즌에 밀란선수로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훈련에서 안첼로티감독의 마음이 바뀐것이다.
카카의 훈련을 본 안첼로티 감독은 이 선수가 보통선수가 아님을 깨닫고 밀란에 잔류, 결국 03-04시즌 루이 코스타와의 포지션경쟁에서 승리, 주전을 차지하게 된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라치오에서 임대해서 매우 쏠쏠한 재미를 본 쥬세페 판카로(Giuseppe Pancaro)의 역할과
AS로마에서 자유계약으로 영입한 카푸의 존재는 스쿠데토를 차지하는데 매우 큰 역할을 하였다.
이 해 카카는 세리에-A 최우수 선수상 및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을 획득 이적첫시즌을 그의 해로 만들어버리고
AC밀란은 17번째 스쿠데토를 획득하게된다.
AC 밀란의 미래 "파투"
AC밀란의 미래이자 브라질의 신성 "파투"
그의 데비무대는 가히 충격이었다고 볼수가 있을 정도로 엄청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원래 본 소속은 인터밀란에 있었지만 2007년 라이벌 AC 밀란으로 이적하면서 그는 드디어 밀란의 미래가 된다.
카카 파투 이 최고의 선수들이 있기에 밀란의 역사는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나갈수 있을 것이다.
AC밀란의 영광의 순간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그들은 세계 최고의 팀들중 하나이며 그들의 역사는 위대했다
그리고 앞으로 밀란을 이끌어갈 파투와 카카의 존재는 그들이 또 한번 역사를 쓸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유독 챔피언스 리그에서 강한 밀란이지만 이제 리그에서도 그들은 우승할수 있는 능력을 갖출수 있게 되었다.
지난 시즌 그들은 극도의 부진을 보이면서 추락했지만, 그들은 다시 날아 오를 것이다.
리그 경쟁자인 유벤투스의 복귀로 인해서 한층더 우승 하는데 힘들어 할 것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유베,인테르 를 꺽고 왕자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