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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경여행하기

박찬덕 |2008.06.29 18:37
조회 222 |추천 6

도쿄 여행하기

 

도쿄에는 현대적인 오피스빌딩 숲 사이에서도 전통적인 믿음과 가치관의 경전처럼 옛 신사(神社)가 고연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신록이 우거진 고전적인 풍경의 정원 속에 자리잡은 정자와 찻집에서부터 레게바나 디스코텍 등의 현대적인 오락시설까지 여행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여 여행자의 어떤 욕구도 충실히 만족시켜 줄 수 있는 도시다.


◈기후
4계절의 변화가 서울보다는 뚜렷하지 않으며, 연평균 기온은 15℃ 연 강수량은 1,400mm 이다. 장마가 6월 중순경부터 시작되므로 봄·가을에 여행하는 것이 좋다. 서울과 날씨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인구 및 면적
일본 동쪽의 태평양에 펼쳐져 있는 도쿄만에 자리하고 있다. 도쿄의 북부는 비옥한 관동평야에 위치하고 있고, 현재 인구는 약 1,200만명을 넘고 있다. 일본인구의 45%이상이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나고야 (名古屋)등 3대 도시와 그 인근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인구별로는도쿄가 최대이다. 도쿄의 면적은 2,183㎢로 서울의 3배이며, 인구 밀도는 5,482.1명/㎢로 일본 최고이다.


◈도쿄의 역사
메이지 천황은 즉위식 후에 연호를 메이지로 고치고, 에도란 이름 도쿄라고 선포함으로써 현재의 일본의 수도로 자리잡았다. 1868년 도쿄가 새 수도로 선포되기 전에 일본의 수도는 실질적으로는 교토(가마쿠라)였다.

쇼군(將軍)을 중심으로 다이묘(大名)와 무사가 거주하는 지역, 이를 야마노테로 불렀고, 상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시타마치(下町)로 불렀으며, 이것의 잔재는 현대에도 많은 지명이나 지역에서 보여진다.

도시의 과밀화방지계획에 의해 도쿄 근교로 중고층 주민들을 위한 공동주택 대단지들이 들어서고, 일본의 현관이라고 불리우는 나리타(成田)에 국제공항을 세웠다.

17세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에도(江戶)로 수도를 옮기며 실질적인 수도가 에도가 되었다. 에도는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에야스는 우선 절대권력을 지니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추진하는데, 가장 먼저 행했던 것은 새로운 다이묘들을 임명하는 것이였다. 그리고 다이묘를 세등급으로 구분해서 차별을 한것이다. 이런 차별대우로 변방으로 내몰린 도자마다이묘들은 후에 막부의 세력이 약해지고, 쇼군의 권위가 떨어지자 가장 먼저 저항을 벌이고 정권을 쥐게 되는데, 훗날 이 지역이 메이지유신의 주역들의 출신지인 죠슈, 사츠마, 한 지역의 사람들이된다.

막부시대에는 무사계급과 농민을 철저히 구분했고, 이당시의 신분제도인 사농공상이 확실하게 이루어진다. 이렇게 병농분리 정책으로 조카마치(城下町), 즉 성아래 마을이 생기며, 쇼군이나 다이묘들의 일을 봐주며 행정일을 하며 성아래에 사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된다.

1607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난후 9년이 지나, 메이지유신이 일어나기 전까지 우리나라와 일본은 우방의 관계로, 조선 통신사가 12번 왕래를 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조선, 중국을 제외하고 다른 외국과는 교류를 하지 않고 쇄국정책을 취한 일본은 1853년 미국함을 끌고온 페리제독에 의해 문을 열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 들이게 된다.

에도시대는 쇄국정책으로 외국과의 교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부키(歌舞技)등과 같은 일본전통적인 문화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메이지(明治)시대에 이르러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은 도쿄의 긴자(金座)거리에 빨간 벽돌의 서양식 건물이 늘어서고, 도로에는 가스등이 설치되는 등의 생활전반에 걸친 문화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는 도쿄 곳곳에 남아있는 건축물들을 보면 알 수 있다.도쿄시내를 걸으며 그 당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는 것도 즐거울 것 같다.

 

from phil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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