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홍차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

브리즈 |2008.07.10 11:03
조회 187 |추천 2

로열 밀크티의 기원

영국의 밀크티는 1655년 중국 황제의 만찬회에 초대된 영국대사가 우유를 넣은 무이차를 마신것이 그 기원.

영국의 차는 거의 떫은 맛이 강한 차였기 때문에, 떫은 맛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유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밀크티는 보다 부드럽고 우아한 밀크티로 진화된 것.

 

홍차는 받침 접시로 마시는것?

홍차는 그 옛날, 받침 접시에 마셨다.

주전자에 차를 끓여 우유를 첨가해, 컵에 붓고 설탕을 녹인 후 받침 접시에 옮겨서 마셨다는 얘기다.

1680년 네덜란드에서 귀국한 요-크공 부인에 의해 소개된 것이다.

현재, 홍차 왕국인 영국에서는 이것이 터무니없이 비상식적인 방법이 되어 있기는 하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차를 마신 신

뜨거운 물에 잎을 넣어 마시는 것을 생각해 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

잎 나무의 뿌리이기도한 중국에 이런 전설이 남아있다.

수천년전, 농경의 신이라 불리는 염제신농이 뜨거운 물을 마시려고 물을 끓이고 있을때,

가까운 곳의 나뭇잎이 물 속에 빠졌다.

이것을 모른 채 마셔보니 맛과 향이 매우 좋았다

이것이 차를 마시게 된 유래라고 한다.

 

나폴레옹은 홍차의 마니아?

나폴레옹은 사실 홍차를 매우 좋아했던 인물.

그가 지휘하는 군대에는 홍차병이라고 불리는 병사가 배치되어 있어, 한창 전투중에도 전선의

병사들에게까지 홍차가 배달되었다.

나폴레옹 자신도 전장에서, 애용하는 은소재 포트에 홍차를 끓여 티타임을 즐겼다고 한다.

 

애프터눈티의 유래

영국의 홍차 습관의 하나인 애프터눈 티는, 공복을 참지 못한 후작부인 안나 마리아가 시녀가 들고온 차와 함께 가벼운 식사를 한 것이 유래, 당시(19세기)영국의 식사는 하루 2회가 일반적으로, 저녁식사는 오후 8시이후였다.

그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여유를 누리던 귀부인들 사이에서 정보교환의 장으로서 애프터눈 티가 대유행하게 된것.

 

아메리카에서 탄생한 티백

비싼 홍차가 싫어 독립전쟁까지 몰고간 미국.

제2차대전시 홍차의 공급을 끊은 이래 커피의 나라가 되어버리기는 하였으나, 두가지 멋진 홍차문화를 남겼다.

더운 날 홍차를 식혀서 마신다는 발상, 즉 원조 '아이스티' 그리고 찻잎의 처리가 쉬운 티백이 그것.

 

스리랑카를 덮친 행운의 병

1870년경 스리랑카의 커피밭은 병균으로 이해 전멸했던 일이 있다.

그리고 이 지역에 새롭게 탄생한 것이 바로 차원이었다.

결국 스리랑카는 세계 유수의 차 생산국이 되었고, 이것과 함께 이 나라에서는 의사나 변호사보다도 고임금을 받는 직업, 스리랑카 정부공인의 티테스터가 탄생되었다.

 

왜 영국이 홍차문화를 발달시켰는가?

홍차문화를 말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것이 영국인데, 서구 여러나라 가운데서 왜 영국만이 독자적인 홍차문화를 발달시킨 것일까?

서구에 차가 처음 전해진 것은 1610년경 그러나 그보다 한발 앞서 서구에서는 커피가 퍼져 있었다. 커피는 원래 아프리카 원산이었기 떄문에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가 그 무역권을 독점하고 있었다. 영국에서도 처음에는 커피를 마셨지만, 차는 가정에 보급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수요가 높아졌다.

그리고 17세기에는 차를 중국에서 직접 수입하기 시작했고, 19세기에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의 아셈지방에서도 자생하는 차나무가 발견되는 등 여러가지 상황이 영국에서 홍차문화가 발달 할 수밖에 없었다.

 

 

출처 : (주)서울문화사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