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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에의 저항

권오삼 |2008.07.15 02:03
조회 24 |추천 0


인간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속일수 없는 피의 내력 만큼이나 환경의 지배를 받습니다. 역사는 강자의 역사로 기억되고 기록됩니다. 그것을 통해 강자의 게임의 법칙을 익히고 힘의 역사를 찬양하곤 합니다. 한가지 극단적인 예로써 우리는 식민지 시대의 일제의 수탈을 교육받아도 베트남전 참전 당시의 양민 학살과 같은 반인륜적인 일련의 사건들에 대해서는 교육받지도 그것을 부끄러운 역사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선악의 논리처럼 강자와 약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 가변적이고 동태적으로 변화해 왔습니다. 노예제가 사실상 사라진건 기나긴 인류의 역사의 선상에서 바라보았을땐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근대의 일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조금더 나아졌다고 해서 불평등이 사라지진 않았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주권국가라고 해서 사회적 불평등이 그 이전보다 적어졌다고 할 수 없을 만큼 불평등에의 폐해가 우리와 공존하고 있습니다.

 

불평등에의 저항은 우리를 조금 더 인간답게 생각하고 살아갈수 있게 만드는 사회를 움직이는 강력한 동력이었습니다.

식민지시대,유신정권,군사정권등 악질적인 강자의 논리에도 소수의 다수를 위한 불평등에의 저항은 자랑스러운 역사가 되었습니다.

 

불평등을 느끼는 순간은 아주 단순한 인간의 본능으로 영장류들도 불평등에의 저항을 한다는것은 과학적인 사실로도 증명이 된만큼

불평등을 느끼고 이에 반응하는 것은 생명의 본질과도 같습니다.

특별한 사회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전반적인 사회의 흐름을 정확히 알고 있지 않더라도 불평등에의 저항은 아주 단순한 본능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다수들은 이러한 불평등조차 인지하지 못한채 살아 갑니다. 억지의 오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네 부모들은 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끊임없이 일을 해왔습니다.

이것이 보통의 상식이라면 왜 어째서 그들은 평생을 기계적으로 일을 해왔음에도 풍족하지 못할까요? 그리곤 늘 살아가기 힘들다는 푸념을 할까요?'

왜 사장님은 매일 돈다발을 가방에 넣어가는데 젊은 종업원들의 지갑은 야위어만 갈까요?

잘못된것은 없습니다. 오류도 없습니다. 자본주의의 논리와 경영학적 사고방식으로는 완벽히 정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의 오류는 학문적인 설명이 없이도 확연히 들어납니다. 가깝게는 IMF시대에 국민 모두가 한겨울 한파보다 시리고 서러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차상위 소득계층은 오히려 소득이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불평등한 사회구조는 그것에의 저항없이 악순환을 반복 할 뿐입니다. 잘사는 사람이 더욱 잘살게되고 중산층이 몰락하여 하위계층은 양적으로 늘어나는 시기에 오히려 사람들은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소득의 격차는 교육의 격차로 이어지고 학벌이 좋은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인식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계층간의

계급아닌 계급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소년가장이 서울대에 입학하면 신문에 나옵니다. 하지만 그 들중 대다수는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채 가장 적은 임금을 받으면서 손에 굳은살도 베기기 버거운 나이에 일을 시작하곤 합니다.

절대 다수의 소외계층은 외면한채 그 계층을 뚫고 나온 슈퍼맨에겐 세상의 찬사가 쏟아집니다. 그것은 절대 다수에겐 희망이 아닌 더 심각한 심리적 박탈이 되곤 합니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못해?"

 

인간은 모두가 다릅니다. 신체적인 조건도 성격도 환경도 다른 인간이 동일한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가는것 또한 불평등이지만 '불평등에의 저항'은 동일한 대우가 아닙니다. 불평등을 전제로 조금만 더 평평해질수 있게 평등으로의 지향입니다. 9:1이 아닌 8:2, 7:2로의 진화와 진보입니다.

 

모두가 잘 살수는 없지만 최소한 강자가 약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약자의 편에서서 보호하고 아우르며 성숙한 사회로의 진입을 용이하게 하는 부의 재분배, 사회적 배려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불평등을 인지하고 그것에의 반동으로 저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항은 굳이 그것을 개선하기 위한 개혁적인 조치나 투쟁적인 방식이 아니여도 좋습니다. 그저 불평등을 견지하고 그 스스로가 그러한 불평등을 반복하지 않는 자전적이고 소극적인 저항으로도 족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사회를 조금 진보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아니라고 해서 눈감아 버린다면 우리는 아니라고 해서 지나친다면 결국 그것은 나와 우리를 겨냥하는 부메랑이 되서 목을 죄여 올 수도 있습니다.

 

타인과 함께 소통하고 사회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불평등의 저항은 조금더 온전하고 쉽게 이루어 질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 순리이고 인간의 진화이기 때문입니다.

 

'좇같은 마음이라도 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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