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이상이란 단어가 존재 하는가.
장진이 각본을 쓰고 강우석이 메가폰을 잡았다. 설경구와 정재영이 주연을 맞아 스토리를 끌고 나갔고 유해진, 이문식등 연기파 조연들이 감칠 맛을 더했다. 어떤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흥행이라는 기준을 두고 이 영화의 소위 스팩이란 걸 고려했을 때 더 이상이 있을까라고.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이 다 다르기에 이 얘기가 어떻다 저렇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분명한 건, 이 영화는 흥행중이며 나도 이 영화를 유쾌하게 봤다는 것이다.
장진, 그의 기발함
장진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철중(설경구 분) 자신의 부상과 레벨을 맞추기 위해 공포탄이 아닌 실탄을 쏴 대결을 한다는 발상이나 일당 백은 물리칠 것 같은 원술(정재영 준)이 오줌쌀 뻔 했다며 너스래를 떠는 장면을 보며 ‘장진 식 유머’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장진식 유머라. 사형수가 아들을 만난다는 소재로 만들어진 ‘아들’이라는 영화에선 차승원은 ‘방가, 하이염’이라는 통신언어를 연습했고, 웰컴투 동막골에서는 남북군의 자잘한 싸움중 식량보관 창고에서 터진 총알로 팝콘 비가 내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의 영화엔 우리 스스로도 모르게 심어놓은 ‘이럴 것이라는’ 당연스러운 선입견을 깨는 그 무언가가 있다. 기발하다, 그래서 그의 영화가 좋다.
이문식, 유해진이 만드는 감칠 맛.
이 영화의 적절한 의도와 장치들이 관객에게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최고의 배우들 덕택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없는 설경구와 정재영에 대한 스포트라이트를 살짝만 틀면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의 유해진과 얼굴만 봐도 웃긴 이문식이 보인다. 그야말로 퍼팩트다. 잘생긴 배우들이 스크린을 메우는 게 영화가 아니다라는 것을 그들을 보며 느낀다. 굴곡진 인생과 다양한 인생들이 있는 세상처럼 그들의 연기도 다채로운 영화 속 인생들을 물들인다.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인생을 연기하는 그들을 우리는 배우라 부른다.
화이트 칼라에 대한 싸늘한 시선.
그의 영화를 보며 늘 궁금했던 것이 있다. 왜, 항상 화이트 칼라는 비웃음의 대상인가.
킬러, 사형수, 형사등이 단골소재로 등장하는 그의 영화에서 화이트 컬러의 역할은 거의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있어도 비웃음을 사는 정도?
이번 영화에서도 정재영의 수행비서 같았던 변호사는 위험한 순간이 되자 잽싸게 신고를 한다. 영화 속에서 강철중이 그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원술(정재영 분)이 나쁜 놈일까 아님 배신하는 니가 더 나쁜 놈일까’라고. 그는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아무래도 사람 죽이고 다니는 원술(정재영 분)이 더 나쁜 사람이지 않을까요’라고 대답한다. 뒷통수를 치며 철중(설명구 분)이 얘기한다. ‘니가 더 나쁜 놈이라고.’
화이트칼라들은 그의 영화에서 주로 비굴하거나 엉뚱하게 진지한 캐릭터들로 표현된다. 이질적인 캐릭터들이 무너짐에 대한 해학인가, 뭔가 뒤가 구릴 것 같은 화이트 칼라들의 정곡을 찌르는 면들이 대리만족을 시키는 건가.
어쩃든 이 영화는 흥행 중이다.
어려운 얘기로 작품성을 따지고 한국영화의 미래를 논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어떻든, 관객들이 ‘재미있어’라는 한마디로 입소문을 낸 결과다. 왜 웃기도 하고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가를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유해진의 얼굴이든, 장진의 끗발이든, 아니 그 무엇이 됐든 ‘재미있어, 한번 봐’라는 얘기는 이 영화가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 무언가는 웃음의 힘이었고, 한국 영화의 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