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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검증 연대기, <님은 멋 곳에>

김현수 |2008.07.30 09:46
조회 16 |추천 0

 

 

 




나는 라디오스타의 여성상이 정말 너무 싫었고 즐거운 인생에서 잠깐 나온 홍대녀들을 보면서는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순간 괜히 내가 바보가 되어가는 건 아닌가 싶더라. 이건 뭐 환타지 소설 읽으면서 사실성 없다고 징징거리는 꼴이었으니.

나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그 어떤 비판도 긍정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단지 그냥 사람들의 평가가 극으로 나뉘길래 나도 어떤 검증 절차를 밟고 싶어서 보고자 했다.
순수하게 그냥 영화를 본 느낌이 곧 나일 테니까.
그래서 뭐 내 느낌에 별 부끄런 감정을 갖고 싶지 않다. 긍정이냐 부정이냐를 떠나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와 닿았느냐가 어떤 폭력적인 사상 검증조차 가능하게 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보시길 바란다. 당신의 여성은, 당신의 남성은 어떤 모습인가.


영화를 보면서 시작부터 어디에 초점을 둬야 할지 갈팡질팡이었다. 너무 흔하디 흔한 인물들인데 내 고정관념을 따라야 할지 스크린에서 보여지는 영화 속 모습에만 집중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건 순이 때문이었다. 순이 이외의 모든 인물은 딱 고정 틀이 있다.

상필은 감히 현실 앞에서 사랑 운운하면서 징징대는 철딱서니 남자다. 평생을 희생해야 할 아내보다 자신의 아름다웠던 기억이 더 소중한, 아니 혹시 또 모르니까 아직은 소중히 여기고 있는 그런 남자다.
상필의 엄마는 철저한 가부장 사회에서 자신의 모든 걸 던져 남성성을 붙잡고 싶어하는 말 그대로 그 시대의 어머니다. 이 부녀 관계는 말 그대로 진상이다. 그냥 토 나오는 관계. 아직도 지금 시대에도 가끔씩, 아니 자주 등장하는 드라마 속 모자관계.

자, 이제 그 관계 속에서 순이가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영화는 자꾸만 고정적인 관념을 흐트러뜨린다. 최선의 자아실현이 결국 사랑이 싹트는 결혼이었던 한 여자의 지독한 오기로 봐야 하는지, 불쌍한 시어머니를 대신해 독기를 품은 며느리의 입장에서 봐야 하는지, 날 때부터 이미 가부장 사회에서 성공할 여인상으로 태어났으나 제 무덤이 어딘지 모르고 서성대다가 몸에 딱 맞는 무덤 찾아 월남까지 찾아가 기어이 제 한 몸 묻고야 마는 성공 스토리로 봐야 할지, 그녀 바로 그 '순이' 의 존재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쨌든 순이는 끝까지 가게 되고 결국 남편을 만나게 된다. 나는 몇 가지 엔딩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남편을 만나지 못하는 설정이야말로 이 영화에서 더 웃기는 설정일지도 모르겠다. 오우, 몸도 주고 마음도 다 내줬는데 정말 님은 먼 곳에 있으면 순이는 월남에서 소금기둥이 되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끝까지 내지른다. 이건 애초에 환타지를 전제로 한 영화라는 생각이 짙다보니까 마지막도 환타지로 끝나야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만나는 것 자체는 환타지라 생각했지만, 그의 뺨을 때리는 건 뭘까. 아, 또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나서도 계속 혼란스러웠다. (내가 여기서 스스로 주의해야 할 점이 무언가를 생각해보니 사고가 영화를 벗어나면 안되겠다는 것이었다. 순전히 영화 안에서만 생각해보기로 했다.)


자, 그렇다면 전적으로 내가 영화 속에서 동의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해보자. 순이는 어머니 대신 월남에 가겠다고 소리쳤을 때보터 내면에 어떤 결정을 내린 상태다. 그녀를 자극시킨 것은 어머니의 대사들과 친정식구들의 매몰참이다. 하지만 순이는 체제 순응형이 아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자기 장기를 보일줄 아는 적극적인 여성이다. 그녀의 선택은 정말 오기일 수도 있고 도대체 이 짜증나는 삶 속에서 '나'란 누군가, 질문을 던져보면서 월남에 가겠다고 했을 수도 있다.
나는 순이의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되는 선택을 매우 긍정했다. 어떤 식으로든 그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첫 무대에서 그녀는 여지없이 전형적으로 부끄러워 한다. 그녀가 무대에서 히을 얻게 되는 건 '순이'라는 존재 때문에 반응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부터이다. 나는 여기서 분명히 순이가 어떤 자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전에 베트남 소녀가 죽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각성이 있었을 수도 있겠는데 영화는 이 부분에서 온갖 폼을 잡더니 그냥 흐지부지 넘어가더라. 그래서 영화 속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한국군 위문공연 이후이다.

그 다음 자연히 순차적으로 그녀는 벗기 시작한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이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전쟁통(베트남의 의미는 빼자. 나는 이 영화가 베트남에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속에서 즉, 남성중심사회를 살아가면서 여자가 정말 우뚝서기 위해서 어떤 가치가 가장 유효한지 알아가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가장'이라고 말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삶의 가치는 누구나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남자들이 반응할 수 있는 생물학적 조건을 갖추고 태어난 여자라면 말이 다르다. 순이는 타고난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몸매와 목소리는 그녀가 월남까지 가서 성공할 수밖에 없고 남편을 만날 수밖에 없는 최적의 조건으로 설정된다. 그녀가 그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결코 엔딩은 성립될 수 없다. 내 눈에는 이게 가장 크게 보였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여자 연예인들에게 묻고 싶은 것. 자기 발 앞에서 미친듯이 발광하는 남자들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냐고 언제든 꼭 물어보고 싶은 것!!!


그렇게 결국 순이는 자기의 가치를 세일즈하면서 흥정한 끝에, 즉 그녀에게 이건 흥정의 개념을 넘어서면 너무 서글픈 인생이 되버린다. 더 나은 것을 얻기 위해서 과감히 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 물론 욕할 사람도 있겟지만 현실에서 그런 여자들의 삶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 번 자주면 학위 주겠다고 요구하는 교수들도 득시글거리고 남자들은 어디에서든 이런 여성성을 여자들에게 요구한다. 이건 여자들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오히려 남자들의 문제다. 이게 이 영화를 볼 때 극과 극으로 평이 나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이 영화가 환타지인 것은, 현실에서는 그녀가 세일즈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몸 줬다고? 남자들은 입 씻으면 그만이다. 그 전쟁통에서 그녀의 거래는 애초에 현실성이 없다. 내 입장은 이 정도다. 어떤 쪽에서 이 영화를 환타지라고 보는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질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만남.
결국 이 엔딩은 내게 있어서 순이가 나를 왜 여기까지 오게 했는지, 그 인생의 총체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자기 자신의 뺨을 때리는 것일 수도 있고 겨우 요래 살아남으려고 나한테 감히 사랑 운운하면서 여까지 도망 온거냐고 사랑이 뭔지 제대로 대답해주기 위해 찾아간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엔딩은 이 정도의 의미인데 역시 제 아무리 생각해도 두 모습 다 환타지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듣기 위한 과정 자체도 환타지다. 나는 이게 라디오스타의 엔딩, 그리고 즐거운 인생의 엔딩과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 엔딩을 보면서 아주 노멀하게 받아들이자면 그저 어떤 의미에서건 감동받고 돌아가는 거다. 영화는 끝났고 당신은 극장을 나서야 한다.

결국 이 영화는 굉장한 답을 내주어야 하는(것을 기대하고 갔던 관객들이 외면할 정도로, 혹은 어마어마한 감동을 받고 돌아가는 관객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답도 내주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참 나쁜 감독일수도 있겠지만, 무작정 욕할 수도 없다. 이렇게 나처럼 관객들은 반응하기 때문이다. '순이'의 인생이 옳다, 그르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할 말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그리고 당신들이 그마만큼 여성에 대해서 남성에 대해서 왜곡되고 불편하게 자기중심적으로 사고하면서 살고 있다는 증거다. 스스로 문득 '순이'의 인생에 부분부분 반응하는 내 자신에 흠칫 놀라고 혀를 차는 내 자신에 또 한 번 놀란다. 나는 왜 이토록 '그녀'들을 뜨겁게 원하고 있는 건가.
결국 뭐냐, 여자 없인 절대 살아갈 수 없는 게 남자인가 보다.




P.S: 모두들 혹시 보셨는가. 길거리에 걸려 있던 플래카드.

"남은 쥐를 모두 잡자." 라고 쓰여 있던 것을 말이다.

나 왜 이런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혼자 히죽거리지? ㅋ 아, 현실에서는 별로 웃을 일이 없어서이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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