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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를 돌아보며

김성훈 |2008.08.05 20:07
조회 181 |추천 2

 그것은 열정적이었고 강렬했으며 순수했고 그래서 폭발적이었다. 매일 저녁부터 청계천, 시청 앞 광장을 삼켜버린 군중은 '임을 위한 행진곡', '광야에서', '대한민국헌법제1조'를 부르며 도심을 행진했다. 배후는 없었고 자발적으로 거리에 뛰쳐나온 시민, 청소년이 대부분이었다. 때론 과격해지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스스로 절제할 줄 알았고 수십만(경찰 추산 8만이라지만 내가 보기에 최소한 10만은 넘어보였다)의 인파가 모인 6.10에도 시위는 비폭력, 평화시위의 모범을 보였다.

 

 무척이나 고민했다. 촛불시위에 참여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인터넷에는 우중을 부추기는 선정적 개소리들이 떠돌았고 많은 사람들은 흥분해있었다. 일부에서는 10대들의 참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내가 지인들로 부터 보고 들은 청소년들은 자기논리와 주체성이 결여된 채 선정적인 괴담들에 선동된 측면이 강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비판, 즉 시위의 선동성과 근거없는 괴소문, 군중심리에 대한 비판을 시위 참가자들은 곧이 듣지 않았다. 비판은 곧 시위를 봉쇄하고 평가절하하기 위한 수구꼴통들의 매도로 몰아붙여졌으며 비판을 냉정히 받아들이려는 노력은 부족해보였다. 사람들은 촛불을 든 자와 촛불을 들어야 할 자(아직 들지 않은자), 그리고 촛불을 들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들지 않을 자들로 나뉘었다.

 

 분명 광우병 괴담은 허탈한 웃음이 나올 정도로 황당한 것이었고 그런 황당한 소리에 현혹되어 거리로 나와 "나 미친소 안먹어 씨발"를 부르짖는 10대들을 보며 고민은 깊어갔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쇠고기 협상이 굴욕적인 조건으로 체결되었으며 이러한 협상은 광우병괴담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국민의 건강권을 침해하기에 충분했고, 정부는 이에 분노하며 시정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한 채 이를 밀어부치려 했다는 것이었다.

 

 지난 대선 때 BBK를 이유로 막판에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거두어들인 나였지만 취임도 하기 전부터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연대'따위의 같잖은 독선자들이 판치는 세태가 증오스럽도록 싫었다. 그러나 그런 나 역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이명박정부의 행태는 잘못된 것이라 생각했고, 결국 시민의 힘을 보이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일일이 확인하지는 않았지만)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으로 시위에 나섰고, 이들은 정부가 독선적 정책추진에 대한 반성과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성의를  보일 것을, 즉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했다.

 

 이렇게 촛불시위에 나서 처음 만난 것은 '이명박 OUT'이라 적힌 피켓이었다. 난 망설였다. 시민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정부의 행태는 두고볼 수 없는 것이었지만 과연 이 일로 탄핵을 하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이명박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 중 일부는 쾌재를 부를지 모르겠지만 국민의 절반에 가까운 지지를 얻어 탄생한 정당한 정부가 임기 초의 실책을 이유로 탄핵된다는 것이, 매우 선정적이고 충동적이며 비합리적인 포퓰리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애써 나는, 또 나와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들은 애써 '고시철회, 협상무효'의 피켓을 찾아들었다.

 

그러나 다행이었던 것은 '이명박 OUT', '탄핵'이라는 구호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요구로 여겼던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의 토론에 근거하여 볼 때, 또한 현재 진행되는 촛불시위를 볼 때 실질적인 의도를 갖고 정권퇴진의 구호를 외쳤던 이들도 있었다고 판단되지만 좌파의 스타 진중권이 '100분토론'에서 말하듯 "누구도 그것을 진짜 정치적 요구로 이해한 적이 없으며 상징적 구호에 불과하고, 향후 정부가 계속 (독선적인)정책을 한다면 현실적 요구가 될 것이다" 라는 생각을 대부분의 참여자가 공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이러한 과격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시위는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집시법의 위헌여부와 불법시위논란 역시 마음에 걸렸다. 집시법이  위헌이라도 적법한 절차 없이 현행법을 어기는 것은 그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법치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단순히 법치의 원칙만을 고려하여 생각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아직까지도 이에 대한 생각은 정리되지 않은 상태이다.

 

 집시법 자체가 그 이전부터 뚜렷한 기준을 가지고 적용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대체 불법적인 촛불시위와 합법적인 촛불문화제가 뭐가 다른가? 엄격하게 집시법을 적용한다면 청계천에서 열리던 촛불문화제도 위법이다)과 촛불시위에 참여하여 직접 느낀 바에 의하면 이미 집시법이라는 것 자체가 무력화된 상태였다.

 

 불법 여부가 논쟁이 되긴 하였지만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어느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고 '타협선'은 '비폭력'으로 옮아갔다. 이에 기대어 절반즈음은 군중심리에 몸을 맡기고 어느정도의 자기합리화, 약간의 꺼림찍함을 느끼며 도로를 점거한 채 시가를 행진했다.

 

 물대포와 산발적인 충돌, 세종로 한가운데를 가로막은 '명박산성'의 진기한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일부 과격분자, 급진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민들은 자제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하나의 축제로 즐겼고 자신들의 힘을 스스로 확인했다. 광우병 집회 초기의 괴소문은 점차 수그러들고 있었고 시민들을 선동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일부의 움직임은 다수의 이성적인 시민들의 건전한 열정과 자제력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과격시위자들을 말리며 '비폭력'을 외치는 시민들은 아름다웠고 또 강했다.

 

 정부는 재협상이 아닌 타협안을 제시했다.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시민들의 힘을 자각한 정부는 기존보다 조금이나마 발전된 대답을 내놓으려 했다. 시민들은 이에 흔들리지 않았으며 시위의 대열은 산만했지만 견고했다.

 

 

 그러나 어느순간 '5대의제'라는 이름으로 공기업 민영화와 같은 정책들에 대한 총체적 반대로서의 구호가 외쳐지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술렁였다. 애초에 자신들을 거리로 불러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에 갑자기 '좌파적, 반 신자유주의적'인 구호들이 덧씌워졌다.

시위가 정치화되며 순수성을 잃고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물론 쇠고기에 대한 문제 역시 정치적 사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는 쇠고기가 아닌 이외의 정치적 사안들이 덧씌워졌다는 것이었다. 과연 정치성이 무어냐 하는 논쟁이 있었지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에 반대하여 거리로 나선 시민들 중 상당수는 쇠고기 문제 이외의 정치적 사안이 촛불집회에 덧씌워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내가 촛불시위의 대열에서 빠져나온 것은 이 무렵이다(물론 실제 참가는 두 번 뿐이었고, 이때를 기점으로 심정적 지지를 거두어들였다는 것이다). 배후 없이 시민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시위였지만 이들 중 큰 목소리를 내는 이들 중에는 좌파적 성향을 지닌 이들이 많았고, 이들은 촛불집회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정치적 힘을 이명박정부의 신자유주의적, 우파적 정책추진을 멈춰세우는 일에도 연장시키고 싶어했다.

 

 물론 촛불시위 찹가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좌파적 성향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나처럼 비교적 보수적인 사람들, 우파적인 사람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 촛불시위가 애초에 의도처럼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만 집중되기를 바랬던 사람들은 점차 대열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 '5대의제'를 부르짖는 이들에게 쇠고기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물타기'로만 들렸다.

 

 남은 대열은 헌규의 말 처럼 "소고기는 이미 이명박 정권에 대한 '격발'에 불과하다."라고 여기는 사람들, 즉 쇠고기 문제를 기점으로 '소통의 부재'에서 기인한 이명박정부의 잘못된 정책추진을 가로막아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 안되면 탄핵해야 한다는 사람들, 촛불시위를 그러한 의도로 참여한 사람들로 구성이 되었다. 대열에서 이탈한 이들은 '쇠고기 문제 해결만을 위한 집회'를 기획하기보다는 침묵했고 자연스럽게 촛불시위의 중심은 '쇠고기'에서 '5대의제'로 옮겨갔으며 최근에는 '반미'까지 옮겨가고 있다.

 

 집회의 성격은 더욱 더 정치적으로 변했다. '가족'단위의 참가자보다는 각종 노조, 한총련, 진보단체들의 '깃발'단위가 무게중심을 잡았다. 이러한 정치적 집회는 다원성이 존중되는 민주사회에서 정당한 일이지만, 이에 따른 참가자들의 감소와 촛불시위의 규모 축소 역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문제는 단체가 아닌 개인, 가족단위의 시민 참여가 축소됨에 따라 촛불시위가 점차 일반 시민들의 시야에서 멀어져가고 있었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경찰의 탄압이 강해지는 동시에 활기를 잃어가는 촛불시위 역시 과격화되며 점차 비폭력의 원칙을 꺠뜨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폭력의 원칙이 깨지기 시작한 촛불시위는 더더욱 과잉진압을 불러들였고 다시금 경찰, 보수언론 기자등에 대한 폭행이 반복되는 악순환을 불러왔다. 그리고 이는 시위의 정당성과 시민들의 지지를 갉아먹었으며 보수언론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이에 종교계에서 나서 시위의 비폭력 원칙을 회복하려 했다. 이는 어느정도 효과를 거두었으나 일시적 효과에 그쳤고 다시금 시위는 과격화되었다.

 

 PD수첩의 의도적 왜곡보도는 인터넷의 광우병 괴담과 같이 저질스러운 수준이었고 이에 대한 시정, 반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론 역시 촛불시위의 진정성 회복, 이성적 대응을 촉구하기보다는 한쪽에선 경찰의 과잉진압과 여대생 사망설, 다른 한쪽에서는 시위의 폭력성 비판에 날을 세우며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재협상을 위해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은 흩어졌고 촛불시위를 둘러싼 서로간의 감정에는 골이 깊어졌다. 지금의 촛불시위는 이전보다 과격해졌지만 오히려 이전의 촛불시위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강한 힘은 사라졌다. 촛불시위에  호응을 보내던 시민들은 점차 무관심해지거나 반대의 입장도 강해지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재개되었고 보수언론의 과장된 보도정도는 아니더라도 분명 우리나라에서 미국산 쇠고기는 '팔리고' 있다. 새로이 터진 독도문제는 슬며시 광우병 쇠고기 문제를 덮어가고 있다.

 

 촛불은 이렇게 지고 있다. 지고있는 촛불을 다시 살려야 할까? 살릴 수 있을까?

 

 그 전에, 우리가 촛불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무엇을 바꾸려 했고, 어떻게 했으며, 그 결과는 어떠한가?

 

 앞으로 촛불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는 알 수 없다. 이미 촛불의 성격은 더이상 미국산 쇠고기가 아니다. 바뀌는게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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