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이 있어 대한민국은 행복했다"
11일자 중앙일보 1면톱을 큼지막하게 장식한 기사제목이다. 그러나 나는 이걸 보면서 전혀 행복하지 못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씁쓸했다. 씁쓸했고 슬펐다. 씁쓸했고 슬펐고 화가 났다. 왜?
▲ 8월 11일자 중앙일보 1면
중앙일보가 "행복했다"고 감사인사를 전한 '그대들'의 명단엔 금메달을 딴 박태환(수영)과 최민호(유도), 그리고 여자양궁팀만 포함됐을 뿐, 그 밖의 다른 수상자들이나 선수들은 깨끗이 거세돼 있었기 때문이다. 금메달을 따지 못한 기타 선수들은 대한민국의 행복과는 무관한 존재라는 걸까?
이날 중앙일보는 3~5면을 할애해 금메달을 딴 3인을 집중 조명하는 파격적인 지면편성을 선보였다. 얼핏 보면, 중앙일보인지 일간스포츠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 베이징 올림픽 개막 후기를 전한 2면까지 합하면, 1면에서부터 5면까지 올림픽스포츠 얘기로만 도배한 셈이다.
▲ 8월 11일자 중앙일보 3면
▲ 8월 11일자 중앙일보 4면
▲ 8월 11일자 중앙일보 5면
KBS 사태와 한나라당의 부패 스캔들 등, 긴급히 다뤄야 할 정치 사회면 기사들이 즐비한 터에 이 무슨 여유~? MB에게 골치 아플 수 밖에 없는 국내 상황을 올림픽이라는 블랙홀로 흡입 내지는 몰수해 버리자는 속셈일까? 그래서 이처럼 '배째라' 식으로 단순 무식하게 들이대는 걸까?
이날 중앙일보는 이란 제목을 단 사설에서도, "뭐니뭐니 해도 올림픽의 즐거움은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지켜보는 데 있다"며, "9일 최민호 선수가 유도 남자 60㎏급에서 우승한 데 이어 10일 양궁 여자 단체전에서는 올림픽을 6연패하며 금메달을 따냈다.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장면이 매일 이어지기 바라면서 한국 선수들의 건투를 빈다"고 연신 호들갑을 떨었다.
노오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죄(?)로 '대한민국의 행복'에서 빗겨간 두 은메달리스트 - 진종오(사격)와 윤진희(역도) - 소식은 19면에 가서야 겨우 소개됐다. 소중한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구는 한국적 코미디는, 이런 언론들이 건재하는 한,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듯 하다. 빌어먹을! (2008.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