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8일 8시에 북경올림픽이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바로 그 날 444일간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계속했던 북경올림픽 반대 일인 릴레이 시위가 쓸쓸히 막을 내렸다.
'돈을 번다'는 뜻의 발재(發財)의 중국 발음은 '파차이', 첫 발음이 '여덟 팔(八)'의 중국 발음과 비슷하다고 하여 중국인은 숫자 8을 보물지도처럼 좋아한다. 아득한 옛날부터 돈이면 사족을 못 쓰는 중국인의 새해 인사는 너무도 노골적인 '돈 많이 버세요(콩시파차이 恭喜發財)!'. 올림픽도 이에 맞추어 8이 3개 거듭된 날짜와 시각에 개막했다. 한국인도 '죽을 사(死)' 자와 '넉 사(四)' 자와 발음이 같다고 하여 숫자 4를 달걀귀신보다 싫어하는데, 그것은 중국인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은 둘 다 '쓰'로 발음한다.
왜 20년 전 올림픽 개최로 밖으로는 동서냉전의 빙하시대를 끝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안으로는 국론분열의 춘추전국시대를 끝내는 데 성공했던 대한민국의 몇몇 사람들이 이웃나라의 경사에 무슨 억하심정으로 444일 동안 초를 쳤을까. 그것은 인권의 사각(死角)지대를 중국인과 한국인과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세계3대 경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정치든 사회든 언론이든 여간 후진적이지 않다. 철저한 언론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을 뿐 광주사태 같은 비극이 현재도 비일비재하다. 만약 시위대가 광주처럼 탱크와 총으로 무장했다고 하면, 무차별 학살이 자행될 게 틀림없다. 1989년 천안문사태 당시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맨손 시위대를 탱크와 총으로 제압한 것을 상기해 보면, 중국의 공권력은 개인에 대해 법률 아래의 존재가 아니라 법률 위의 존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모택동 시대보다는 인권도 크게 신장되었으니까,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으로 봐 줄 만하다.
중국의 인권문제라면, 세계의 관심은 주로 티베트인과 법륜공(法輪功) 교도에 대한 중국의 직접적 인권탄압과 수단의 다르푸르 학살에 대한 중국의 간접적 지원에 집중되고 있다. 나머지는 내정간섭 쪽에 더 큰 비중을 둔다. 이런 은근한 타협 때문에 드러난 3건에 대해서는 중국도 세계의 눈을 어느 정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심각하고 결코 중국의 내정 문제가 될 수 없는 무자비한 인권탄압이 있다. 그것은 바로 탈북자에 대한 중국의 민관(民官) 합동 인권탄압이다. 미국도 이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언론에도 거의 보도되지 않는다.
오늘날 정보가 빛의 속도로 세계 곳곳을 누비지만, TV에 안 나오고 인터넷에 안 뜨고 신문에 안 실리면 아무리 중요한 일도 존재하지 않는, 무가치한, 신경쓸 것 없는 사건이 된다. 북한인권이 바로 그러하다. 북핵은 북한의 의도적인 해외토픽감 띄우기 전략과 미국의 작은 놀람과 한국의 갈팡질팡 호들갑과 중국의 음험한 꿍꿍이속이 어울려 문제의 해결과는 상관없이 전세계적으로 심심찮게 입에 오르내린다. 그러나 북한인권은 북핵과 달리 강 건너 불이 아니라 발등의 불이다. 매일 맞아 죽고 매일 굶어 죽고 매일 노동이 착취되고 매일 종군위안부보다 더 처참하게 여성의 성이 유린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든 외국에서든 거의 뉴스가 되지 못한다. 수십 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매일 수천 명씩 맞아 죽고 굶어 죽는 인권문제가 죽을 확률 10억분의 1인 건강문제에도 어림없이 못 미친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인권유린에 대해서는 중국에게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은 아닐 수도 있다. 그것은 한민족의 유일합법국가 한국이 북한을 상대로 줄기차게 따질 일이다. 천연두 자국보다 희미한 친일파 문제를 언론에서 줄기차게 따지는 것보다 수십 배 수백 배 강하게 부각시킬 일이다. 그러나 탈북자 문제는 다르다.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넘으면 바로 중국이다.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70억을 향해서 우렁차게 노래하는 21세기 세계 2대 강대국이 150년간 제국주의 침략에 시달렸던 것은 까마득히 잊고 자국을 낙원으로 알고 찾아온 지옥 탈출자를 제국주의자의 연옥(煉獄)으로 안내하거나 제국주의자의 무자비함을 발휘하여 그들을 태연히 지옥으로 되돌려 보내고 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누계 100만 명이 그런 인권사각지대에 있었다. 그 중에 100분의 1만이 죽음의 대장정 끝에 겨우 따뜻한 남쪽 나라로 왔다. 지금 이 순간도 수십 만 명이 중국의 토굴에서 움막에서 다락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
중국은 제국주의 종주국의 입장에서 사실상의 식민지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의 독재를 묵인하고, 미국은 흔들리는 유일 초강대국의 입장에서 한 지역의 군사적 균형을 깨뜨릴 수 있는 불량국가의 불장난을 막기에 급급하고, 한국은 이념 혼란에 정체성 위기에 국론 분열에 내 등 따습고 내 배 부르면 다른 사람 배고픔은 도무지 느끼지 못하는 부(富)의 효과 등이 겹쳐 남북문제는 좌우 막론하고 정치적인 입장으로 바라볼 뿐이다. 따라서 북한인권은 추상적인 개념으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있으되 없는 문제다. 북한의 주민과는 달리 당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중국 땅의 탈북자이지만, 극히 일부 사람들 외에는 보고도 못 본 척하고 들어도 못 들은 척하거나 사사건건 미심쩍어 한다.
만주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탈북자의 인권사각지대가 그렇게 하여 20년이 넘도록 아무런 '미디어 포커스'를 받지 못하고 있다. 수단의 다르푸르보다 티베트보다 법륜공 교도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지만, 아무런 동정을 받지 못한다. UN에서 북한인권이 정식으로 거론되고 결의되고 미국의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북한인권법이 제정되어도 어디까지나 정치적 수사(修辭)에 지나지 못한다. 북한인권은 국제정치적으로 볼 때 독재자에게 앞으로는 엄포 놓고 뒤로는 뇌물 주기에 약간 껄끄러운 문제다.
탈북자가 죽어요 죽어요 죽어요(444)! 중국의 탈북자 인권탄압 정책,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444)! 거짓 세계평화를 내세우는 제국주의적 북경올림픽은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444)! 444캠페인은 그렇게 해서 444일 동안이나 계속되었지만, 강대국 중국을 애오라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바라볼 뿐인 세계의 양심은 끝내 주한 중국대사관의 굳게 닫힌 대문 앞에 서 있는 의인들을 사지 멀쩡한 거지 외면하듯 차갑게 외면했다. 그러나 진리의 빛이 거짓의 구름을 뚫고 세상을 비출 날이 언젠가는 찾아올 것이다.
(2008. 8.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