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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하다 - #504

강재진 |2008.08.14 14:00
조회 99 |추천 1


 

 

그는 수많은 노크소리 중에 딱 하나의 노크소리만 기억하고 있다.

그녀.

당시 신입생이었던 그녀가 아나운서 시험치는 듯한 복장으로

이미 열려있던 동아리 문을 똑똑 정확히 두번 두드렸었다.

그리고는,

 

- 반갑습니다. 여러분,

 

하고 엘레베이터걸과 같은 말을 해서 모두를 웃겼던 것이다.

 

남자가 그녀를 처음 눈여겨보게 된 것은 그녀가 그린 정물화 때문이었다.

정물은 없고 배경만 있었던 것이다.

남자가 놀리듯 그녀에게 물었었다.

 

- 여기 왜 사과가 하나도 없어? 저앞에 사과만 있잖아.

 

그러자, 그녀가 이렇게 말했다.

 

- 전 사과를 싫어해요. 전 좋아하는 것만 그릴 거에요.

 

겨울방학이 시작될 무렵 동아리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식당이었다.

모두 따뜻한 자리를 찾아 앉는 분위기였는데 그녀 혼자서 우물쭈물 거리더니,

참담한 표정으로 천천히 부츠를 벗는 것이었다.

 

마침내 부츠가 벗겨지자, 그녀의 스타킹이 나타났다.

엄지발가락 쪽으로 크게 구멍이 나있었다.

남자는 본능적으로 그녀의 엄지 발가락을 밟아서 그녀의 수치심을 덜어주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그날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스케치북을 보여주었다.

뒷장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그렸다면서 수십개의 스케치가 있었다.

남자의 뒷모습,

남자의 자는 모습.

남자의 그림 그리는 모습.

 

- 선배는 내가 선배 그리는 거 알고 있었어요?

 

- 아니, 근데 나도 너 그리고 싶었어.

니가 니 행동이 엉뚱해서 자꾸 쳐다보게 만들었거든.

 

자주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좋아하면 자주 보게 된다.

 

 

 

사랑을 말하다

 

 

추천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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