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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l? Real! Real.(리얼리티프로그램)

유주희 |2008.08.15 15:23
조회 63 |추천 1

 

바람이 분다. 현실을 가장한 초현실의 바람이다. 리얼리티 쇼 형식이 불과 수개월 만에 방송가를 완벽히 장악했다. 하나의 패러다임이고 키워드가 됐다. 리얼리티 쇼 패러다임으로부터 자유로운 쇼 오락 프로그램은 매우 드물어졌다. 다른 형식을 수년간 고수했던 오락 프로그램들조차 리얼리티 쇼의 성격을 일부 흡수하거나 그쪽으로 전향했다. 덕분에 이제는 프로그램 제목 앞에 죄다 '리얼'이 붙는다. 리얼 버라이어티, 리얼 토크, 리얼 개그, 리얼 시트콤, 심지어 어감이 괴이한 리얼 다큐까지. 아니 이것은 흡사 창씨개명이 아닌가 싶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시청률 앞에 장사 없다.

 

리얼리티 쇼의 인기가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다. <트루먼 쇼>처럼 해묵은 텍스트를 가져와 그 천박함을 지적할 만큼 한가로운 주제도 아니다. 분명한 건 최근 들어 거의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한꺼번에 싸잡을 수 있을 만큼 하나의 거대한 리얼리티 쇼처럼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TV를 켜면 온통 리얼하게 짝짓기를 하고, 리얼하게 간통 현장을 비추고, 리얼하게 커밍아웃을 하고, 리얼하게 미션을 수행한다. 그 리얼한 눈물과 웃음들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은 열심히 울고 웃는다.

 

리얼리티 쇼의 인기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소비하고 싶어 하는 대중의 기호가 전제돼 있다. 이 결핍은 현실이 더 이상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만큼 피폐한 것이다. 카메라의 위치가 숨겨지고 고정돼 출연자들의 행동을 담는 순간 스크린 너머의 풍경은 현실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연출이 아닌 기록으로 간주된다. 아무리 단순한 그림이라도 현실감이 배가되면 본 텍스트가 가진 위력 이상의 공감과 환기를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이다. 리얼리티 쇼가 여타 다큐멘터리와 다른 건 미리 계획된 서사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보는 자의 취향을 고려하고 계산한 서사다. 시청률을 염두에 둔 서사다. 이 서사가 존재함으로써 리얼리티 쇼는 대중이 바라는,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될 수 있다. 또한 쾌락이 될 수 있다.

 

물론 이 서사는 조작되고 의도된 거짓이다. 빤하게도 그렇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개의치 않는다. 적당히만 하면 얼마든지 속아주고 박수 쳐줄 준비가 돼 있다. 간단하다. 시청자들이 리얼리티 쇼에서 소비하고자 하는 게 표피적으론 진정성이되 근본적으론 선정성이기 때문이다. 인지하고 있든 그렇지 못하든 무의식적으로 그렇다. 진정을 가장하는 서사의 묘 앞에 시청자는 열광한다.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고 드라마틱한 세상을 살고 있구나! 이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현실인가. 요컨대,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 현실이다. 새빨간 환상이다. 꽁지에 부채를 단 비둘기를 보고 경탄하는 식이다. 아니 세상에 저 아름다운 공작을 좀 보게나.

 

그렇다고 리얼리티 쇼에 열광하는 시청자를 무조건 우매하다고 매도할 일은 아니다. 바로 여기서 리얼리티 쇼를 둘러싼 진짜 욕망이 드러난다. 사람들이 속아줄 준비가 돼 있는 건 사실이다. 부채 붙인 비둘기를 공작이라 치켜세울 의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왜 속아주려 하느냐가 문제다. 무작정 즐기기 위한 욕망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저 현실에 결핍된 걸 가상의 리얼리티 쇼에서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선망하고 아낄 수 밖에 없다. 더불어 그 온전한 이상향을 매체를 통해 타자화시키면서 선정적인 즐거움을 느낀다. 이때 진짜 현실은 결핍되거나 불순물이 섞인 가짜가 되고, 스크린 속 가짜 현실은 불순물 없는 순수한 진짜가 된다. 이를테면 <우리 결혼했어요>의 경우, 관객은 가상 커플들이 와인 잔에 우유를 따르고 애교를 입에 물어 신상을 요구하며 진심을 논하는 풍경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랑의 온전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래 저게 진짜 사랑이야. 연애 감정에 두근거렸던 바로 그때의 순수한 사랑이야. 그에 비해 현실에서 자신들이 하고 있는 사랑은 온전하지 않은 절름발이 사랑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현실을 가장하는 리얼리티 쇼의 화장기 짙은 진심을 진짜로 생각해 동경할 만큼, 우리들의 진심이란 그리도 더럽혀진 것이다. 리얼리티 쇼는 현실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은 현실 이상의 현실이 되고 말았다.

 

 

글_ 허지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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