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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톨스토이 -

이영은 |2008.08.22 13:52
조회 101 |추천 0

      

 

 

 

 영국 미국 호주에서 활동하는 작가 125명에게

‘내가 즐겨 읽은 문학작품 10선’을 추천받아 순위를 집계해

상위 20위의 목록을 23일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러시아의 대문호 레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와 ‘전쟁과 평화’가 각각 1위와 3위를 차지했다.

                 (2007-2-26일  동아일보)

 

 

안나 카레니나가 1위라구?

그랬다.

내가 이 책을 읽기로 결심한 이유는

이런 세속적인 기사 몇 줄이 주는 유혹 때문이었다.

마음에만 담아 두었던 책을 막상 주문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긴 장편이었다.

황금 노트북 시리즈 3권도 읽어낸 내가

(정말 힘들었다. 책의 내용도 물론 힘들었지만

 잘못된 번역이 안기는 고통이 더 컸다.)

이까짓 것 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글을 읽어 내려갈수록

점점

아쉬움과 두려움이 밀려왔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유머가 다시 생각났다.

어떤 개그맨이 말하길

자신은 밥 먹을 때마다 자꾸만 화가 난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밥을 먹을수록 그 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거다.

 

나에게도 그 사람의 경우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

1050페이지가(그것도 글씨가 빼곡한 옛날식 편집으로) 넘는

이 거대한 소설을 한 장씩 읽어 갈수록

이젠 끝이 보인다는 기쁨과 더불어

이 책을 계속 읽고 싶다는 욕망이 교차하는 것이다. 

상업성만이 목적이었던 영화나, 

마음대로 잘려나가고 편집된 문고판 등으로 인해

우리에게 선입관을 심어 주었던  안나 카레니나와

톨스토이가 4년 만에 완성한 소설 속  안나 카레니나는

완전히 다른 인물이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안나의 불행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시대의 위선을 건드린 사회 소설이고

남녀의 본질적 사랑을 묻는 애정 소설이며

신과 자신의 신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고귀한 물음에 답하려는

종교 소설이기도 하며

아울러 루소주의를 권장하는 전원 소설로도 

불릴 수 있는 위대한 소설이었던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기        

 (상권) 1페이지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법칙이라는 말을 만들어냈을 정도로

우리에겐 익숙한 이 구절은

이 책의 첫머리에 나온다.

 나는 이렇게 받아들인다.

패자와 약자는 원래 변명이 많은 법이다.

 

(상권) 310 페이지

세르게이 이바노치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생활과 대조해서

전원생활을 사랑하고

찬미하고 있었던 것과 거의 마찬가지로

농민도 또한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계급과 대조해서 사랑하고,

또 그런 식으로 ,,,,중략,,,,

따라서 그는 농민에 대한 자기 견해와

그들에 대한 동정적인 태도를 결코 바꾸는 일이 없었다.

 

(상권) 322페이지

본래 모든 세기에 걸쳐서 철학이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은

개인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과의 사이에

개재하는 필연적인 연관을 찾아낸다고 하는 점에 있으니까

 

사물이든 사람이든 그 모든 대상을  

우리는 그 자체로 

바라보고 사랑해야 한다.

 톨스토이의 본심은 이것이다.

누군가가 우리 자신이 모욕을 느낄 정도로 

우리에게 의도된 친절을 베푼다면,,,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화를 내어야 한다.

그는 나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조롱하고 모욕하고 있는 것이다.

 

 

(하권 ) 402페이지

가정 생활에 있어서 뭔가를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부사이의 완전한 결렬이라든지,

혹은 애정에 뿌리박은 의견의 일치가 제대로 필요하다.

,,,중략,,,이 두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고 있는 초조함은

외면적으로는 아무런 원인도 없는 것이었다.

 

  

공개된 불륜으로

사교계에서 배척당한 후

안나가 경험하는 좌절은 안나의 죄에 대한 대가가 아니다.

안나의 고독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타인의 죄를

다른 타인이 벌하려 드는

사회의 교만과 위선이 발생시킨 결과물이다.                         

 안나는 사랑을 몰랐다.

안나의 자살은 브론스키의 책임이 아니다.

그들 사이의 사랑에는 고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엇에 관심을 갔든 오로지

상대의 사랑이 아닌

자신의 사랑에만 집중했다.

그들의 사랑이 완성되지 못한 이유는

외부가 아닌 내부의 문제 때문이다.

 

 

(하권) 485페이지  

저 푸른 하늘이 무한한 공간임은 나도 알고 있다.

하늘은 옛날 사람들이 말했듯이 둥그런 천장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눈을 가늘게 뜨고 열심히 응시해 보아도

푸르디 푸르게 부풀어 오른 둥그런 천장밖엔 볼 수가 없다.

나는 이미 천체의 무한한 공간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늘은 푸르고 단단하여

둥그런 천장이라고 했다고 해도

그것은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인간은 무리하게 무한한 공간을 보려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운 둥근 천장을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이것을 신앙이라고 불러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늘은 넓고 광대한데,,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만 보고 믿고 사랑한다.

그 하늘이 모든 하늘이 아니라고 고통받기 보다는

차라리 내가 보고있는

아름다운 하늘에서라도 평화를 구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이젠 제발 그만 싸우자.

가톨릭,기독교면 어떻고 이슬람이면 또 어떤가?

무신론자라 한들 또 어떠리,,,

종교 전쟁은 이제 제발 그만 하자...

자신이 보고 있는 하늘만이라도

제대로 올려보고 사랑하자.

 

소설쓰기를 중단했던 톨스토이가

말년에 무턱대고 한 권의 책을 집어들고

중간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가 보니 너무나 책이 재미있더라는 거다.

그래서 책 제목을 보니

자신이 쓴 안나 카레니나 였다고 한다.

어찌하여 톨스토이는

자신이 4년이나 걸려서 쓴 소설을 알차 채지 못했을까?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안나 카레니나의 탈고와 동시에 그는

<참회>를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부터 그의 문학 활동은

주로 종교적, 정신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져 갔다.

그의 초기 사상이 반영되어 있는

안나 카레니나이 출판 이후 의 작품들을 보면

《이반 일리치의 죽음》 (1886년) 《어둠의 힘》 (1888년)

《크로이체르 소나타》 (1889년) 《신의 나라는 당신 안에 있다》 (1894년) 《예술이란 무엇인가》 (1897년) 《부활》 (1889 ~ 99년)

  그가 사상적 변화를 경험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말과 행동이 달랐던 전형적인 지식인의 표상

톨스토이!!

나는 그의 책을 읽으며

인간 톨스토이 대신

작가 톨스토이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작가는 행동이 아닌 글로서 말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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