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중의 꿈’ 대표주자로는 독특한 눈 표현이 인상적인 소녀 인물
화가 요시토모 나라를 꼽을 수 있다. 그의 작품 스타일은 애니메이
션과 그래픽 디자인을 닮았다.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로부터 격렬한 본능의 표현을 이끌어 내는 것에 뛰어나다.
세계일보 2004-06-21
즐거운 시간은 잠깐뿐이다. 삶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젊은이들은 특
별한 꿈보다 단지 살아가는 것이 목적이다. 요시토모 나라(奈良美
智)가 그려낸 아이들에게는 지금 세대에게 나타나는 증후군이 나
타난다. 이들은 모두 자아가 가득한 눈동자에 손에는 도구를 쥐고
혼자 서있다. 게다가 각자의 생각에 몰입해서 서로 대화를 하거나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징조도 없어 보인다. 다만 무언가를 말
하려고 하는 듯한 시도는 보인다. 앞 세대가 이룩해 놓은 경제대국
에서 요시토모의 세대는 무엇을 해야 했을까. 이는 상실을 기반으
로 태어난 아이들에 관한 우화이다.
내 인생의 리얼리티.
어린 시절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일을 하러 가면 방안에서 혼자
서 놀았던 경험, 그다지 낮설지 않은 기억이다. 어쩌면 현대를 살아
가는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광경일 수 있다. 요시토모 나라의 작
품 안에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게 담겨있다. 1959년에 태어난 작가
는 전쟁이나 기아를 겪지 않았고 전공투 세대(일본에서 1960년대
를 대학에서 보낸 세대)의 치열함도 없는 풍족하며 문화적으로 지
루한 세대에 속해있다. 그는 스스로 경험한 것을 그리고 싶어했다.
도시에서 자라고 대학을 졸업한 그가 유일하게 직접 겪은 어린 시
절의 고독과 외로움이었다. 요시토모 나라의 이미지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녀와 강아지, 고양이 등의 주제는 바로 그런 어린 시절
에서 나온 것이다. 직접 느낄 수 있는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그림은
그렇게 탄생했다. 요시토모 나라에게 있어 그림은 그 동안 살아왔
던 리얼리티를 표현하는 것이다.
칼을 쥔 아이.
요시토모 나라의 아이들은 삐죽하고 웃거나 자의식이 가득한 표정
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칼을 가진 아이도 있다. 그래서 어린아이
가 보기에 부적절한 그림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칼에 대해 '살아가
면서 자신을 방어하는 최소한의 무기'라고 말한바 있다. 아마존의
거친 숲을 헤쳐 나가는 탐험가의 칼과 다름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것은 흉기로 보이지 않는다. 너무 작아서 장난감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이다. 그림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있지는 않지만 인물을 둘러싼
환경이나 다 사람이 작은칼보다 더 위협적이다. 아니면 인물이 가
진 정체성이나 중요하게 여기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은
그런 의미가 있음에도 만화나 에니메이션에서 많이 보았음직한 회
화적인 분위기와 귀여운 색감이 지배적이다. 누구나 그림 속의 아
이들을 보며 같은 동네에 살던 심술 궂은 아이나 본인의 모습과 많
이 닮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고양이의 눈, 짧지만 검은 머리카락,
샐쭉한 입까지 흔한 얼굴이다. 그러나 자세히 바라보면 수준 높은
테크닉과 미묘한 색감을 찾을 수 있다. 이는 다년간에 걸친 미적 실
습과 습작을 통해 나온 것으로 요시토모의 기법이다. 엷게 칠한 물
감을 여러 번 겹쳐서 색감을 내고 아크릴로 선을 그린다. 날렵하고
가는 선은 흡사 액션 페인팅 기법을 연상시킨다. 이렇듯 우리의 심
술쟁이 아가씨는 종이와 도구의 긴장된 관계를 유지하는 요시토모
의 페인팅이 아니면 존재 할 수 없다.
I don't mind, If you forget me.
요시토모의 예술적인 영감은 원시적이면서도 직접적인 경험에서
나온다. 열아홉 살에 석달 동안 유럽을 배낭여행하며 본 것들, 부모
님이 없는 어린 시절의 오후... 그는 직접 느끼고 겪은 일이 아니면
그림의 주제로 나타내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향 받은 아티스트를
꼽는다면 고전회화의 대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조토디 본도네
일 것이다. 그는 책에서만 보았던 모나리자를 실제로 봤을 때의 감
동을 잊지 못한다. 신비한 미소와 색감은 앞으로의 작품에도 긍정
적인 영향을 주었다. 피렌체파 회화의 창시자인 조토는 조형과 회
화를 하는 그에게 특별한 아티스트다. 시선을 비틀어서 인물상을
조형적으로 형태화한 것은 요시토모의 작업과 유사하다. 사실 플라
톤적이며 보다 신에 가까운 조각과 아리스토텔레스적이며 인간에
가까운 회화는 공존이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처음은
아니다. 요시토모의 작업은 조토가 그랬듯이 오래 전부터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시도 되었던 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의 연장일 뿐이
다. 그럼에도 그의 작업이 젊은 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는 것은 개인
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회화가 사회에서 개인의 역
할에 중점을 두었다면 요시토모는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을 중요하
게 생각한다. 그래서 젊은이의 꿈, 현실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
에 대해 어떤 희망을 가져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그림에서도 단번
에 드러난다. 때때로 간단한 단문이나 문장을 통해 생각을 나타내
기도 한다. 이것은 일종의 키워드로 그가 그림을 그리고 난 다음 생
각나는 단어를 배합하는데 영감이 가는 데로 쓴 것이다. 전시회의
주제 단어도 그런 축에 속한다. 2001년 요코하마 비엔날레 특별 전
에서 선보인 "I DON'T MIND IF YOU FORGET ME"전만해도 전시
가 있기 10년 전부터 생각한 키워드였다. 그때는 단어만 떠올랐지
만 시간이 가면서 문장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의 "YOU"는 관객이
아닌 그의 작품을 뜻한다. 개인에게 소장된 것이나 어딘가에서 보
여지고 있을 그의 수많은 작품을 말한다. 그는 "YOU"를 너무나 좋
아한다. 그러나 그것들을 가진 사람이나 보고 있는 이들은 작가 이
상으로 "YOU"를 사랑해 줄 것이다. 그래서 위안을 삼는다는 의미
로 만들어낸 키워드이다.
BORN TO LOSE
요시토모 나라는 논리적인 것 그래서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는
것보다는 조금 비논리적이라도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완벽하지 않
은 이미지를 사랑한다. 그는 완벽한 것이 무너지면서 다시금 완벽
해지는 사이클은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그림이나 인간
이나 모자란 면이 있어야 리얼리티가 완전해 진다. 사람을 숫자로
상징하면 2다. 2는 불완전하며 서로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면 생존
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인간이다. 완전한 것은 신뿐이다. 신은 숫자
로 나타내면 1이다. 1은 완전한 수로 더 이상 나누어지지 않으면서
도 모든 숫자를 포함한다. 2는 1에서 시작한다. 아마도 요시토모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것이 요
시토모가 스스로를 천재라고 말하는 아티스트들과의 차이점이다.
그는 불완전한 삶으로 살아가며 그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의 작품
과 전시회를 보며 좋아하는 것이 최고의 재능이 아닐까 생각해 본
다. 그의 작품은 상실에서 태어났으나 새로운 희망을 상징한다. 상
실은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힘찬 도약
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ILLUST 2002 JULY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