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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羞花: 수화)

장원정 |2008.08.28 13:14
조회 207 |추천 0

 

아버지의 임지(任地)인 쓰촨성에서 태어나, 17세 때 현종의 제18왕자 수왕의 비가 되었다. 그러나 현종의 무혜비가 죽자, 황제의 뜻에 맞는 여인이 없어 물색하던 중 수왕비의 아름다움을 진언하는 자가 있어, 황제가 온천궁에 행행(行幸)한 기회에 총애를 받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수왕의 저택을 나와 태진이란 이름의 여도사가 되어 세인의 눈을 피하면서 차차 황제와 결합되었으며, 27세 때 정식으로 귀비로 책립되었다.  다년간의 치세로 정치에 싫증이 난 황제의 마음을 사로잡아 궁중에서는 황후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았고, 세 자매까지 한국·괵국·진국부인에 봉해졌다. 또한, 친척 오빠인 국충 이하 많은 친척이 고관으로 발탁되었고, 여러 친척이 황족과 통혼하였다. 그녀가 남방 특산의 여지라는 과일을 좋아하자, 그 뜻에 영합하려는 지방관이 급마로 신선한 과일을 진상한 일화는 유명하다.  755년 양국충과의 반목이 원인이 되어 안녹산이 반란을 일으키자(안사의 난), 황제·귀비 등과 더불어 쓰촨으로 도주하던 중 장안의 서쪽 지방인 마외역에 이르렀을 때,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군사가 양국충을 죽이고 그녀에게도 죽음을 강요하였다. 현종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자,  그녀는 길가의 불당에서 목을 매어 죽었다.  정사도 그녀를 "자질풍염"이라 적었으며, 절세의 풍만한 미인인데다가 가무에도 뛰어났고, 군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총명을 겸비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이백은 그를 활짝 핀 모란에 비유했고, 백거이는 귀비와 현종과의 비극을 영원한 애정의 곡으로 하여 《장한가》로 노래한 바와 같이, 그녀는 중국 역사상 가장 낭만적인 주인공이 되었다. 진홍의 《장한가전》과 악사의 《양태진외전》 이후 윤색은 더욱 보태져서, 후세의 희곡에도 좋은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

흔히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 '수화'(羞花: 꽃이 부끄러워 한다)라는 말을 쓴다.

하루는(아직 현종을 만나기 이전) 양귀비가 정원에서 꽃구경을 하다가 무성하게 꽃이 핀 모란과 월계화 등을 보고 덧없이 지나가는 청춘을 아쉬워하였다. 그래서 "꽃아! 꽃아! 너는 해마다 다시 피어나지만 나는 언제나 빛을 보겠느냐?"라는 한탄과 함께 눈물을 흘리하면서 그 꽃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갑자기 꽃받침이 오그라들고 꽃잎이 말려들어갔다. 그녀가 만진 꽃은 바로 함수초(含羞草)였던 것이다. 이때 한 궁녀가 그러한 광경을 보았다. 그후 그 궁녀는 가는 곳마다 "양귀비가 꽃과 아름다움을 견주었는데 꽃들이 모두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고 소문을 내었으며, 여기에서 "수화(羞花)"라는 말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때, 당현종이 꽃을 부끄럽게 하는 그 아름다움에 찬탄하고는 절대가인 이라 칭했다고 합니다.

 

 

 

물고기는 물속으로 가라앉고(沈魚),    기러기는 땅밑으로 떨어지며(落雁)

 달은 구름뒤로 얼굴을 가리고(閉月) ,  꽃은 스스로 부끄러워 하노라(羞花)

 

 

(출처 :  http://blog.naver.com/dailymorning/20020870249,

          http://www.chinabang.co.kr/renwu/yangguifei.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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