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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렌티나 그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

조셉 정 |2008.08.28 13:46
조회 171 |추천 1
이탈리아 : AC 피오렌티나

당신은 혹시 피렌체를 방문해본 적이 있는가? 르네상스의 발원지로서 유럽의 예술을 이야기하자면, 빠질 수 없는 곳이 바로 피렌체이다. 피렌체를 방문한 한국인들은 그곳의 두오모에 큰 의의를 둔다. 피렌체의 두오모는 일본작가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가 지은 '냉정과 열정사이'에 등장하는 남녀 주인공이 10년 만에 재회를 하는 그 장소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실제로 두오모에 올라가면 한국어 혹은 일본어로 된 낙서가 두오모 기둥 군데군데 있는 곳을 볼 수 있는데, 그 대부분의 내용이 연인과의 이별과 만남 그리고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아름답고 슬픈 사랑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도시 피렌체에는 보라색 유니폼이 아름다운 축구팀이 하나 있는데, 감성적인 피렌체에 위치한 클럽이어서일까? 피오렌티나 역시 아름답지만 슬픈, 그리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세월은 흘렀지만 여전히 바티골은 기억에 남아있었다.

바티골, 그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

아름다운 도시의 아름다운 축구클럽에서 뛰게 되면, 그 소속의 선수 역시 로맨티스트가 되는가보다. 무슨 이야기냐고? 이 이야기는 그라운드의 로맨티스트 바티스투타의 이야기이다.

1990년대 이탈리아 축구 영웅이었던 '말총 머리' R.바조가 유벤투스로 이적하고, 그 공백을 메운 것은 아르헨티나 출신의 공격수 바티스투타였다. 91년부터 9시즌 동안 269경기에 출전한 그는 168골을 기록하였고, 중계를 하던 해설자가 그의 이름을 모두 부르기 전에 이미 그의 슛은 상대방의 골문을 가른다 하여 붙은 별명이 '바티골'(바티스투타에서 앞글 '바티'를 뜻하는 것)이다.

그의 맹활약에 반한 수많은 명문 클럽은 바티스투타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며 팀과 함께 자신의 축구 인생을 지켜갔고, 피렌체 시민들은 그런 바티스투타의 모습에 감동하며 자신들의 홈경기장인 아르테미오 프란치 스타디움에 그의 동상을 만들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엔 피오렌티나를 떠나 AS 로마로 이적을 하게 되는데, 피오렌티나를 사랑하지만 이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된다.

AS 로마로 이적한 바티스투타는 그곳에서도 맹활약을 했고, 2001년 시즌에 리그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우승 이야기보다 감동적인 이야기는 바로 바티스투타가 이적한 이후 AS로마와 피오렌티나의 첫 번째 맞대결에서 나왔다. 당시 바티스투타는 경기전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차라리 지금 부상을 당했으면 했다. 그러면 경기에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그리고 그는 그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로마의 동료가 환호하며 그에 달려가 안겼지만, 그는 울고 있었다. 축구 경기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수많은 골 뒤풀이가 나왔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골 뒤풀이가 나와도 이날 바티스투타의 눈물만큼 아름답고 슬픈 뒤풀이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피렌체 캄포 디 마르테역. 이곳에서 경기장이 보인다

칼치오 폴리에 휘말린 피오렌티나

" 피오렌티나 경기장? 거기는 왜 가려고? "

피렌체 한인 민박집에서 묵던 내가 주인 아줌마에게 들은 첫마디였다. 지금껏 피렌체에서 한인민박을 하면서 두오모나 미켈란젤로 광장 같은 곳을 물어보는 경우는 많았지만, 피오렌티나 홈경기장을 찾아가는 방법을 묻는 경우는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찾아가는 방법은 간단했다. 피렌체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바로 다음 역인 '피렌체 캄포 디 마르테'에서 내리면 바로 역 앞에 경기장이 보인다. 낭만적인 피렌체의 두오모보다도 낭만적인 축구클럽을 만난다는 사실이 아르테미오 프란치 스타디움으로 가는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홈경기장에 다가가니 왠지 모를 침울한 분위기가 경기장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이유인즉, 내가 피렌체를 방문했던 그 시기는 칼치오 폴리 파동으로 인해 피오렌티나의 세리에 B 강등이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아르테미오 프란치 스타디움

세리에 A 사상 최악의 승부 조작 스캔들에 휘말린 피오렌티나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져버린 듯했다. 굳게 닫힌 스타디움 정문 앞에 피오렌티나 팬들이 걸어 놓은 배너에는 피오렌티나의 시련을 함께 이겨나가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만이 적혀있을 뿐이었다.

나에게 피오렌티나는 바티스투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아있는 공간이었지만, 내가 그곳을 찾았을 당시 피오렌티나는 클럽의 명예회복과 더불어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이 안쓰러웠던 것일까? 같이 동행중인 형이 볼펜을 꺼내 피오렌티나를 응원하는 문구를 적었고, 그걸 지켜본 나도 피오렌티나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문구를 적었다. 그걸 보던 형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 근데, 이거 한국말로 쓰면, 이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까? "

그래서 급하게 문구 끝에 'From Korea'라고 크게 표기를 하고, 경기장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어떻게든 경기장 안을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했지만, 결국 안에 들어가는 건 실패. 경기장을 관리하던 이탈리아 아저씨에게 '우리는 곧 있으면 한국에 돌아가야 돼서, 이번이 아니면 다시 이곳에 올 수가 없다.'라며 사정을 했지만 통할 리가 없었다. 대신 멀리서나마 녹색 잔디를 살짝 볼 수 있었다.

아르테미오 프란치 정문에 걸려있던 배너

배너에 메모를 하는 피오렌티나 노부인

아르테미오 프란치 스타디움을 그냥 떠나기엔 아쉬움이 있어, 바로 앞에 있는 팬샵에 들렸다. 피오렌티나의 공식상품을 판매하는 곳인 이곳에도 바티스투타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다만, 한가지 바뀐 것이 있다면, 이제 그들이 환호하는 것은 바티골이 아닌 토니골이라는 것이었다.

90년대 피오렌티나의 공격수였던 바조의 빈자리를 바티스투타가 메웠으나, 바티스투타가 로마로 떠난 후 세리에 B로 강등되었던 피오렌티나. 이후 다시 세리에 A로 올라오기까지 세 시즌이 걸렸다. 그런 그들 앞에 등장한 구세주가 바로 루카 토니였다. 피오렌티나 팬들은 새로운 골잡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보냈고, 이에 그는 세리에 A 역대 최다 리그 득점을 기록하면서 팬들에게 화답했다. 그리고 '바티골'에 환호하던 피오렌티나 팬들은 이제 '토니골'에 환호하고 있었다.

일정상 피렌체를 떠나 피사를 거쳐 로마로 갈 예정이었던 나는 화창하던 오전, 짧은 만남을 끝으로 아르테미오 프란치와의 이별을 해야 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토니골'에 대한 기대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던 피오렌티나. 적어도 내가 방문했을 당시 피오렌티나는 그런 모습이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낭만이 숨 쉬고 있는 이 아름다운 클럽이 불안한 미래에서 벗어날 수 있길 기도해주는 것뿐이었다.

경기장 바로 앞에 있는 팬샵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던 푸른 잔디

그 후 이야기

며칠 후, 여행의 종착지였던 로마에서 들려온 소식 하나. 일시적이긴 했지만, 피렌체 방향의 모든 열차가 운행을 중단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인즉, 피오렌티나의 강등 결정에 반발한 팬들이 '피렌체 캄포 디 마르테' 역을 점거하고 격렬한 항의시위를 했다는 것. 그들은 클럽의 생존을 위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피오렌티나는 결국 세리에 A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마 당시 피오렌티나 팬들은 이탈리아가 독일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 이상으로 기쁘지 않았을까? 또한, 06-07시즌에서 리그 6위를 기록하며 UEFA컵 진출권까지 획득했으니 더 이상 지난해의 불안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사라졌을 것이다.

물론, 그들이 바티스투타에 이어 새로운 레전드가 되길 원했을 토니가 이번 시즌을 끝으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했다는 점에서는 실망스럽겠지만 말이다.

아니, 어쩌면 내년시즌부터는 '토니골'이 아닌 '무투골(아드리안 무투의 무투)'에 피오렌티나 팬들은 환호하고, 여기에서 새로운 낭만과 이야기를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피오렌티나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바라봐야 진정한 매력을 찾을 수 있는 그런 클럽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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