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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제품의 함정을 피하라

윤광식 |2008.09.04 09:19
조회 1,062 |추천 0

디지털 혁명은 기업들에게 빠른 변화를 강요한다. 경쟁사보다 더 빨리 새로운 제품을 내놓고 시장을 선점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은 디지털 시대의 보편적 진리처럼 받아들여진다.  또, 과거의 주력 산업을 구성했던 낡은 제품을 버리고 빨리 첨단 제품에 뛰어들어야 더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지금도 첨단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수많은 기업들이 망하고 있다. 그 기업들 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서 도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경쟁사보다 더 앞서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몰락의 길을 걷는 경우도 흔하다.  반대로 시장에 늦게 뛰어들었음에도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기업도 있다.  한편, 어떤 제품의 경우에는 유망한 첨단 제품이라고 생각하여 수많은 기업이 뛰어든 결과 시장 참여 기업 중 어느 한 곳도 제대로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첨단 제품의 함정

 

지금 첨단 제품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디지털 카메라와 MP3 플레이어 시장을 살펴보자.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선발 주자는 코닥이다. 흔히, 코닥이 전통적인 필름 메이커로서 기존 시장에서의 이익에 안주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디지털 사진 기술의 개발에 소홀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코닥은 디지털 사진의 포맷인 포토CD를 개발하고, 디지털 사진의 핵심인 이미지 프로세싱 기술에 누구보다 앞서 투자했다. 게다가 디지털 카메라의 핵심 부품인 CCD 개발에도 노력을 쏟았다. 90년대 후반 코닥의 고품격 디지털 카메라는 당시로서는 경탄할 만한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었다. 이 시기 니콘이나 캐논 등 전통적 카메라 업체는 디지털 카메라의 시제품을 겨우 만드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때 코닥은 이미지 프로세싱 같은 핵심 기술에만 집중 투자하였고, 카메라 바디(Body, 사진기 몸체)는 니콘이나 캐논의 필름 카메라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등 전통적 기술의 습득에는 소홀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전통적 카메라 업체들은 이미지 프로세싱 등 디지털 기술의 개발에는 한발 늦었으며, 기술이 범용화되는 시점에 가서야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자사가 강점을 갖고 있는 카메라 디자인 능력과 익숙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다양한 렌즈 등 전통적 역량을 바탕으로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급속하게 잠식해 들어갔다. 그 결과 초기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코닥을 어렵지 않게 따돌릴 수 있었다.


 

MP3 플레이어는 엠피맨이라는 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그러나, 지금 시장의 리더는 뛰어난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이리버와 애플의 아이팟(iPod)이다. 엠피맨은 MP3 플레이어에 대한 원천 특허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산을 거쳐 후발 업체에 인수되고 말았다.


 

엠피맨은 선발 주자로서 초기에 기술 개발에 지나치게 많은 금액을 투자했으나,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지 않아 초기 자금 회수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핵심 기술이 아닌 부분, 예컨대,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와 같은 부분을 소홀히 함으로써 결국 시장에서 외면당하게 되었다. 반면, 아이리버는 MP3의 핵심 기술이 범용화, 모듈화되는 시점에 진입하여 핵심 기술 개발에 대한 부담을 덜고, 주변 기술과 디자인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결과 크게 성공할 수 있었다. 

 


 

e-비즈니스의 오해

 

선발 기업이 도태되는 현상은 유형 제품뿐만 아니라, 비즈니스 자체에서도 일어난다. e-비즈니스가 본격화되던 90년대말, 새롭게 펼쳐지는 디지털 영토를 선점하지 못하면 이후에는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절박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그래서 마치 제국주의 시절에 식민지를 개척하듯이 너도나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재 e-비즈니스 중 가장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로 여겨지는 경매 사이트를 살펴보자. 초기에 경매 시장에 진입한 기업으로는 셀피아, 와와 등이 있었다. 특히 와와는 당시로서는 드문 TV 광고까지 하면서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와와나 셀피아는 제대로 사업 한번 못해본 채 시장에서 퇴출되고 말았다. 초기 경매 사이트의 승자는 상대적으로 늦게 시장에 본격 진입한 옥션이었다.


 

옥션에 의해 평정된 경매 시장은 상당 기간 독점 체제가 유지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최근 경매 사이트는 아니지만, 취급하는 상품과 가격대가 거의 비슷한 G마켓이 옥션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다. 옥션은 구매 거부나 판매 거부 등 불량스러운 거래 행위를 한 회원에 대해 영구 거래 정지 등 강력한 제재를 해왔으나, 최근에는 이런 장치들을 대폭 해제했다. 이러한 변화는 신규 업체의 진입에 대한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초기 업체는 망하고, 시장이 상당히 성숙한 시기에 진입한 업체는 나름대로의 성장을 거둔 이 같은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에는 시장의 규모가 작아 여러 업체가 공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시기를 버티지 못하는 업체는 도태되게 된다. 이때 생존한 업체는 상당 기간 규모의 경제를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 크게 성장한 시점에서는 또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독점에 가까운 지위에 오르게 되면 지나치게 많은 상품이 판매됨으로써 규모의 비경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즉, 소비자들은 하나의 웹 사이트에 있는 수많은 상품에 복잡함과 부담을 느끼게 되어 새로운 대안을 희망하게 되고, 그 결과가 신규 업체의 진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승자가 없는 시장

 

디지털 미디어 쪽의 대표 제품인 DVD 플레이어를 보자. DVD는 CD를 잇는 대용량 미디어로 각광 받아왔다. 지금의 기준으로서는 대수롭지 않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DVD에 수록되는 10기가바이트(Dual Layer의 경우)에 육박하는 용량은 대단한 것이었다. DVD 레코더를 활용한 캠코더도 등장하면서 DVD 플레이어의 활용도는 더 높아지고 수익 잠재력도 더 커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DVD 플레이어는 프로그레시브 스캔이나 오디오 디코더 같은 기능을 내장한 제품이 5만원 정도에 팔리기도 한다. 첨단 제품이 운동화보다 더 싼 가격에 팔리는 것이다. 사실, DVD 플레이어 시장에서 돈을 번 기업은 거의 없다. 선발 기업은 나름대로 초기 시장에 비싼 가격으로 제품을 팔 수 있었지만, 그 수량은 많지 않았다. 결국 초기 투자비를 제대로 뽑기 어려웠다. 후발 기업은 범용화되고 저렴해진 부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투자비는 많이 들지 않았지만, 워낙 낮은 시장 가격 때문에 돈을 벌 수 없었다. 

 


 

함정을 벗어나는 방법

 

선발 기업의 이점이 충분히 발휘되지 못하고, 오히려 약점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현상은 속도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이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전통적인 개념이 통하지 않는 혼동 속에서는 새로운 시각으로 더 많은 상황을 고려한 복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 기술 도그마에서 벗어나자

기술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표준화되고 범용화된 기술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디지털 카메라와 MP3 시장에서 선발 기업이 이득을 얻지 못하고, DVD 플레이어 시장이 초저수익 구조로 몰락하는 이면에는 기술의 표준화와 범용화라는 상황이 자리잡고 있다. 첨단 기술일수록 표준화 열풍이 뜨겁다. 표준화된 기술은 다양한 업체에 의해 모듈화된다. 부품이 모듈화되면 완제품을 만드는 것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하다. 그 결과, 수많은 완제품 업체들이 시장에서 출혈 경쟁을 하게 된다.


 

자동차와 같은 전통적 제품의 경우 기술의 표준화, 모듈화는 멀기만 한 이야기다. 다른 회사의 자동차와 부품 공유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같은 회사의 같은 브랜드라도 모델 타입에 따라 부품이 다르기도 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기술과 부품의 비표준화는 시장 전체로 보면 비효율성을 낳지만,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전매적(專賣的) 자산을 갖는 것이 되므로, 경쟁 무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이는 자체 수요만으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표준화의 부정적 측면을 인지한 기업들은 첨단 제품에서 표준화를 탈피해보려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 예컨대, 플래쉬 메모리의 실질적 시장 표준은 컴팩트 플래쉬(CF)와 시큐어 디지털(SD)로 발전되었다. 그러나 소니는 자체 규격인 메모리 스틱을 고집해왔고, 올림푸스와 후지는 익스트림 디지털(xD)이라는 새로운 자체 규격을 내놓았다. 이런 시도가 실패라고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끌어내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소비자들이 이들 회사 제품의 구입을 고려하다가도 비표준화된 비싼 메모리 카드 때문에 주저하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IBM은 뛰어난 PC 아키텍처인 MCA를 개발했지만, 시장에서는 기술적으로 뒤떨어진 VESA 표준에 밀리고 말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기술 표준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승부의 수단은 기술 이외의 영역에서 찾아야 한다.


 

● 사소한 것으로 승부하라

핵심 기술은 표준화된 값싼 기술을 선택하되, 부가적 차원에서 자사만의 무기를 개발하는 것도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제품 디자인이나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대표적인 차별화 포인트다. 아이리버의 프리즘형 디자인, 아이팟의 클릭 휠 인터페이스는 이들 제품을 시장의 선두에 올려놓은 핵심 요소다. 소비자는 제품에 어떤 기술이 적용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소비자의 평가는 눈으로 보는 것과 손으로 만지는 것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흔히 제품 개발자들은 사소하게 생각하는 비기술적 요인들로 구성된다.


 

또한, 디자인이나 인터페이스는 하나의 제품에서 성공했을 경우, 다른 제품에서도 계속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예컨대, 클릭 휠 인터페이스는 MP3 뿐만 아니라 핸드폰 같은 제품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존 자산을 활용하라 

브랜드와 같은 기존의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애플은 기존에 갖고 있던 혁신적 이미지를 아이팟에 십분 활용했다. 브랜드도 아이맥(iMac)의 연장선에서 아이팟이라고 붙였다. 새로운 제품이라고 새로운 브랜드를 섣불리 도입하는 것은 지양하고, 기존의 브랜드 자산이 있다면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 한 걸음 늦춰라

경쟁사보다 먼저 시장에 진입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시장이 성숙하기 전에 먼저 진입했다면 성숙될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충분한 자원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셀피아의 경우 인터넷 경매 혹은 쇼핑이 충분히 성숙될 때까지 버틸 수 있었다면 상황은 개선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충분한 자원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먼저 진입하는 것보다 상황을 지켜보면서, 주변 여건과 시장이 성숙되어 진입에 최적인 시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한편, DVD 플레이어처럼 시장이 지나치게 경쟁이 심하고, 대체재가 나오면서 조기에 포화된다면 시장에 진입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미래의 시장이 어떻게 전개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여러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수립해 보고 그에 따른 대응 전략을 수립하는 노력은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


 

● 소비자의 욕구를 기준으로 판단하라

PDA가 소비자에게 선 보인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대중화되지 않고 있다. PDA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엔지니어들은 새로운 기능에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철저히 외면해왔다. 그것은 제품이 소비자의 어떤 욕구를 충족시켜주는지가 불명확했기 때문이다.


 

기술의 진보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등장하지만, 그 기저에 있는 인간의 욕구는 크게 다르지 않다. 비행기는 이동 욕구와 함께 날고 싶다는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킨다. 핸드폰은 말을 하고 싶다는 욕구와 함께 장신구로서 자랑하고 싶다는 욕구에 대응한다. 컴퓨터 게임은 지배와 통제 욕구를 충족시킨다. 컴퓨터는 지식,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욕구와 함께 일의 도구로서 수용된다. 그러나, PDA는 애매하다. 전자수첩으로, 전자 책으로, MP3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면서 가격은 비싸다. PDA 중 예외적으로 일반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었던 팜 파일럿(Palm Pilot)은 저렴한 가격대의 전자 수첩 개념으로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팜도 컬러 액정 등 불필요한 기능을 달고 가격이 비싸지면서 인기를 잃었다.

 


 

편견을 버리고 고객과 시장을 관찰하라

 

소비자에게 첨단이라는 것은 의미가 없다. 과거 디지털 기기의 초기 시장에서는 첨단, 디지털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첨단’과 ‘디지털’은 워낙 대중화되어서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신제품을 개발할 때는 고객의 기본 욕구에 부합되는가에 대한 철저한 고민이 필요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새로운 길이 성공으로 가는 문을 열어줄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희망만큼의 위험도 지니고 있다. 무모한 도전보다는 반 발자국을 앞서가는 슬기로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회사 관점에서의 편견과 고집을 버리고 고객과 시장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복합적 사고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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