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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함, 현대사회가 낳은 슬픔

오승중 |2008.09.06 11:56
조회 172 |추천 5


 

쿨한 사람들은 나르시시시트를 닮아 있다.

 

나르시시스트들의 과대 자기는 그 기반이 약해

자존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항상 외부로부터의 확인이 필요하다.

그렇게 때문에 겉으로는 독립적이고 외부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현대의 나르시시스트들은

타인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를

항상 의식하며 거기에 민감하다.

 

그래서 타인의 사소한 시선이나 말 한마디에도 큰 상처를 입는다.

 

또한 이렇게 남의 시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한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남들에게 받을 수 있는 상처를 예방하기 위해

오히려 아무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려 한다.

 

쿨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회피한다.

애써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대인 관계로 인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역설적 초연함' 이란 다른 사람이나 사물은 물론

자신의 감정과도 거리를 두는 것을 말한다.

 

그때그때의 감정에는 충실하나

분노, 슬픔, 외로움 등 오래 지속되면서 거치적거리는

부정적 감정에는 초연한 태도를 취한다.

 

이는 그 누구와도 정서적으로 얽히는 것을 피하려는 태도이다.

 

쿨함에 숨어 있는 역설적 초연함은

대인 관계에서 오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방어함과 동시에

현대 사회 속에서 겪는 좌절감과 박탈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장치이기도 하다.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박탈감과 무력감, 불안 등에

 대처하는 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웃어넘기거나

모든 불합리함을 기성 사회의 잘못된 유산으로 치부해

비웃어 주는 것이 편리 할 수 있다.

역설적 초연함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쿨함, 현대 사회가 낳은 슬픔

 

그러나 쿨함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기에 쿨함의 딜레마가 있다.

쿨함은 차별적이다

 

자본주의적인 속성 위에서 자란 쿨함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면을 띤다.

다시 말해 쿨함에는 어느 정도의 재력이 필요한 것이다.

 

김별아는 소설 '이상한 오렌지'는 쿨함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쿨하다는 것은 한없는 상냥함이야.

그것은 질척대는 삶의 중력권 밖에 있다는 얘기거든,

그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절대 허락되지 않는 거야.

살기 위해서는 일상에 신음하기 마련이니까"

 

삶이 쿨함을 허락하지 않더라도

쿨함이란 갑옷으로 무장하려는 젊은이들은 그래서 슬프다.

 

쿨함에 목숨 거는 젊은이들은 말 그대로

멋지고 자유롭고 세련되에 보이기 위해 애쓰지만,

 

알고 보면 한치 앞도 모르는 시대에서

살아남고자 악다구니를 쓰는 것이고,

 

외로우면서도 상처 입기 두려워 외로움을 참아 내고 있는 것이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_ 김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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