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젊음.
08년 9월 6일 토요일 저녁 10시경 광화문 시네큐브에 <우린 액션배우다>의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간다. 이 영화관에서도 수백 수천 번은 올라갔을 흔해빠진 엔딩 크레디트다. 성룡영화 고유의 NG모음도 없고, 멋지고 장엄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헐리우드식 크레디트도 아니다. 하지만 관객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그 검은 배경의 스타하나 없는 크레디트 속 배우와 스텝들의 이름을 꼽씹으며 마지막을 기다렸다. 그리고 모두 사라지고 영화가 끝이 나자 조명이 켜지며 사람들은 웃으며 극장을 빠져나간다. 실로 놀라운 광경이다. 영화를 존중하는 극장과 영화의 숨결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귀한 관객들의 모습. <우린 액션배우다>를 만든 액션배우들의 고단한 젊음의 숨결에 대중이 동조한 순간이다. 한 순간도 일반영화에서 그들(스턴트맨)을 쉽게 볼 수 없었고, 쉽게 극중에서 살아남기도 힘들었지만, 이 순간 이 영화가 상영되는 이 극장에서만큼은 그들은 진정한 액션히어로가 된 것이다. 마치 주문을 걸 듯 그들은 이 순간 이 영화관의 관객들에겐 영웅이 되었다. 그들은 언젠가 주먹을 꽉 쥐었던 내 젊음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액션스타가 부럽지 않았던 꿈꾸는 젊음 말이다.
정병길 감독은 운동을 하다가 미술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미대 입시를 준비하지만 이것도 마음대로 안 된다. 결국 주성치 비디오만 주야장천 빌려보던 백수 생활을 거쳐 액션스쿨에 8기로 입학한다. 수료작으로 <칼날 위에 서다>를 연출한 후, 액션 연기를 하는 다른 동기들을 모델로 한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를 찍는다. 독특한 5명의 캐릭터가 액션배우를 하면서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마지막엔 한 명을 제외한 모두가 다른 직업을 택한다.
영화<우린 액션배우다>는 대중에게 어필하기 힘든 작품이다. 이유는 첫째 저예산 독립영화다. 둘째, 영화에 스타가 없다. 셋째, 무엇보다도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부터 마음을 고쳐먹을게 분명하다. 초반부터 배를 잡고 웃기게 만드는 이 다큐멘터리는 독특한 내레이션과 재기 넘치는 생활유머로 관객을 압도하며 시작한다. 백수시절 주성치 영화를 보며 감독의 꿈을 키웠던 이야기부터, 액션스쿨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들은 한편의 코미디처럼 느껴진다. 깨지고 늘어나고 부러지고 찢기는 고통의 연속이면서도 바쁘고 박봉인 우울한 스턴트맨의 고된 삶이지만, 젊음을 배신할 수 없다는 듯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그들의 진솔한 모습이 관객을 울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게끔 한다.
요즘 21세기형 젊음은 꿈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꿈을 생각하기엔 바쁜 세상이라나? 걷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된다는 조기교육에 놀이터 소꿉장난 속 미래에 대한 귀여운 상상은 사라졌고, 정규교육 12년간 계속되는 엄마들 치맛바람에 아이들은 학원에서 혹독한 미래를 그린다. 가정폭력에 부쩍 늘어난 이혼의 여파에 떠밀려 자신에 대한 생각을 할 겨를 없이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대학을 가라는 담임의 잔소리가 들릴 뿐이다. 뭐 여기선 좀 여유 있겠다 싶었지만, 학점관리에 MT다 동아리다 신나게 놀기 바쁘면 영장이 날라 온다. 제대 후 정작 자신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면 인턴이다 어학연수다 뭐다 대기업 취업을 위한 몸부림을 이유도 모른 체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저 그게 최고라고 들었고, 그래야 돈을 벌어 차를 뽑을 수 있기에 강요된 미래일 뿐이다. 우리의 꿈은 무엇일까? 멀어져버린 우리의 미래를 생각하기엔 너무도 바쁜 세상. <우린 액션배우다>에는 그 젊음의 초상이 고스란히 존재한다. 그것도 다섯씩이다.
<우린 액션배우다>의 다섯의 젊음들은 액션배우를 꿈꾼다. 강요되지 않은 그들의 선택으로 멋진 미래를 그린다. 그래서 그들이 공통적으로 처음 택한 직업이 스턴트맨이다. 촬영 현장에서의 고된 모습과 실패를 반복하는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스크린에 생생히 표출된다. 하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스크린과는 반대로 세상의 멀티플렉스 스크린은 스턴트맨을 비춰주지 않는다.(실제 멀티플렉스에서 <우린 액션배우다>를 볼 순 없다.) 뒷모습 잠깐 혹은 대역으로 잠깐, 감독은 쉽게 죽이기 일쑤고, 금세 사라지기 십상이다. 오로지 그들을 비추는 스크린은 그들만의 세상이다.(광화문 시네큐브 처럼 소중한 예술영화관과 같은) 서로가 서로의 젊음을 위로하며 그들은 전진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았던 혹은 감춰뒀던 인생의 흔적들도 그들이 만든 <우린 액션배우다>의 스크린에서만큼은 그 잘나가는 이병헌, 장동건보다 비중 있게 그려진다. 젊은 그들이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은 진정한 액션배우의 아우라를 내뿜는다. 서로를 통해 성장하며 동료의 죽음에 오열하고, 새로운 인생의 길에 설레곤 한다. 그것이 인생이라나. 그것이 멋진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라며 다섯의 젊음은 크게 웃는다. 그 웃음에 마술처럼 관객들까지 멋진 그들의 팬이 된다.
영화의 중간 중간에는 연출된 장면도 보인다. 신호등 교통사고신이 그렇다. “왜 스턴트맨이 되셨어요?”라는 프로듀서의 질문에 한 배우는 실제 교통사고 스턴트를 보여준 후 멀쩡히 일어서서는 “잘 안 다치는 특기가 있어서요.”라 말하며 특기를 살리려고 스턴트맨이 됐다고 말한다. 그 연출된 거짓은 진실로 다가온다. 그들의 인생은 액션배우의 인생처럼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다. 도로 한복판에서 뒹굴수도 있는 생생한 젊음이 있다. 우리 모두가 그 불확실성에 인생을 걸어왔기에 다섯 명의 액션스타에게 진정한 존중을 보낼 수 있다. 각자의 인생 속 액션이 만드는 현실은 일상속의 멋진 시퀀스를 탄생시키고, 극장에 올라가도 손색없는 네러티브에 평단과 관객은 환호한다. 우리는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감동의 눈물을 닦을 수 있다. 서로의 인생을 응원하며 피어나는 꽃봉우리를 마주한다. 난 오늘저녁 정말 진솔한 청춘영화를 보았다. 돌아오는 저녁길 한 노랫말이 생각나더라. 젊음은 우리의 것 그것이 젊음. 신나게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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