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경기 침체의 늪 ... 한국 "자살 열병" 도지나

이민정 |2008.09.09 21:13
조회 130 |추천 0

국민일보 2008. 9. 9 19:01

 

*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살 원인.대책

 

# 30대 중반 여성이 지난 7일 대구 율하동에서 5세, 7세 두 아들과 함께 농약을 먹고 목숨을 끊었다.

이들을 발견한 친정어머니는

사위의 사업 실패로 1년 전부터 같이 살고 있던 딸이 평소 생활고를 비관했다고 말했다.

 

 

# 30대 초반 여성이 지난 달 27일 서울 지하철 5호선 개화산역에서

5세 딸과 11세 아들을 팔에 낀 채 달려오는 전동차에 뛰어들었다.

엄마와 딸은 숨졌고 아들은 중태다.

숨진 여성의 남편은

"건설 현장 일용직으로 일하다 최근 허리를 다쳐 빚까지 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다"면서 흐느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 어렵다는 최근의 경제 상황 속에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8일에는 연예인 안재환씨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사회단체들은 외환위기 당시 돌림병처럼 몰아쳤던 '자살 열병'이 10년만에 도지는 게 아니냐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화여대 간호과학부 이광자 교수는

최근 우리나라 자살의 특성으로 급격한 자살률 증가와 경기침체 연동성을 꼽았다.

자살 사망자 수를 보면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급증했으며,

이후 주춤하다 2002년부터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더니 경제 사정이 약화된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경찰청의 2007년 자살 통계를 보면 빈곤(7위)이나 사업 실패(8위)는 주요 자살 원인이 아니다(표 참조).

하지만 염세 비관(1위), 낙망(5위), 가정불화(6위) 때문에 목숨을 끊은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경기침체와 연관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교수는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에 시달리다 세상을 비관하게 되고,

부부 사이도 나빠져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최근 범정부 차원에서 자살방지 종합대책 마련에 나설 만큼 자살은 심각한 국가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 대책은 자살의 근본 원인이 경제적 빈곤과 질병으로 인한 고통, 고령 등이라는 점을 고려해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경제적 안정망 강화가 핵심을 이룰 것으로 보인다.

또 지하철 스크린도어 확대와 교각 정비, 농약 구입 규제, 자살 사이트와 같은

유해 사이트 차단책 등의 방법론도 논의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살 사망자 수 증가가 세계적 추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있으므로 이에 대한 맞춤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통계청이 9일 발표한 2007년 사망 및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도시보다 농촌에서 자살자가 많다.

서울 자살률(인구 10만명 자살자 수)은 19.6으로 전국 평균 23.9보다 낮은 반면

강원도 33.0, 충남 31.7 등 지방은 평균을 웃돈다.

아주대 인문사회의학과 이영문 교수는 "주요 의료기관과 복지기관이 도시에 집중돼 있는 반면

농촌 지역은 자살 예방 정책이 빈약할 뿐 아니라 농약에 쉽게 노출돼 있고

특히 노인 인구가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도시에 비해 크게 부족한 교육 문화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농민 부채 탕감 등으로 경제적 안정을 도모한다면 농촌지역 자살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해 60세 이상 자살자는 전체의 37.5%로, 94년(14%)에 비해 무려 3배 이상 늘어났다.

법률사무소 해울 신현호 변호사는 노인 자살의 원인으로 경제적 궁핍, 건강 상실,

배우자 및 자식과의 이별에 따른 외로움, 직업 은퇴에 따른 지위감 상실 등을 들었다.

신 변호사는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해선

국민연금이나 노인진료비 무료 제공 등의 재정 지원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성 자살자가 7747명으로 여성 4427명보다 훨씬 많은 것도 눈에 띈다.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유수현 교수는 "남성들은 생계에 대한 부담감이 여성에 비해 크고,

여성보다 더 치명적인 자살 방법을 선택한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곳은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남성들은 가부장적 권위 의식에 길들여져

절망감을 표현하는 것 자체를 수치스러워 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자살 관련 상담원 대부분이 여성이어서 솔직한 내면을 드러내는 데도 한계가 있다.

유 교수는 "남성들이 접근하기 쉬운 서비스 기관을 설립하고 남성 상담자를 발굴 배치하는 한편

상담할 때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요즘 사회에 만연된 생명경시 사상을 불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광자 교수는 "캠페인, 세미나 등을 통해 생명존중 의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자살 예방의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2003년 정한 세계 자살예방의 날인 10일을 맞아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한국생명의전화가 지난 2일 '2008년 생명존중운동 출범식'을 가졌고

본보와 공동으로 다음 달 10일 서울시 일대에서 '2008 생명사랑 밤길 걷기 대회'를 펼친다.

한국자살예방협회와 한나라당 임두성 의원은

지난 4일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입법 공청회를 개최했다.

보건복지가족부는 10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 기념행사에 이어 서울 국제 자살예방 학술대회를 갖는다.

 

김혜림 선임기자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