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귀면암의 단풍)
[어떤 판사와 할머니]
그저 남편과 자식들의 얼굴만 바라보며 살아온 한 평생
열심히 일하는 남편의 사업이 번창하고
어여쁘고 발랄하게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녀는 한없이 행복하였어라
세월이 흘러 남편은 열심히 모은 재산과 함께 사랑하는 아내를 두고 세상을 떠난다
남편의 재산을 물려받은 아내는 그저 큰 아들만 믿고 그에게 모든 권한을 주어 재산을 관리하게 하였다
사랑하던 남편은 모든 것 다 버리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건만
자녀들과 사위, 며느리들은 지들끼리 재산을 두고 싸우면서 늙은 어머니를 경찰에, 검찰에, 법원에 증인으로 세우고, 심지어는 고소하고, 민사소송을 제기하여 왔다
핏줄들간의 소송은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어떤 판사님이 그들 가족간의 분쟁을 시원하게 해결하려고 열심히 노력하였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와서 서울의 법정을 빌려 이제는 80이 훨씬 넘어 기력이 쇠진하고 병약해진 늙은 어머니를 직접 신문하고
양쪽 변호사를 설득하여 다시는 이 노인네가 법정에 증인으로 서지 않도록 협조를 구하고....
그런데 참 법이란 무엇일까?
대리권 남용의 경우 원칙적으로 그 대리행위는 무권대리로서 무효이나, 상대방이 대리권 남용사실에 관하여 선의, 무과실인 때에는 그 대리행위는 유효하고(민법 제126조 유추적용), 본인이 상대방의 악의, 유과실을 입증하여야 한다
이러한 법이론에 따라 결국 이 늙은 여인네로부터 위임장을 받아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마음대로 권리를 행사한 맏아들로부터 돈을 주고 권리를 사들인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판사님
그도 판결을 쓰고 난 뒤 후기라는 명목으로 이런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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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먹먹하다
화해권고결정에 대하여 이의가 되어 판결에 이르게 되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자식들과 사위들의 싸움을 지켜보는 피고 할머니의 가슴은 찢어지는 것 같아 보였다
눈물도 보였고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였다 많은 자식들과 손자들이 있으나 할아버지가 없는 할머니는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피고 회사의 창업주이자 남편인 할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과연 이 사건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아내를 두고서 혼자 먼저 가지 않으련다
그러나 죽음은 누구에게든 찾아온다
나 죽어 내 가족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아내를 데려올 것이다
부디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데리러 올 때까지 남은 여생 할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젊었을 때의 꽃다운 아름다운 추억만 생각하길
그리고 지금의 자녀들이 아니라 옛날의 착하고 어린 아기들만 생각하길
(부산지방법원 2008. 8.26. 선고 2006가단10976 판결 주식명의개서청구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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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가슴 아파한 이 판사님
이러한 내용의 글을 후기라는 이름으로 만방에 공표한 이유는 무엇일까?
(2008. 9. 10.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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