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모메 식당 (かもめ食堂: Kamome Diner, 2006)
감독 : 오기가미 나오코
과연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워낙 일본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자꾸만 뒤로 미뤄뒀던 영화였다.
그러다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한 분이 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 영화를 두고 '좋은 사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직접 들은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분의 의중이 어땠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불현듯 '과연 어떤 사람을 두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질문이 샘솟았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궁금증이 풀릴까 하는 기대로 보았다. 일본영화 특유의 일상성과 무심함이 어느 일본영화보다도 강하게 드러난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성이라는 그럴 듯한 외피를 둘러쓰고 모든 것을 너무나 가볍게 혹은 감상적으로 지나쳐 버리는 일본영화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그리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무척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은, '과연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라는 목적의식적인 질문을 품고 영화를 봤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런 목적의식이 없었다 하더라도 이 영화는 캐릭터의 힘만으로도 충분히 관객의 시선을 잡아끌만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도 일본 사람처럼 연어를 좋아한다는 단 한 가지 공통점만으로 핀란드에서 일본식당을 운영해보겠다는, 어쩌면 엉뚱하기 짝이 없는 꿈을 가진 카모메 식당 주인 사치에. 일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눈을 감은 채 찍은 나라가 핀란드여서 무작정 핀란드로 온, 역시나 엉뚱한 미도리. 비행기에서 짐을 잃어버려서 카모메 식당에서 얹혀(?) 지내게 된, 역시나 엉뚱한 마사코. 거기에 일본 마니아 핀란드 청년 토미와 미저리를 연상시키는 불안한 분위기의 핀란드 중년여성, 사치에에게 커피 맛있게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는 친절한 작업남인 줄 알았더니 소심한 도둑님이셨던 마티, 그리고 처음에는 신기한 듯 밖에서 구경만 하다가 어느새 카모메 식당의 단골이 돼 버린 손님들... 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철철 넘친다.
특히 주인공 격인 사치에와 미도리와 마사코, 세 일본여자는 '두터운 벽'과 '열린 문'의 공존을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캐릭터다. 이들은 구체적 사연은 알 수 없으나 뭔가 한 가지 이상 어두운 상처를 가진 듯하고, 그래서 지지고 볶는 괴로운 일상의 나라 일본을 떠나 뭔가 일본(현재 자신의 복잡한 머릿속과 현실)과는 달리 평화롭고 느긋한(토미는 그 이유가 '숲'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맞는지 어떤지는 핀란드에 가본 후에 판단하리라) 핀란드를 찾은 듯하다. 하여, 낯선 누군가가 다가오면 서빙보는 자신의 직분도 잊은 채 뒷걸음질부터 치고마는 미도리나 '도를 아십니까?' 분위기의 심상찮은 눈초리로 타인을 경계하는 마사코의 '경계심'이 이해가 된다.
오히려 손님이 단 한 사람도 오지 않는 식당을 지키며 식당 밖에서 자신에 대해 뒷담화를 하고 있는 게 뻔한 핀란드 노인네들에게 상냥한 눈인사를 건네고, 엉뚱한 손님 토미가 무턱대고 갓챠맨 주제가를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가사가 생각나지 않자 서점에서 만난 낯선 일본여자(미도리)에게 갓챠맨 주제가를 적어달라고 부탁하고, 갓챠맨 주제가를 기억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며 목적 없는 핀란드 여행객 미도리를 자신의 집에 들이는 사치에의 '벽 없는' 태도가 낯설게 느껴진다.
그러나 사치에에 대한 낯설음은 미도리와 마사코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경계심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열린 문으로 성큼 나아갈 즈음 눈녹듯 사라져 버렸다. 아, 이거구나. 굳이 붙잡지 않고,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으며, 자신의 바깥에서 흘러가는 모든 일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평정심.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아웅다웅하기보다는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자유를 선택하는 자기중심. 식당 일을 마치고 홀로 수영을 하며, 혹은 잠자리에 들기 전 합기도 기본자세로 몸을 풀며, 외부세계로부터 독립된 자신을 만끽하는 능력. 마사코처럼 일부러 친절하려 애쓰는 양 지나치게 정중하지도 않지만 또 미도리처럼 굳이 경계심을 가지고 엉덩이만 뒤로 빼는 엉거주춤 인사도 아닌, 사치에의 상냥한 인사법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착한 사람, 친절한 사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 남을 돕는 사람, 기타 등등 여러가지 좋은 사람의 기준이 있겠지만, 나는 사치에의 평정심을 좋은 사람의 필요충분조건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주변의 조건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평정심은 내면의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에게나 허락되는 선물일 것이다. 그 사람은 진정 자유로운 사람일 것이고.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들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