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머니 품이 그리워 서럽게 울어 대던 한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목이 쉬어 부를 힘마저도 없는데도 어머니만 찾던 철부지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사이엔가 그 어린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어머니의 젖을 물며 어느새 새록새록 자고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처음 입학하는 날 너무나도 낯선 세상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사실에 두려움에 떨던 나를 손을 꼬옥 잡으시며 “ 내가 있으니 두려워말고 좋은 친구 많이 사귀거라 ”는 어머니의 말씀에 왈칵 눈물이 쏟아내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비가 내려 마냥 비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에게 소리 없이 다가와 우산을 내미신 어머니가 한없이 자랑스러웠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배가 고파 학교에 내야 할 공납금을 다 써버려 혼날 것이 두려워 잠시 나마 가출했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동네 큰 고목 나무 밑에서 죽을까 고민하다 결국 집에 들어온 그 날 조용한 목소리로 “ 다음부터 그러지 마라 ”한 말씀만 하시고 조용히 나의 죄를 덮으셨던 어머니께 더욱 죄스러웠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학교 소풍가던 날 담임선생님께 무엇이라도 드려야 한다고 떼를 쓰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밤새 걱정하던 나에게 “ 담임선생님께 드려라 ”하시며 ( 그 당시로는 꽤 비쌌던 )담배 2갑을 쥐어 주시던 어머니께 고맙다는 말도 없이 소풍을 다녀왔던 한 철없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학교 수업을 빼먹고 대범(?)했던 아이들을 따라 담배 피다 동네 아저씨들께 들켜버린 한 나쁜 소년이 있었습니다.
결국은 발각되어 선생님께 많이 혼난 후 돌아온 나에게 “ 담배 맛 별로 없지. 몸에 좋지 않단다. 좋은 친구들과 사귀어라 ”라는 말로 다독거려 주었던 나의 어머니께 한없이 죄송스러웠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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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인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중학교 추첨하기 전날 밤새 뒤척이며 내가 가고 싶은 중학교에 배정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추천하는 마음 떨리던 날 나에게 “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느 학교에 배정받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 하단다 ”며 나를 깨우쳐 주시던 어머니가 한없이 자랑스러웠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중학생이 된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친구의 비싼 필통을 망가뜨려 내내 고민하다 결국 혼날 각오하고 어머니께 말씀드린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말씀을 들으시고 아무 말 없이 문방구로 데려가 필통을 사주시며, “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잖니. 실수한 일인데 걱정하지 말아라. 오히려 너를 사주지 못하여 미안하구나 ”라는 말로 위로하던 어머니를 한없이 존경했던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한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더욱 어려워진 집안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과외를 하겠다고 떼를 쓰는 한 철없는 한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과외만 받으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침을 튀기며 과외 시켜 주지 않으면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해도 해도 너무한 한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몇일이 지난 후 나에게 필요한 돈을 쥐어 주시고 “ 네가 공부하겠다는데 집안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 온 힘을 다 쏟거라 ” 하시며 뒤로 눈물을 훔치셨던 어머니를 슬프게 했던 한 청소년이 있었습니다.
어느덧 대학생이 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국립 대학교라 해도 공납금이 비싸 한 푼이라도 보태려고 초, 중, 고생 가리지 않고 아르바이트 하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졸면서도 어렵게 모은 돈을 어머니께 드릴 때마다 “ 내 자식을 이렇게 고생시키다니 모두 내 잘못이다. 마음껏 나를 원망 하거라 ” 하시며 피눈물을 흘리셨던 어머니께 그 마음이 송구스러워 얼굴을 들지 못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장교가 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알고 장교가 되어 절대 집에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드리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통솔력은 없지만 ROTC 에 지원하여 합격한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ROTC 1년차 때 2년차로부터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아가면서도 꿋꿋이 견뎌 내었고, 무더위가 가장 최고조에 이르는 여름 한 달간 입소하여 그 어려움을 이겨냈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며, 저에게 “ 장교가 되고자 했던 너의 마음을 다 알고 있단다. 군대에서도 장병들에게 인격적으로 잘 해주어 좋은 장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는 말로 나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닮고 싶은 한 장교가 있었습니다.
교사가 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가르침보다 미래의 큰 야망을 숨기지 않았던 어리석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잘 못 가르쳤다는 반성보다 윗사람에게 어떻게 하면 잘 보일지를 고민하는 눈치 보는 일에 신경 쓰는 자신이 잘못되어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정말 인격 저하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 너 가르치는 일이 그렇게도 부끄럽니? 관리자가 되어서 어쩌겠다는 거냐. 열심히 가르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범한 교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는 말로 나를 준엄하게 꾸짖으시던 어머니를 차마 볼 수 없었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장이 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자라온 가정 상황이 달라 의견 차이로 어려움을 겪는 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 누가 될 까 망설이다 결혼 생활의 어려운 감정을 토해 낸 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웃으시며 “ 나도 솔직히 조용히 살아온 편은 아니다. 나도 실제 네 아버지가 옆에 계셔서 하는 얘기지만 접시가 날라 다닐 정도로 싸운 적도 여러 번이다. 그래도 지금은 접시는 던지지 않는다. 네가 더 양보하고 잘해 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다 잘될 거라고 생각한다. 살아온 환경이 그렇게 다른데 하루아침에 좋아지겠니? ” 하시면서 아버지께 싸늘한 미소를 보내 주시던 어머니의 말을 명심하고 아내에게 더 잘해주려 노력했던 한 가장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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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오늘도 아들이 온다는 말에 대문 밖 동네 어귀에서 마냥 기다리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힘들다고 다시는 나와 기다리시지 말라고 말씀드려도 우리 귀한 아들 오는데 이 기쁜 날 나라도 마중나와야지 하시며 오늘도 기다리시는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말씀은 없으셔도 어느 해 겨울 그 추운 날 부부 싸움으로 갈 데 없던 이웃집 아이를 몰래 데려다 따뜻한 밥을 해 먹이고 다음날 살짝 돌려보냈던 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함부로 손을 내밀지 말며, 더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주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몸소 실천하셨던 자랑스런 한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지금 팔순이 되셨습니다. 얼마 전 집안 식구끼리 조촐한 식사의 자리를 마련하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것마저도 한사코 거부하시는 바람에 어려움을 겪기는 하였지만 저는 어머니의 마음을 압니다.
이제는 기력이 쇠하셔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 지팡이에 의존하실 정도라 멀리 떨어져있는 저에게 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럴 때 마다 내가 고향인 충청도에서 발령을 받지 않고 공부를 위해( 실은 대학원에 다니지도 못했고 또 다른 뜻을 이루지도 못했으면서도 말입니다 ) 인천으로 지원한 내 자신이 불효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오래 사셔야 할 텐데.... 꼭 그렇게 될 겁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또한 고맙습니다. 당신의 자식임이 이렇게도 고마운 줄 지금에서야 깨달은 철없는 아들을 끝없는 사랑으로 감싸주시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직도 갚으려면 한참 멀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답니다.
이제 다 큰 제가 어머니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어머니께서 오래 오래 사시는 것만이 못난 아들을 기쁘게 해 주는 것이랍니다.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을 때까지 천수를 누리셔야 합니다.
아들을 힘들게 해도 기쁜 마음으로 다 받을 수 있답니다.
지금도 제가 공주에 갈 때면 대문 밖 동네 어귀에서 저를 기다려도 전혀 힘들지 않고 반갑게 맞아주실 정도로 항상 건강할거라는 확실한 믿음을 저는 아직도 갖고 있습니다.
오늘 당장 전화해야겠습니다. 둘째 아들이 내려간다고 말입니다. 분명 어머니께서 기다리시고 계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왠지 뜻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건 아직도 살아계심에 가슴 벅차오름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