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영화는 영화다

이영주 |2008.09.20 00:56
조회 30 |추천 0

 

영화는 영화다 (Rough Cut, 2008)

감독 : 장훈

 

 

 

 

현실과 영화, 그 경계선에 서다

영화의 영화에 의한 영화를 위한 영화

 

 

 

추석연휴 보내고 나니 9월의 절반이 휙 날아가 버리고, 원고 마감일은 이미 넘겨 버렸는데 본 영화는 없다. 원래는 추석연휴 동안 영화나 보고 일찌감치 마감쳐야지 생각했는데 급작스레 지리산 종주를 감행해버렸으니. 쯧...

뒤늦게 개봉영화가 뭐가 있나 뒤져보니, 아... 당기는 게 없다. 와 정도?

하지만 몇 달 동안 너무 비주류영화에 외국영화 이야기만 실었던 게 마음에 걸려, 다음 번엔 꼭 한국영화로, 그것도 대중적인 영화로 글을 쓰겠다고 데스크에 약속을 해놓은 터였다. 영화 마니아들이 보는 잡지도 아닌데 이건 아니다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한국영화 중에서 골라보려고 용을 썼다. 아, 그런데 안 보인다. 한국영화 중 그나마 잘 나가는 영화는 이라는데 이건 아무래도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럼 뭘 보나? 어이구야... ㅠㅠ (이게 다 한국영화의 부진 탓이라고 핑계를 대보지만, 어쨌든 영화를 골라야 하고 무조건 써야 한다.)

그러다가 이 영화를 발견했다. 감독 이름은 처음 들어보니 패쓰, 배우 이름에 눈이 먼저 갔다. 소지섭과 강지환? 얘들이(아, 이분들께 미안타... 다 큰 어른들에게 얘들이라니... ㅡㅡ;;) 배우라기보다는 브라운관 스타인 꽃미남 배우들이, 어떻게 이런 이름 안 나는 영화에 출연을 했지? 우선 궁금했다. 조금 더 뒤적여 보니 각본이 김기덕이다. 오홋! 더욱 구미가 당긴다. 결국, 낙점!

 

우선, 보는 내내 즐거웠다. 뭐랄까, 세련된 척하지 않는 풋풋함이 마음에 들었다. 소지섭과 강지환을 스크린으로 불러들였으면, 영화를 통해 환골탈태한 그럴 듯한 연기를 보여줌으로써 연출력을 과시하고픈 욕심이 없지 않았을 텐데, 소지섭은 '미사'의 차무혁 그대로이고, 강지환은 '경스'의 선우완이나 '쾌도'의 길동 그대로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마치 이 영화를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인 양 차무혁과 선우완이 만났는데 정말이지 찰떡궁합이더란 거다. 둘이 마주하고 서 있는 장면이 무척 많이 나오는데 그때마다 불꽃이 튄다.

깊은 슬픔을 간직한 아웃사이더(날건달) 차무혁과 날건달 기질이 다분하지만 세상 잘 만나서 잘나가는 스타로 살아가는 선우완의 이미지는 이 영화에서 강패와 수타로 새롭게 변주된다. 가끔 리메이크 음반이 원곡보다 더 좋을 때가 있기도 하던데, 이들 캐릭터가 꼭 그렇다.

강패는 그의 꿈이 어쨌든 본래 심성이 어쨌든 간에 비루한 현실을 살아내는 진창같은 인생이고 수타는 그의 인간성이 어떻든 품성이 어떻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기 절정의 스타다. 강패는 현실이고, 수타는 영화, 즉 판타지다. 두 캐릭터는 정 반대의 끄트머리에 서 있는 양 상극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너무나 닮은 도플갱어다. 장르가 어찌됐든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강패와 수타가 함께 영화를 찍게 되면서 현실과 판타지가 한자리에서 뒤엉킨다. 진창에서 함께 뒹굴며 그 경계가 허물어진다.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강패는 영화를 찍으며 현실의 자신과 전혀 다른 삶을 꿈꾼다. 판타지에 갇혀 허공을 둥둥 떠다니며 살던 수타는 강패와 뒤엉켜 영화를 찍으며 진창같은 현실로 질질 끌려나온다.

영화 속 영화라는 액자형식을 통해 이 영화는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매우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그렇다면 영화와 현실이 경계선을 허물고 진창에서 뒹굴며 얻은 결론은? 제목 그대로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영화처럼...을 꿈꾸던 강패는 결국 현실에서 피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하고, 현실과 뒹굴며 조금은 성장한 듯 보이는 수타는 영화는 영화이고 현실은 현실일 뿐이라는, 구토가 치미는 깨달음을 얻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강패의 파국도, 수타의 깨달음도, 이 역시 영화일 뿐이다.

 

어쩌면 이 영화는 소지섭도, 강지환도 주인공이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좀더 리얼하게"를 입에 달고 사는 봉감독이 영화의 화자다. 끝도 없이 리얼리티를 추구하긴 하지만 정말 '진짜'라면 영화는 더 이상 영화일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봉감독도 아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인물들이 아니다. 영화라는 존재 자체가 주인공이다.

배우들의 간지나는 외모도, 풋풋한 열정이 담긴 연기도 흐뭇했고, 무엇보다 웃음이 삐져나오는 농담 속에 오가는 선문답들을 해석하는 지적 즐거움이 커서 더욱 좋았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한국영화를 만나서 참 기쁘다.

 

하지만, 이 영화로는 적합한 원고를 못 쓸 것 같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ㅠㅠ

추천수0
반대수0

묻고 답하기베스트

  1. 언매 독학댓글0
더보기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