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테커의 사임 뉴스를 진행하는 주인공의 친구 레닌의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레닌의 부인이었던 크루프스카야의 레닌 전기가 출간된 적이 있다. 담담한 어조로 레닌에 대한 관찰기를 서술해 놓은 그 책은 나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오늘 독일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관객(700만에 육박한다)을 동원했다는 "굿바이 레닌"을 보았다. 아직 한국에서 개봉이 되지는 않았지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물론 평등세상의 기치대로 copy left 정신을 발휘하여 인터넷에서 내려 받아 보았다. 할 일이 무척 많았지만 도시락 까먹는 방위정신으로 악착같이 본 것이다. 원래 독일영화인데 이태리말로 동시녹음을 한 것을 영어자막으로 보았으니, 눈물겨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노력을 보상할 만큼 재미있다. 통독 직전 반정부시위를 하던 아들이 동독경찰에 잡혀가는 것을 본 어머니는 쓰러진다.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진 철저한 이상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어머니와 무관하게 그사이 독일에서는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마저 무너졌다. 거리와 상점은 온통 자본주의 상품으로 넘쳐나고, 레닌동상은 헬리콥터 줄에 매달려 공중을 배회한다. 어머니는 깨어나지만 의사는 어머니가 작은 충격에도 위험한 상태에 빠지며, 수주내에 돌아가실 것이라는 말을 한다. 알렉스는 누나의 반대를 무릅쓰고, 병원에 있으면 어머니가 동독의 붕괴를 알 것이고, 어머니가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근거를 들어 어머니를 집으로 모신다. 이때부터 그 와중에도 연애사업에 소홀함이 없는 우리의 주인공 알렉스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원하시는 동독산 오이피클을 구하러 쓰레기통마저 뒤지고, 나중에는 결국 여자친구 집에서 빈 통을 구하여 네덜란드제 오이피클를 넣어 때운다든지, 어머니 생일잔치에 소년단을 구해서 국가예찬을 부르게 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초인 같은 알렉스에게도 절망할 일이 생기는데 어머니가 TV를 보고 싶다는 것이다. 이 때 알렉스에게 구세주처럼 한 친구가 등장해 TV 프로그램을 편집해서 제공한다. 이 때부터 거짓말이 꼬리를 물면서 규모가 커지기 시작한다. 동독으로 몰려오는 서독의 자동차 행렬이 집앞을 쓸고가자 알렉스와 친구는 서독에서 기술자와 노동자들이 직장을 찾아 동독으로 대거 몰려온다는 뉴스를 만들어 어머니에게 보여주는데, 공산주의적 이상에 불타는 우리의 어머님은 서독의 노동자를 위해 집을 비워주자는 제안을 하게 이른다. 어찌어찌 하루하루를 아슬아슬하게 모면하는 알렉스가 최대의 위기에 빠진다. 서독으로 간 것으로 알려진 아버지를 어머님이 보고싶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만나게 해 주고 싶은 알렉스는 결국 지상최대의 거짓말로 아버지의 등장이라는 사건의 완벽한 알리바이를 만든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나고 난 후, 사실은 통독 기념축제가 벌어지는 저녁에 우리의 알렉스는 달력까지 위조해 가며, 건국기념일 특집회견을 만든다. 내용은 이렇다. 수개월간의 동독개혁을 완수한 호네커는 스스로 물러난다. 그리고 최초의 독일 우주비행사 지그문트가 호네커의 직책을 물려받는다. 그가 수상으로 취임연설을 한다. "만약 우리가 우주에서 초록색 별, 지구를 바라본다면 사물들이 달라 보이실 것입니다. 그 곳에서 본 사람들의 삶은 너무 왜소하고 의미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스스로 자문해 봅시다. 우리는 얼마나 인간을 해방시켰습니까? 우리는 그것을 위해 어떤 목표를 세웠고, 또 성취해 왔습니까? 오늘은 건국기념일입니다. 이 나라는 우주에서 보자면 참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도 올해만 수천명의 사람들이 이땅에 살고자 왔습니다. 심지어 우리에게 한 때 적으로 보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합니다. (서독 노동자가 독일에 왔다는 뉴스를 상기하자) 우리체제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믿어왔고, 세계 나머지 사람에게 완벽한 것이라고 우겨온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끔 오류를 저질렀지만 스스로 교정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사회주의는 장벽에 의지해 숨어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회주의는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입니다.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것만이 아니라 실현해 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동독의 국경을 개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아나운서로 분장한 친구의 감동적인 멘트가 이어진다. 이것은 영화를 볼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자. 쓸쓸하지만 유쾌하고, 슬프지만 희망이 넘치는 영화다. 사회주의는 비장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상상(장미의 이름)처럼 사회주의에는 "비극"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유쾌하고, 나서고 싶어하는 것이 사회주의다. 멧돼지 같은 외모에 가진 것이라고는 객기로 일부러 얼굴에 만든 칼자국밖에 없던 칼 마르크스와 트리에市 사교계의 총아 예니 베스트팔렌의 밀고 당기는 연애담이야말로 유쾌하지 않은가? 서울역 바로 앞에 당사를 두고 당사 두배만한 간판을 달았던 남로당이야말로 미디어 정치의 선구자가 아닌가? 사회주의를 꼭꼭 숨겨두고 싶은 사람은 스스로 사회주의를 세상과 격리시키는 사람이다. 사회주의는 사람들 사이에서 빛을 발한다. 사회주의는 사람들의 관심밖에 있는 무채색 연탄재가 아니다.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요란하게 터지는 오색창연한 불꼿놀이다. 소위 최소강령과 최대강령 사이에 태평양을 갖다놓은 스탈린주의 단계론적 사고가 해악적이라는 것은 최소강령만을 말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주의자 스스로가 자신의 궁극적 목표가 사회주의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먹을 때가 있을 만큼 사회주의에 장벽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번에 노동자조직율 10%대의 대한민국이 사회주의로 갈 수 없다. 중간과정이 반드시 요구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중간과정이 되기 위해서는 선진대중이 어디로 가야하는 지 알 수 있는 깃발이 있어야 한다. 사회주의를 모든 매순간에 상기시키고, 설복시키는 사회주의 정당은 바로 그런 깃발이다. 그렇다. 사회주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사람들과 어울러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높여왔는지 자문하고, 검증 받아야 한다. 갇혀 있는 우울하고 말없는 레닌과 작별하자, 배가 약간 나왔고 주변에 항상 호기심을 갖는 유쾌한 중년신사 레닌과 인사하자. Hello! 사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