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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어윌비블러드]석유, 경제의 모든 것

정주영 |2008.09.21 21:37
조회 62 |추천 0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성경의 신약성서 중 사도행전 2장에는 위와 같은 구절이 나온다. 의 포스터 중 하나는 성서를 전면에 내세웠다. 제작진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어보아도 제목이 어디서 왔는지를 밝혀놓지 않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위 구절에서 따온 것이 아닌가 한다. 피를 석유로 바꾸면 '피와 불과 연기로다' 라는 구절은 '석유와 불과 연기로다' 로 바뀔 수 있다. 석유는 어둡고 음침한 곳, 바로 지하에서 나오니 모든 어두움을 바라보는 달과도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두 번째 문장에서 '피가 되리라'를 영어로 옮기면 영화의 제목이 된다.   

 

예전에 조지 클루니 주연의 가 개봉했을 때 캐나다인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내가 이 영화가 석유에 대한 것이라고 하자 그 친구는 경제의 모든 것이 바로 석유라고 대답했었다. 석유가 없는 세상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차를 끌고 다닐 수도 없을 것은 자명하다. 제약회사도 생산방침을 달리하거나, 왜 우리가 복용하는 약 중에 캡슐에 들어있는 것 있지 않은가? 콘택 600 같은 것 말이다. 그 캡슐이 석유로부터 나왔다. 믿겨지는가? 화장품 및 기타 플라스틱 제품 등등. 기름 없으면 세계 경제는 안 돌아가게 되어 있나 보다. 그런데, 도대체 이런 시스템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러니까 석유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누군가 외치면 이 자원의 가치는 엄청 떨어지겠지.

 

 


 

 

가 갑자기 떠오른 건 아니다.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석유를 테마로 한 두 영화가 시차가 나지만 아카데미 주조연상을 받아갔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레 두 영화를 연결지어 보았다. 에서는 중동의 석유를 사수, 미국의 것으로 만들려는 정치공작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극의 포커스가 한 인물에 맞추어져 있지 않다는 뜻이다. 입체적인 조망 뒤에 큰 그림을 보면 답이 나온다. 단, 그 때까지 인내할 수 있다면. 피곤할 때 보면 이 영화가 그렇게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캐나다 친구는 내가 이 영화를 언급했을 때 '석유야말로 경제의 모든 것' 이라고 말했었다. 그는 몇 년 전 나와 대화를 나누는 내내 이 영화를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 했다. 이제 로 돌아가 보자.

 

의 주인공 다니엘 플레인뷰(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석유를 채굴하지 않았더라면 초원에서 목장을 경영하며 살았을지도 모르는 인물이다. 그 이름대로 하면 말이다. 플레인뷰라는 이름은 어느 지점에서 초원을 바라보다가 기막힌 경치에 감탄해서 지은 이름이니까 말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다니엘 플레인뷰의 조상은 분명 카우보이였을 거다. 리틀 보스턴의 황무지를 바라보며 매장되어 있는 석유의 양을 추정해 보는 그에게는 그 땅이 자신의 이름이 뜻하는 바처럼 그렇게 보였을 거다. 

 

소시오패스(sociopath). 다니엘 플레인뷰를 보며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의 킬러 안톤 쉬거(하비에르 바르뎀)가 사이코패스라면 플레인뷰는 분명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인간에 대한 애정이 없는 그다. 그가 리틀 보스턴의 황량한 마을, 그 곳의 이단목사요 야망에 불타는 일라이에게 고개를 숙이며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일라이는 설교와 이에 병행하여 퍼포먼스를 벌임으로써 마을 사람들에게 추앙받는다. 이름처럼 그는 '신에게 헌신하는 사람'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플레인뷰에게는 아니다. 그는 진작에 그의 속셈을 꿰뚫어 보고도 자신의 사업을 위해 기꺼이 그에게 고개를 숙인다. 자신이 가는 길의 방해물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는 성격의 다니엘이다.  

 

일라이가 창시한 제3 계시교가 실제로 존재하는 종교인지는 모르겠으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세 번째 계시는 '다시 오실 예수' 에 관한 것이다. '피가 되리라'는 구절은 성서에 꽤 나오는데 일라이의 종파와 플레인뷰의 사업 등을 종합해 보면 자연히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저 구절이 와닿는다. 제목의 경위에는 감독이나 제작진은 아무 말이 없긴 하지만서도 말이다. 혹은 이미 '피가 되었다'고 한다면 어떨까? 석유를 뽑아내는 시추 기계들, 석유 없으면 누리지 못할 문명의 이기들. 경제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그 기계는 심장의 펌프질, 그리고 석유는 피가 아닐까?  

 

 

 

 

 

조그마한 마을에 나오는 석유의 양에 따라 다니엘은 경제적인 혜택을 약속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그의 방식대로라면 처음에는 그 이익을 나누어 주다가 점점 마을의 모든 땅을 사 모으고 그리고 주민들에게 돈을 쥐어 준 다음 강제로 떠나가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라이는 다니엘이 이곳 리틀 보스턴을 방문했을 때부터 그 속셈을 뚫어보고 거액의 보상금을 요구한다. 훗날 다니엘의 저택에 찾아와 자신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해 돈을 요구하는 그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경제대공황의 여파로 말년의 다니엘 플레인뷰는 몰락한 듯이 보이지만 그는 내 손으로 일궈낸 석유밭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했다. 록펠러의 스탠더드오일 사가 그에게 손을 뻗쳤을 때만 해도 '남이 캐낸 석유를 사들이 생각만 하지 말고 본인들이 직접 땅을 파보라' 고 일갈했던 그였다. 그런 그에게 일라이의 요구는 애초부터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여기서 일라이는 목사의 사명인 영혼구원을 중요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출세에 더 관심이 있는 인물이라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다. 다니엘은 예전에 그에게 당했던 수모를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준다. 그와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 집사가 괜찮은지 물었을 때 다니엘은 씩씩거리면서도 '다 끝났다' 고 그 특유의 톤으로 말하는데 정말 그가 소시오패스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이름으로 이 영화의 엔딩을 풀이하면 거짓으로 신에게 헌신했던 자를 신이 심판한 셈이다. 일라이는 신에게 헌신하는, 그리고 다니엘은 신이 심판한다는 뜻이다. 감정이 없는, 그가 살아남은 이유는 무엇일까? 감독은 그에게 왜 심판자의 자리를 부여했을까?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늘날 우리들도 돈 버는 기계가 되어 가고 있다는 거다. 인정하기 싫지만 돈이 최고인 세상이고, 신해철의 노래가사가 더 와닿는 요즈음 아닌가. '사람보다 위에 있고 그보다 더한 것, 경배하라 그 이름 돈'이라고 그는 진작에 세태를 비판했었다. 그랬거나 말거나 석유는 경제의 모든 것, 석유는 곧 돈이다. 그리고 돈만이 최고인 세상에 누군들 없어져도 아무도 상관 안 한다. 그 치가 먹을 파이 나에게 조금이라도 돌아온다면. 는 그런 점에서 섬뜩한 영화다. 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연기도 소름 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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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로버트 알트만 옹께서 아꼈던 제자(?)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은 엔딩 크레딧에  작품을 알트만 옹께 헌정한다고 썼다. 팔십이 조금 넘는 생애를 반골기질로 살다가 간 노대가께서 살아 생전 이 영화를 봤다면 폴 토머스 앤더슨을 기특해 했을지도 모르겠다.

 

폴 다노는 이 영화에서 일라이와 쌍둥이 형인 폴 역을 연기했다. 다니엘 플레인뷰에게 리틀 보스턴의 정보를 알려주고 홀연히 사라진 인물이 일라이의 쌍둥이 형 폴이다. 폴 다노는 에서 콩가루 패밀리 중 염세주의자인 맏아들 역을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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