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풀>이라는 시로서 알고있는
시인 김수영 님의 <하....그림자가 없다>라는 작품입니다.
이 시는, 무려 40년전에 써진 시 입니다.
하지만, 시대에 내다보는 눈은 40년을 앞서있는 듯 합니다.
좋은 시는, 시대를 뚫어보고, 예언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하는 법이니까요.
우리의 적은 늠름하지도 않고, 영화배우처럼 거칠게 생기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선량하다고도 말하니까요.
말만 잘하는, 특정 정치인을 염두해 두지는 않았다고, 저는 가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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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그림자가 없다
-김수영
우리들의 적은 늠름하지 않다
우리들의 적은 카크 다글라스나 리챠드 위드마크 모양으로 사나웁지도 않다
그들은 조금도 사나운 악한이 아니다
그들은 선량하기까지도 하다
그들은 민주주의자를 가장하고
자기들이 양민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선량이라고도 하고
자기들이 회사원이라고도 하고
전차를 타고 자동차를 타고
요리집엘 들어가고
술을 마시고 웃고 잡담하고
동정하고 진지한 얼굴을 하고
바쁘다고 서두르면서 일도 하고
원고도 쓰고 치부도 하고
시골에도 있고 해변가에도 있고
서울에도 있고 산보도 하고
영화관에도 가고
애교도 있다
그들은 말하자면 우리들의 곁에 있다
우리들의 전선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우리들의 싸움을 이다지도어려운 것으로 만든다
우리들의 전선은 당게르크도 놀만디도 연회고지도 아니다
우리들의 전선은 지도책 속에는 없다
그것은 우리들의 집안 안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직장인 경우도 있고
우리들의 동리인 경우도 있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초토작전이나
'건힐의 결투' 모양으로 활발하지도 않고 보기 좋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언제나 싸우고 있다
아침에도 낮에도 밤에도 밥을 먹을 때도
거리를 걸을 때도 한담을 할 때도
장사를 할 때도 토목공사를 할 때도
여행을 할 때도 울 때도 웃을 때도
풋나물을 먹을 때도
시장에 가서 비린 생선냄새를 맡을 때도
배가 부를 때도 목이 마를 때도
연애를 할 때도 졸업을 할 때도 꿈속에서도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또 깨어나서도······
수업을 할 때도 퇴근시에도
싸일렌 소리에 시계를 맞출 때도 구두를 닦을 때도······
우리들의 싸움은 쉬지 않는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차 있다
민주주의의 싸움이니까 싸우는 방법도 민주주의적으로 싸워야한다
하늘에 그림자가 없듯이 민주주의의 싸움에도 그림자가 없다
하······그림자가 없다
하······그렇다······
하······그렇지······
아암 그렇구 말구······그렇지 그래······
(시인 김수영의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