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보이 2: 골든 아미>는 델 토로 감독의 이력을 추적해 볼 수 있는 영화로 보인다. 여기에는 돌연변이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리얼 월드에서는 집단에게 배척당하는 다른 집단들의 애환과 그들을 위로하는 감독이 마음 씀씀이도 들어가 있다.
영화에서 '골든 아미' 라고 일컬어지는 군대를 보니 이들이 몸을 웅크리고 있으면 마치 무슨 벌레-투구벌레?- 처럼 보인다. 벌레나 곤충, 오래된 나무에 대한 관심은 전장에 핀 잔혹하고 슬프고 아름다운 동화 <판의 미로>에서도 잘 드러나 보이는 바, 기계에 대한 관심은?
작년 충무로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장편데뷔작 <크로노스>(1993). 생명연장의 꿈을 유산균으로 실천하는 게 아니라 기계로 실천한다. 이 기계의 발명은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판의 미로>에서 판이 소녀에게 들려준 동화나, <헬보이 2 : 골든아미>에서 헬보이의 양부가 그가 어릴 때 들려줬던 종족들의 대립과 분열, 전쟁, 협정, 그리고 골든 아미에 대한 전설 등. 델 토로의 영화는 그런 과거, 혹은 상상의 얘기를 영화 속 현실로 끌어온다.
<판의 미로>에서 스페인 내전 와중에 암울한 현실을 견디지 못하는 소녀는 동화 속 세계로 들어간다. 그가 만난 판은 단지 그의 상상 속에만 존재했을까? 그가 들려준 얘기와 수수께끼의 단서-열쇠-를 얻는 소녀. 영화에서, 결과적으로 열쇠는 소녀를 구원해 주는 게 아니라 희생을 요구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그러나 소녀의 죽음은 그를 동화의 나라로 데려가고 현실에서는 민중들의 봉기를 이끌어 내는 촉매제 역할을 하였으니......
칸 영화제에서 상영 후 기립박수가 22분간 이어졌던 일화를 전해 온다.
오래 전에 봐서 제대로 기억나지는 않는 영화 <미믹>. 말 그대로 번역하면 모방한다, 따라한다 뭐 그런 뜻인데 성대모사를 뜻하기도 한단다. 실체를 알 수 없는 뭔가가 다가오는데 웬지 징그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난 이 영화에서 뭐 본 거지?
<판의 미로>에서 소녀가 열쇠를 찾는 과정은 쉽지가 않다. 기이하거나 역겹거나 무시무시하거나 하는 존재들이 각각의 관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헬보이>에 등장했던 괴물들 역시 이런 연장선에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니 시기적으론 <헬보이>가 먼저 나왔으니 <판의 미로>가 그 모티브를 차용한 걸까?
<헬보이2 : 골든 아미>의 헬보이는 어릴 적 얘기가 현실이 되어도 그냥 익숙한 것처럼 행동한다. 공간적 배경인 뉴욕에 다른 존재들이 살고 있는 세계가 있다는 영화의 설정은 '같이 살아가기' 라는 화두를 던지는데 이곳은 시대극이나 역사물에서 종종 보던 중세의 거리 같아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는 경매로 물건을 거래하지만 여기서는 괴물-가령 이빨괴물-도 거래된다.
도시가 발전하다 보면 묻혀가는 얘기들이 있다. 어릴 적 헬보이가 양부로부터 들었던 얘기는 다분히 신화적인데, 그 얘기 속 주인공들은 버젓이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 즉, 신화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잊고 있었던 것 뿐. 헬보이와 친구들(?)이 상대하는 괴물은 전편보다는 그 수가 적다. 대신 무시무시하면서도 기이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존재들도 등장한다. 특히, 조그마한 콩이 순식간에 거대한 나무 요정(?) 엘리멘탈로 변하는 과정과 그 죽음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삭막한 도시에, 건축가 렘 쿨하스가 정신분열증적인 도시라고 명명한 뉴욕에서 엘리멘탈의 최후는 구경꾼들의 감탄마저 자아낸다.
그런데 헬보이가 대결하는 존재들 역시 어딜 가나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거나 주인이 불러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점은 어딘지 인간들을 지키고도 돌연변이라 환영받지 못하는 헬보이의 처지와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에이브와 신화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누알라 공주의 잠시뿐인 로맨스는 어디에도 발 붙일 곳 없는 존재들의 처지를 낭만적으로 보이게 한다. 게다가 배리 매닐로우의 'Can't smile without you' 를 들으며 동상이몽하는 에이브와 헬보이라니.....
전편에서 헬보이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말한다. 이 세계를 멸망으로 이끌 '아농 운 라마' 라는 이름을. 인간들에게는 그가 장차 어떤 역할을 할지 알려지지 않은 가운데 그와 상대하거나 동료들은 그의 운명을 안다. 여자친구인 엘리자베스가 사신에게 그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할 때 그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사랑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것도 다 위와 같은 맥락일 수 있다. 동병상련할 수 있는 존재들끼리 붙어 살라는 사고가 밑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런 로맨스가 애처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심드렁한 유머를 구사하는 헬보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전형적인 소심남이 되고 그런 모습을 통해 영웅이 사랑에 관한 한 아이에 불과함을 폭로한다. 그런 점이 이 영화가 우릴 낄낄 거리며 볼 수 있게 해주는 거겠지만.
그런데, 배리 매닐로우라니. 감독의 취향도 좀 구식이다. 그도 뉴요커라 영화의 공간인 뉴욕과 노래가 잘 맞아떨어지긴 한다. 뉴요커들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할머니나 어머니 세대가 배리 매닐로우 팬이고 자기들은 빌리 조엘이란다. 그런데 둘 다 나이가 비슷비슷하지 않나.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보고 싶은 <악마의 등뼈>. 오오...이 영화만 구할 수 있다면 델 토로 감독의 연대기를 쫘아악 쓸 수 있으련만.....
델 토로 감독은 <호빗> 1편과 2편을 찍고 있는데, 항간에 들리기론 2017년까지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장기 계약을 맺었단다. 이제 그는 진짜 팔자 핀 건가?
그런데, 멕시코 감독 3총사 중 나머지 두 명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와 알폰소 쿠아론의 신작은 언제 볼 수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