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부르는 탁한 피-당신의 피는 안전한가?
쓰러진 클린턴
2004년 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쓰러져 결국 ‘4중 심장 우회로’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심한 동맥경화증으로 말미암아 막히다시피 한 심장혈관들을 대신하기 위해 무려 네 군데에 혈관을 이식했다는 의미다. 당시 미국 ABC 뉴스에 따르면, 클린턴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물을 복용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해 체중이 줄어들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내려가자 안심한 나머지 약물 복용을 중단했는데 그것이 그만 증상을 악화시켰다고 한다.
클린턴을 생명이 위험할 정도의 심각한 상태로 내몰았던 가장 큰 원인은 무엇일까. 수십년간 그의 몸에 도사린 고지혈증이 심장병을 일으킨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은 자명하다.
제대로 조절하지 않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심각한 상황을 불러들이는 대부분의 성인병과 같이 고지혈증 또한 달리 눈에 띄는 증상이 없기 때문에 결국 동맥경화증으로 혈관이 좁아지고 막히는 합병증이 발생한 후에야 뒤늦게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 고지혈증을 콜레스테롤 수치가 올라가는 단순한 ‘이상’쯤으로 여겼다가는 클린턴처럼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증(症)이라고 무시했다간 큰 코 다친다.
젊음이 떠나가는 남자 40대, 여자 50대부터 고지혈증과 같은 성인병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아무리 부모에게서 건강한 체질을 물려받았다 하더라도 365일 잘못된 몸 관리로 일관하면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유씨의 경우처럼 중년의 나이에 고지혈증과 함께 흡연, 고혈압, 비만 등 심장병을 일으키는 위험요소를 여럿 가지게 되면 최소한 5명 중 1명꼴로 환갑이 되기 전에 심장병이 돌발하여 응급실에 실려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지혈증을 직접 유발하거나 고지혈증과 연관된 것으로 알려진 요소들은 크게 조절 가능군과 조절 불가능군으로 나뉜다. 조절 가능군은 주로 생활습관에서 발생하는 요인들이다. 비만, 흡연, 음주, 당뇨, 고혈압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중 당뇨와 고혈압은 고지혈증을 일으키기도 하고 고지혈증 때문에 일어나기도 하는 강한 상호연관성을 갖는다. 조절 불가능군으론 나이, 유전적 요인이 있다. 이것은 개인의 의지로 어떻게 하기 어려운 요인들이다.
한국인이 더 위험
고지혈증과 관련하여 한국 사람들은 위험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서양 사람이 더 위험하며, 한국 사람은 웬만해서는 괜찮을 것이라는 막연한 선입견이 그것이다. 이는 체질과 음식 때문에 그렇다. TV를 보면 미국인들은 한결같이 살이 출렁거리는 뚱보이며, 모두 손에 아이스크림을 들고 사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들이 하루 한 끼 이상을 몸에 그토록 나쁘다는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을 것으로 단정한다. 저녁식사 때에는 대부분 프라이팬만한 스테이크를 먹고 후식으로 단 케이크를 반드시 먹을 것으로 단정한다.
이에 비해 한국인은 일단 체격이 작다. 게다가 방송매체에서 된장이나 김치가 막힌 혈관을 뚫어주는 지상 최고의 건강식이란 얘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하루에 김치 한 조각 안 먹는 한국인이 없고 일주일에 된장찌개 한 번 안 먹는 한국인이 없으니 적어도 피나 혈관과 관련된 질병에는 선천적으로나 생활습관에서 우리가 다른 나라 사람에 비해 압도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단정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선입견과는 달리 고지혈증이나 심장병은 이제 부자 나라에서만 흔한 병이 아니다. 현재 전세계 심혈관 질환 사망자의 80%가 저소득 또는 중간 소득층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이 선진국병이란 상식을 무색하게 만드는 조사결과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심혈관 질환은 이미 1960년대부터 감소하기 시작하여 최근엔 그 당시와 대비할 때 50% 이하로 떨어졌다. 고지혈증 등 위험요소에 대한 적극적인 조절이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2004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제4차 아태 동맥경화 및 혈관질환 연례회의’에서는 아시아인의 동맥경화증 사망률이 증가 일로에 있다는 현황을 보여주는 학술보고서들이 제출됐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40~50대 남성에서 심혈관 질환 발병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져 경계대상 1호가 되었다.
회의에 참석한 오스트레일리아 심장재단의 브루스 닐 박사는 “뇌졸중 사망률의 경우 2020년까지 중국은 120만명에서 250만명으로, 인도는 50만명에서 100만명으로, 기타 아시아국은 평균 30만명에서 80만명으로 100% 이상 급증할 것이지만 같은 기간 미국과 유럽은 증가한다 하더라도 10% 이내 수준의 미미한 증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의 통계는 이러한 예측을 뒷받침한다.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불과 십여 년 사이에 동맥경화증으로 인한 사망률이 인구 10만명당 10명에서 25명으로 급증했다.
무증상이 특징
고지혈증이 무서운 것은 당뇨병, 고혈압 등과 마찬가지로 증상이 전혀 없이 찾아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혹 고지혈증 자체에 의한 증상은 쉬 피로를 느끼는 것 같은 사소하고도 경미한 증상일 수 있다. 고지혈증 증상에 대해 피가 탁하다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고지혈증이 세포와 조직에 대한 산소 공급률을 떨어뜨려 쉬 피로를 느끼고 피로 회복도 느리며 장기적으로는 혈관의 노화현상이 빨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심한 정도의 고지혈증을 가진 경우 피부나 인대 등에 지방이 침착되어 반점이나 혹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증상이 없기 때문에 고지혈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심장병 등의 합병증이 발병한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고지혈증 상태에서 높은 농도의 나쁜 콜레스테롤은 천천히 동맥혈관에 침투하여 혈관 벽에 쌓인다. 이렇게 수십년이 지나면 혈액순환이 안 될 정도로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게 된다. 동맥혈관이 좁아진다고 해서 바로 이상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어느 정도까지는 불편한 증상을 느끼지 않는다. 동맥경화증이 상당히 진행되어 혈관의 직경이 75% 이상 좁아지면 좁아진 부분을 통과하는 혈류가 심각한 장애를 받으며, 비로소 그 말단 심장근육에 산소부족 현상이 생겨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라는 혈관이 심하게 좁아질 때의 상태를 협심증, 혈관이 아주 막히는 경우를 심근경색증이라 부른다. 이러한 심혈관 질환은 전조증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발병했을 때 신속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심근경색증과 협심증은 원인이 같지만 혈관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증상이 비슷할 수도 있으며, 사람에 따라선 느끼는 증상이 다를 수도 있다. 대체로 공통점을 요약하면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 가슴 가운데가 뻐근하게 아픈 증상, 누르는 듯한 증상, 조여오는 느낌 등 가슴의 불편함이 발생하여 수분 이상 지속된다.
2) 가슴에서 느껴지는 증상이 팔, 등, 목, 턱, 또는 배의 위쪽 부분으로 퍼진다.
3) 숨이 차거나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 구역질, 어지러움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환자들은 대개 ‘가슴이 아프다’ ‘뻐근하다’ ‘쥐어짜는 것 같다’ ‘눌린다’ ‘답답하다’ ‘숨이 막힌다’고 호소한다. 협심증의 흉통은 가슴 중앙 부위를 격심하게 쥐어짜는 듯한 양상을 보이며, 통증이 목이나 어깨, 왼팔 또는 복부로 뻗치기도 한다.
운동, 스트레스, 성관계, 과식 등 심장이 일을 많이 해야 하는 경우에 흉통은 더 흔히 나타나 대개 3~5분 지속되며, 10분 이상 지속되는 일은 드물다. 관상동맥을 넓혀주는 니트로글리세린 알약을 혀 밑에 넣으면 대부분 통증이 가라앉는다. 만약 통증이 30분 이상 지연되면 심근경색일 확률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