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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배달은 누구인가?

박선동 |2008.09.29 04:10
조회 1,646 |추천 0
최배달은 누구인가 ?



무도가로서 한길을 걸어간 최배달은 전설 같은 일화를 남긴 최강의 파이터였지만, 대중의 가슴을 흔들어 놓기에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언변가이기도 했다. 최배달 어록으로 남겨진 그의 말들은 지금 회자되어도 가슴을 울리는 말들로 채워져 있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 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이라크 파병 등 사회적 이슈와 맞물려 회자된 바 있는 이 말은 실전공수라는 이름으로 &#-9;극진공수도&#-9; 를 창설한 최배달의 사상을 가장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말이다. &#-9;극진공수도&#-9; 가 실전의 힘을 기르고자 하는 이유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일본의 검객 &#-9;미야모토 무사시&#-9; 의 &#-9;오륜서&#-9; 를 접하면서 얻는 깨달음이지만, 영화 <바람의 파이터> 속에서는 최배달(양동근)의 스승이 되는 범수(정두홍)에게 &#-9;오륜서&#-9; 를 받아 들며 직접 듣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천일의 연습을 &#-9;단&#-9; 이라 하고, 만일의 연습을 &#-9;련&#-9; 이라 한다. 이 단련이 있고서야 만이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9;기요즈미산&#-9; 으로 들어가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소나무를 발로 차 부러뜨리는 등의 수련을 감행한 최배달은 이 단련을 위해 눈썹을 한쪽씩 번갈아 밀어 버리는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간혹 산에 오르던 사람들은 미친 듯이 뛰고, 차고, 격파를 하는 그를 일컬어 &#-9;기요즈미산의 도깨비&#-9; 라고 불렀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단련이 바로 최배달의 신화를 만든 기본이 되었다.

지금 싸우고 있는 적이 마지막 적이다. 싸움은 이번 한번 뿐이라고 생각하라. 목숨을 건 싸움에서 이번엔 지지만, 다음엔 이긴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 지면 다음은 없다. 이미 그대는 적에게 죽었기 때문이다.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미국 등 세계 전역을 돌며 격투 여행을 한 최배달이 싸움 전에 늘 되뇌었을 말이다. 극한의 두려움이 들었을 대결마다 늘 마지막 승부의 마음으로 펼친 그가 있었기에 세상은 그를 신화로 기억한다.



적에게 너의 살을 주고, 적의 뼈를 부수며, 적에게 너의 뼈를 주고, 그 목숨을 취하라. 자신의 안전에 구애 받으면, 이길 수 없고, 진정한 사무라이가 될 수도 없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속에서도 보이지만, 맨손과 검의 대결이 된 검귀 &#-9;료마&#-9; 와의 싸움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킨 것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에 자신의 한쪽 어깨를 내어 준 것이다. 그리고 어깨를 공격한 &#-9;료마&#-9; 의 찰나의 빈틈을 이용해 최배달은 &#-9;료마&#-9; 의 명치에 정권을 날렸고 이 짧은 순간은 생사의 길을 가로지르게 된다. &#-9;미야모토 무사시&#-9; 는 끊임없는 단련과 진검 승부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상대방의 칼이 1.5 센티미터 앞까지 오는 것을 지켜보고 반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검의 동선을 보고 두 손바닥으로 &#-9;료마&#-9; 의 검을 잡아낸 기술은 &#-9;오륜서&#-9; 에 남겨진 &#-9;미야모토 무사시&#-9; 의 말들이 최배달의 실전 전략에 토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예이다. 이 기술은 현재 &#-9;극진가라데&#-9; 에서 수련되고 있다.



무도의 본질은 싸워서 이기는 것뿐, 실전이 아닌 시합은 춤이나 체조에 불과하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실전공수(實戰空手) 그것뿐이다.

최배달의 &#-9;극진공수도&#-9; 는 나를 수련하여 자신을 이기고 상대를 이기는 것, 최고의 강자가 되고자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공수도에 입문한 이후 상대방을 가격하기 전에 공격을 멈추는 기존 공수도에 회의를 느낀 최배달은 자신의 실전공수를 입증하기 위해 &#-9;니조 도장&#-9; 을 포함한 일본 내 수많은 고수들과의 대결을 선언하고 &#-9;도바라야시&#-9; 즉 도장 깨기를 시작한다. 이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무도를 입증해 보이는 유일한 길이였고 한국인이기 때문에 차별 받는 자신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최배달이 수많은 실전을 향해 정진한 이유이다.

자신이 강함을 추구한다면 강하다는 점을 보여야 한다.

최배달은 무도를 숭상하는 나라 일본에서 자신만의 무도 세계를 구축했으며 동시에 자신의 실전공수를 입증하고 자신이 추구하는 강함의 한계를 끊임없이 넘어섰다. 싸움소와의 대결, 소뿔 자르기, 세계로 이어진 격투 여행은 그 신념의 실현이었다.

무도의 궁극은 사랑이다.

최배달은 살인 쇼크와 무도에 대한 회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한 검귀 &#-9;료마&#-9; 의 유족이 살고 있다는 &#-9;가나가와현&#-9; &#-9;하코네산&#-9; 으로 두 번째 입산을 감행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에서는 &#-9;료마&#-9; 의 가족 곁에서 평생 사죄할 것을 결심하고 자신을 적대시하는 &#-9;료마&#-9; 의 미망인과 그의 아들에게 헌신하는 모습이 나온다. &#-9;하코네산&#-9; 에서 최배달은 &#-9;료마&#-9; 유족에 대한 참회와 무도의 본질, 무도의 필요성에 대한 정신적 수양을 쌓는다. 마침내 그를 적대시하던 유족과의 화해와 함께 최배달은 무도가 사람을 죽이는 것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곳에 쓰여야 함을 깨닫는다. 최배달이 훗날 제자들에게 강조한 이 말은 이 &#-9;하코네산&#-9; 수련에서 완성된 것이다.

고향 산천을 어찌 잊어요, 자기 어머니, 아버지를 어찌 잊어요, 내가 고향 산천에 할 말은 없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에 자존심이 있어요.

해방 후 어지러운 정국을 맞이한 조국은 그를 단지 싸움꾼이라고 치부했으며, 소를 때려잡는 미치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가 만든 &#-9;극진가라데&#-9; 가 태권도라며 원조를 운운했고, 일본에 협조한 변절자로 지목해 멸시를 보내기도 했다. 최배달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일본에 귀화했다. 그렇지만 그의 일본 귀화는 자신을 외면한 조국에 대한 서운함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일본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던 그가 일본의 &#-9;위대한 인물 10걸&#-9; 에 선정되자 &#-9;극진회&#-9; 를 후원하던 &#-9;사토&#-9; 전 일본 총리가 귀화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의 일본 이름인 &#-9;오오야마 마쓰다쓰&#-9; 는 한국명으로 최배달, &#-9;배달민족&#-9; 의 뜻이 담긴 이름이었다. 비록 그는 일본으로 귀화했지만, 그것을 단순한 일본 국적 취득이라고 설명했으며, &#-9;극진가라데&#-9; 수도인들에게는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실전이 아닌 것은 인정받지 못 하며, 인정받지 못 하면 신용을 얻을 수 없게 되고, 신용이 없어지면 존경 받을 수 없다.

세상은 넓고 상수(上手)는 많다. 나 말고 모든 사람이 내 선생이다.

신용을 잃어버리는 것은 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용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잃어버린다는 뜻이다.

돈을 뒤쫓지 마라. 돈, 명예, 여자가 뒤쫓아 오는 남자가 되어라.

3D. 힘들다. 더럽다. 위험하다? 젊은 무렵, 내가 좋아했던 것뿐이다.

싸움에 임박해서 필사적이 되는 건 동물적 본능일 뿐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죽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서는 누군들 죽을 각오를 하지 않으랴. 문제는 기필코 이긴다는 신념을 갖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마음으로 듣지 말고 기로 들어라. 귀는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사물을 느낄 뿐이지만, 기는 비어 있어 무엇이든지 다 받아들이리니...

잔을 비운다는 것 가지고는 어림없다. 잔을 깨부숴라. 잔을 비운다고 하더라도 비어 있는 그대가 있다면, 그 잔은 가득 차 있는 것이다. 비어 있음이 그대를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최배달(본명 최영의), 일본 이름 &#-9;오오야마 마스다쓰&#-9;. 그에 관한 수식은 쉽게 압축할 수가 없다. &#-9;전설의 파이터&#-9;, &#-9;신의 손&#-9;( God&#-9;s Hand ), &#-9;가라테 마스터&#-9;, &#-9;소뿔을 꺾은 사나이&#-9; 에서 &#-9;바람의 파이터&#-9; 라는 제목까지. 한 사람에게 붙여지는 수식이라고 하기에는 다분히 많은 숫자지만, 그 정도로 최배달은 존경 받는 무도가로서의 생을 살았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를 통해 다시 한번 재조명 되고 있는 최배달, 그의 삶은 대체 어떠했기에 아직까지도 우리를 흥분하게 만드는 것일까?

하늘을 나는 파일럿은 되지 못했지만

1923년 &#-9;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와룡리&#-9; 에서 태어난 최배달은 어렸을 때 겁이 많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곧잘 일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곤 했는데 부농이었던 아버지가 고용한 하인에게서 차력, 혹은 중국무술인 남권을 익혔다고 한다. 1938년 16살이 되던 해, 최배달은 어릴 적 꿈이었던 파일럿이 되기 위해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9;현해탄&#-9; 을 건넌다. 일본 &#-9;야마나시 소년항공학교&#-9; 에 입학하게 된 최배달은 이때 처음으로 가라테에 입문하게 된다.

1945년 당시 일본은 패망 후 모든 것이 부족했고, 인심은 극도로 흉흉해져 있었다. 최배달 역시 춥고 배고픈 낭인 시절을 보내야만 했는데 어느 날, 도쿄 &#-9;시부야 공원&#-9; 에서 위험에 처한 야쿠자 보스를 구출하게 되어 6개월 간 그의 보디가드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야쿠자들의 방탕한 생활에 회의를 느낀 그는 재일교포 단체인 &#-9;거류민단&#-9; 에 투신하게 된다. 또한 일본에 체류하면서 수많은 폭행 사건의 주범이던 미군들로부터 겁탈의 위험에 처한 일본 여인들을 구해 내 &#-9;구라마덴구(막무시대의 영웅)&#-9; 라 불리며 처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 그 덕분에 그는 &#-9;CID&#-9; (범죄수사국)의 수배를 받게 되었고, 훗날 입산수도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가르침대로



미국 &#-9;범죄수사국&#-9; 의 추격을 받으며 고된 낭인 생활을 지속하던 그에게 또 한번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다. 그것은 에도 시대 검의 달인 &#-9;미야모토 무사시&#-9; 의 사상이 담긴 &#-9;오륜서&#-9; 한 권이었다. &#-9;미야모토 무사시&#-9; 의 &#-9;힘 없는 정의는 무능하고,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9; 라는 한 구절은 자신과 세상을 뛰어 넘고자 하는 의지를 만들어 냈고, 그는 그 길로 지바현 남부에 있는 &#-9;기요즈미산&#-9; 으로 뼈를 깎는 수련의 길을 떠나게 된다.



입산수련 과정에서 그는 두 손가락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딱히 상대가 없던 산 속에서 참나무와 폭포의 얼음덩어리, 돌덩어리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속세가 그리웠지만 그때마다 한 쪽 눈썹을 번갈아 밀며 자신을 세상과 격리시키며 의지를 다졌던 최배달은 미친 듯이 뛰고 닥치는 대로 격파했다. 그리고 자신을 버리는 것이 진정한 &#-9;비어 있음&#-9; (空)이라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그는 끝끝내 깨지지 않았던 자연석 격파에 성공하며 고단했던 입산수도를 마치고, 일본 무도계 정벌의 첫 발자국을 내딛게 된다.



무도 여행

최배달이 &#-9;기요즈미산&#-9; 에서 하산한 1947년 봄, 쿄도 마루야마 공화당에서는 패전의 울분을 씻고, 전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명분 아래 전후 최초로 &#-9;전 일본 공수도 대회&#-9; 가 개최된다. 공수도 전 유파가 참여한 가운데 격파와 대련으로 이루어진 &#-9;전 일본 공수도 대회&#-9; 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무도계에 파란을 예고했다. 그리고 &#-9;전 일본 공수도 대회&#-9; 를 통해 상대방 앞에서 가격을 멈춰야 하는 기존 공수도에 다시 한번 염증을 느끼고, 진정한 실전공수도의 길을 가기 위해 일본 각지에 숨어 있는 고수들을 찾아 무도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는 공수도의 원류라는 교토 &#-9;니조 도장&#-9; 의 &#-9;니조 십걸&#-9; 을 비롯하여 수많은 고수들을 격파해 나가며, 최배달식 실전공수를 알리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최배달에게는 민족주의 성향의 과격파들로부터 엄청난 협박이 날아들었다. 패전 후 겨우겨우 자존심을 세워 나가던 일본인들에게 최배달이라는 조선인의 존재는 눈엣가시 같이 일본의 자존심을 짓밟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매일 밤 숙소에 돌이 날아들었고, 습격에 대비해 하루에도 몇 번씩 숙소를 옮겨야만 했다. 최배달은 온통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폭풍 같은 대결들을 멈추지 않았다. 고베의 가미소리(면도날)라 불리던 &#-9;모리&#-9;, 나고야의 닌자 &#-9;미와&#-9;, 검귀 &#-9;료마&#-9; 를 비롯하여 자신의 공개 처형을 선언한 일본 내 고수들과의 &#-9;30 : 1&#-9; 의 &#-9;무사시노 혈전&#-9;, 심지어 싸움소와의 대결까지 그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세계를 제패한 사나이

&#-9;무사시노 대혈전&#-9; 을 통해 일본 무도계를 평정한 최배달에게 더 이상의 적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무도의 본질에 대한 의문과 세상에 존재하는 무수한 종류의 무도에의 호기심은 그의 눈을 세계로 돌리게 만들었다. 무도 여행은 일본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미국으로 이어졌고, 그의 불패의 기록들은 불패의 무신으로, 신화의 사나이로 그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와 책이 쏟아져 나왔으며, 일본 청소년이 선정한 &#-9;위대한 인물 10걸&#-9; 중에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선정되었다.

1961년 &#-9;극진회&#-9; 를 창립한 최배달은 1959년과 1962년에 시카고, 뉴욕, 캘리포니아 등지에 분관을 설립, 30개의 기왓장을 격파하는 등, 격파술 시범이 전파를 타면서 미국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끌어낸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집필 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해 &#-9;가라테 바이블&#-9; 등의 저서를 남겼으며, 1994년 폐암으로 생을 마감했다.

대산 배달

그러나 그는 유독 조국인 한국에서는 잊혀진 이름이었다. &#-9;숀 코네리&#-9; 에게 무술 고문을 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며 방한했을 때에도 조국은 그를 일본에서 활동하는 태권도의 고수로 소개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조국은 평생 그리움이었다고 한다. 재일동포 아주머니를 찾아 눈물을 흘리고 &#-9;극진공수도&#-9; 의 정착을 위해 귀화를 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9;대산 배달&#-9; 이라는 뜻의 &#-9;오오야마 마쓰다쓰&#-9; 로 개명했고, 끝내 한국 국적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방학기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 (1989.8.11~1993.7.20 스포츠 조선 연재)를 통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상 최강의 승부사 최배달. 그는 자신의 집을 방문한 제자들에게 손수 차를 끓여 줄 만큼 자상한 사람이었고, 항상 &#-9;밥은 먹고 다니나&#-9; 라는 얘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꽃 모양 뒤에 사자의 모양을 그려 넣은 사인을 가지고 있던 그는 생전 강함과 약함 아름답고 용맹한 것은 같은 것이라 얘기했고, 만화를 그린 방학기의 부인에게는 속옷을 선물할 만큼 섬세한 사람이었다.

타고난 능력보다는 스스로의 의지의 중요함과 남자답게 큰 배포를 가질 것을 권유했던 스승의 가르침을 회상하는 현 &#-9;극진공수도&#-9; 총재 &#-9;마쓰이&#-9; (문장규)관장은 영화 <바람의 파이터> 가 강해지는 것 보다 강해진 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관한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인터뷰에서 피력했다. 영화 <바람의 파이터> 양윤호 감독은 강하기 전에 약한 최배달이 있었고, 약해서 부서지지 않기 위해 온 인생을 내던져 자신을 단련시켜 나간 최배달이 있었기에 영화화가 가능했다고 고백했다. 아마도 우리는 영화 <바람의 파이터> 를 통해 전설의 파이터이기 전 인간 최배달의 모습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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