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미 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
동구 밖 서쪽의 나무가 우거진 곳이었기에 "숲정이"라 불리던 곳이다. 오늘엔 논으로 가꾸어진 벌판이지만 병인년대에는 숱한 천주학 죄인들이 산 채로 묻혀졌던 곳이다. 옛날엔 농부의 연장 끝에 걸려들던 뼈들이 많았었다 한다. 이 뼈들은 수직으로 서 있는 채 발견되었다 하는데 그것은 죽은 몸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이다. 산 사람들이 묻히던 어느날엔 함께 묻힐 동아리 가운데에 어여쁜 규수도 있었다 한다. 묻기를 명할 찰나에 형장의 눈에 들어온 규수의 자색은 그 형장의 연민을 자아내었다. 어여쁜 얼굴에 어찌 사학을 하여 죽는 몸이 되었느냐고. 살려줄 터이니 사학을 버리라고 꾀었으나 입술을 깨물고 그 규수가 먼저 구덩이에 뛰어 내리니 동아리 가운데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함께 묻히더라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 온다. 그날 묻히던 그 찰나에 하늘이 천둥으로 함성하고 사흘을 안개로서 생무덤을 덮어 주더라고 전해 온다. 묻히던 순교자들이 한결 같이 하늘에 외쳐대는 소리가 있었으니, "예수, 마리아!"라는 간구였다. 허나 구경꾼들이 듣고 전하여 준 오늘까지의 동리 사람들 말로는 "여수 머리"라 하여 여우 홀린 머리채로 죽어 갔다고 해서 이 숲정이를 "여숫골"이라 부르고 있다.
1790년대부터 80여 년간 시산혈하를 이루던 서문(정분문)밖 사형터는 병인 대박해시(1866년 이후)에는 주거 인접 지역인 관계로 대량의 사학 죄인의 시체를 처리하기에는 협소한 장소였다. 1천여 명을 단기간 동안에 처형하기 위해 벌판에서 집행하게 되었는데 죽이는 일과 시체 처리하는 일을 한꺼번에 해치우기 위해서 십수명씩 생매장하게 되었다. 생매장시키러 가는 길에 큰 개울을 만나게 된다. 개울을 건너는 곳에 외나무 다리가 있었고, 그 밑에는 물길에 패인 둠벙이 있었다. 두 팔을 뒤로 묶이어 끌려오는 사학 죄인들을 외나무 다리 위에서 둠벙에 밀어 넣어 버리기도 하였다. 묶인 몸으로 곤두박질 당한 죄인은 둠벙 속에 쳐박혀 죽었다. 이 둠벙에 죄인들이 떨어져 죽었다하여 동리 사람들 입에 "죄인둠벙"이라 일컬어지다가 오늘날에는 말이 줄어서 "진둠벙"이라 불리어진다.
(서문전경-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쟁이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 한다. )
저자길을 따라 서쪽 하수로에 다다르면, "재앙을 떨쳐내는 문"(征 門)이 비껴 있다. 재앙의 씨알머리를 서쪽에 내어 버리듯이, 사학 무리를 이 문 밖으로 끌어내어 쳐 죽였다. 잡아들일 때 빼앗았던 십자가와 묵주 등을 이 문의 난간에다 넣어놓고, 지나가며 밟게하여 천주학을 버리고 목숨을 살려보라 하였다. 그러나 그님들은 성물에 머리 숙여 절을 하고, 문턱을 넘어 가서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다. 이 문의 누각에는 지성루(枳城樓)라 쓰여 있는데, 본래 탱자나무(枳)로 둘러쳐진 해미 진영이었기 때문이지만 이 서문이란 그 님들이 가시밭 이 세상을 떠나가던 마지막 문이었다. 이 문을 나가면 그 님들을 밀어넣고 돌로 찧던 하수구가 입을 벌리고 있다. 하수구를 가로 질러 놓여 있던 돌다리는 그야말로 사람 도마였고, 여기저기 시체가 쌓여 썩고 피가 땅에 젖어 남아 흐르는 곳이 서문 밖이었으니 여기서 죽은 목숨을 몇 천이나 되었는지 헤어릴 수 없어 그저 '시산혈하(屍山血河)를 이루던 곳이었다'라는 말만 남아 있다.
서문 밖 순교지에서 순교자들의 목숨을 빼앗는 방법은 가지가지였다. 돌로 쳐 죽이기도 하고, 돌구멍에 줄을 꿰어 목에 옭아 지렛대로 조여 죽이기도 하고, 묶어서 눕혀 놓은 여러 명을 돌기둥으로 내리 눌러 죽이기도 하였으며, 얼굴에 백지를 덮고 물을 뿌려 질식시켜 죽이기도 하고, 나무에 매어 달고 몽둥이로 죽이기도 하였다.
특히 잔인하게는 돌다리 위에 연약한 순교자를 서너 명의 군졸들이 들어올려 자리개질(태질)하여 머리와 가슴을 으스러지게 하기도 하였다. 1866년 병인박해시 양촌 사람 방영창 안토니오 등 수많은 분들이 순교하였다. 꿈틀거리는 몸둥이가 있으면 횃불로 지져 숨을 끊어버렸다. 이 자리개돌은 서문 밖 순교 성지 일부를 확보하여 보존하고 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교우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이 나무 위에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호야나무 모습입니다)
-사진은 제가 찍은것이지만 설명은 참조하여 옴겨 적었읍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네비를 이용해서 갔네요^^
처음에는 해미성지로 가고,그후 해미읍성으로 갔지요
해미성지는 이름 모를 분들을 생매장한곳을 성지화 하였고,해미읍성에는 일명 호야나무라고 불리는 300년이상으로 추정되는 나무가 있는데,옥사에 수감된 천주교신자들을 끌어내어 나무의 동쪽가지에 철사줄로 머리채를 매달아 고문했다는 나무가 있고,서문으로 나가면(내가 갔을때에는 남문만 열려 있어서 남문으로 나가,서문으로 돌아 가보았다) 테기치어 신자를 죽이던 넓은 돌이 있지요~(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이였으면 비오는 날이면 그돌에서 시커먼 물이 흘러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읍니다)
구경을 다하고,서산 시장에가서 김장할 젓갈과액젓을 구입후 집으로~^^
대하철이라 남당리를 들러 볼까하다~ 총알압박에 다음으로 미루고 왔네요~
아~~ 해미성지 근처 성지들이 좀 있더군여~~ 저는 챙기지 못한 것을 다른 분들은 챙겨 들르시는것이 좋을것 같읍니다~
저도 다음에는 근처 성지를 모두 들러 올까합니다~
가기전에 공부도 좀하고여^^;;
사진은 나오는데로 올리겠읍니다~ 필름카메라라서^^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