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작은 부국, 가장 살기 좋은 나라 아이슬란드, 한때 유럽의 부러움 대상으로 '켈트 타이거'라는 별명까지 얻은 아일랜드, 이들 두 국가가 글로벌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 몰락 위기에 놓였다.
◆ 아이슬란드, 금융허브 야심에 무리한 개방 화 불러
= 아이슬란드는 인구 30만여 명에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22억달러, 1인당 GDP 4만400달러로 부국에 속한다. 특히 아이슬란드는 전통적인 어업으로는 국가 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금융업 등 서비스업을 적극 육성해 지금은 유럽 금융 허브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991년 이후 이자율 상향과 외환 통제 완화, 외국투자 유치 강화 등 금융시장을 과감하게 개방했다.
그러나 미국발 금융위기가 미국은 물론 유럽 대륙을 강타하면서 아이슬란드와 거래하는 주요 유럽 은행들도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아이슬란드도 그 충격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게이르 하르데 아이슬란드 총리는 대국민 연설을 통해 "최악의 경우 아이슬란드 경제가 부실 은행들과 함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 국가 부도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이슬란드가 국가 부도 위기에 빠진 데에는 그동안 은행과 기업들이 느슨한 금융규제를 이용해 국내에서 돈을 빌려 유럽 등 외국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렸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들이 외채를 과다 차입하는 바람에 이 나라 4대 은행의 해외 채권 규모는 현재 1000억달러가 넘는다.
과감한 차입 투자로 아이슬란드 은행 자산 규모가 GDP(122억달러)의 약 8배에 달해 은행이 '잔기침'을 하면 나라 전체가 '독감'에 걸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은행들이 파산위기에 몰린 데다 외환보유액마저 바닥을 드러내는 등 아이슬란드는 과도한 신용이 어떻게 경제를 망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된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물가 상승률이 14.5%로 치솟고 가계부채가 급증하자 개인들은 지갑을 닫아버렸다.
아이슬란드는 통화가치가 거의 절반가량 추락하자 국내 금융계를 보호하기 위해 자국 '빅3' 은행을 국유화하는 비상대책을 마련했다.
신용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달 말 국내 3위 은행 글리트니르를 국유화한 데 이어 지난 7일에는 2위 은행 란즈방키, 9일에는 최대 은행인 카우프싱마저 국가가 인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국 3대 은행을 모두 국유화함에 따라 국내 예금의 지불을 전액 보장하겠다는 정부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또 투자자 보호를 위해 카우프싱 등 6개 대형 은행의 주식 거래를 중단시켰다. 또한 은행 국유화와 함께 정부가 부실 기업을 인수해 경영에 간섭하고 주주 권한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아이슬란드 중앙은행은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자국 통화 코루나의 가치를 유로당 130코루나로 고정했으나 실제 시장에서 유로당 200코루나에 거래되는 등 시장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긴박해지자 아이슬란드는 지난 7일 유럽연합(EU)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했으나 금융위기에 빠진 EU는 이 같은 요청을 수용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아이슬란드는 세계 3위 외환보유액을 자랑하는 러시아에 40억유로(54억달러ㆍ약 7조2000억원)를 지원해 달라며 도움을 요청한 것. 러시아 외환보유액은 9월 말 현재 5630억달러로 중국(1조6822억달러) 일본(1조38억달러)에 이어 3위를 차지한다.
이에 대해 러시아 측은 "지원 요청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러시아 역시 1998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이 가장 심각한 상황이어서 아이슬란드의 'SOS'를 선뜻 승인하지 못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의 자금공여 조건이 알려지지 않았으나 런던은행 간 금리(리보)에 0.3~0.4%포인트 가산금리가 붙는 조건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그러나 러시아도 지난 10년간 최악의 금융위기를 맞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최근 2000억달러 규모 자금을 금융ㆍ건설ㆍ에너지 업계에 투입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상황이라 아이슬란드의 'SOS' 요청 수락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그러나 알렉세이 쿠드린 러시아 재무장관은 "아이슬란드의 자금 지원 요청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아이슬란드는 또 자국에 예치된 영국 금융자산 문제를 놓고 최근 영국 정부와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부도위기에 처한 아이슬란드가 금융위기 타개를 위해 잇달아 비상조치를 시행하는 가운데 영국 정부가 아이슬란드 은행에 예치된 영국 자산 40억파운드를 확보하기 위해 테러방지법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양국 관계가 1976년 어로수역 분쟁으로 전쟁 발발 위기가 고조됐던 '대구 전쟁(Cod Wars)' 이후 최악의 상태를 맞았다.
금융위기를 둘러싼 영국과 아이슬란드 간 갈등은 서구 진영이 아이슬란드 자금 지원 요청을 거부한 것도 하나의 요인이 된 것으로 보여 향후 사태 수습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아일랜드, 지나친 건설업 의존 주택거품 꺼지며 흔들
= 아일랜드는 지난 10년간 다른 국가에 '경제모델'이 될 만큼 잘 나가던 나라다. 부동산 시장 붐으로 수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1996년부터 10년간 연평균 7%대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아일랜드의 성장모델은 한국은 물론, 중국 이스라엘 칠레 등 세계 주요 국가들이 전문가들을 파견해 성공비결을 배워가려 했을 정도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처럼 고속 질주했던 아일랜드 경제가 이젠 가파르게 추락하고 있다. 신용경색과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로 아일랜드 국내총생산(GDP)은 2분기에 0.5% 하락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함으로써 유럽국가 중 최초로 경기 침체에 빠졌다.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면 기술적 침체에 빠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아일랜드의 실업률도 6.3%로 상승했으며 경제성장 원동력이었던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으며 경제성장에 힘입어 천정부지로 치솟았던 집값도 폭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아일랜드 금융시스템도 위기에 빠진 상황이다. 아일랜드 정부는 은행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5500억달러를 투입해 6개 대형은행의 예금을 2년간 전액 보증하겠다고 나섰다.
브라이언 코웬 아일랜드 총리는 "안정적인 은행 시스템 없이는 경제도, 미래도 없다"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일랜드가 회원국들에 정부 예산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유지하라는 EU 지침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보도했다.
아일랜드가 경기침체에 빠지게 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주택시장 버블 붕괴로 볼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주택경기 침체로 올해 아일랜드 경제가 0.5~2% 축소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며 2009년에도 경제가 축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아일랜드 부동산 거품은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터지기 1년 전부터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인구 430만명의 아일랜드는 지난해에만 신규 주택 10만채를 지었다. 이는 아일랜드 인구의 12배인 영국이 지난해 18만채를 지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나치게 많은 것이다. 신규 주택을 매입할 것으로 예상됐던 동유럽 노동자들이 아일랜드를 떠난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아일랜드가 침체에 빠지면서 동유럽 노동자들이 대부분 본국으로 돌아가거나 여전히 호황을 누리고 있는 스칸디나비아쪽으로 이직했는데 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겨냥해 주택을 마구 지었던 건설업체들에 큰 타격을 줬다.
8명의 아일랜드인 중 1명을 채용할 정도로 가장 고용 비중이 높은 업종인 건설업체들은 공급 과잉으로 인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대규모 감원을 실시했으며 이로 인해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부동산시장 거품붕괴로 가계부채가 늘어난 가운데 일자리도 줄어들고 글로벌 금융시장 위기까지 맞물리면서 고통이 가중된 아일랜드 국민들은 호주 등으로의 이민까지도 고려 중이라고 데일리텔레그래프지(紙)는 보도했다.
더블린의 한 대형 건설회사에서 전기기술자로 근무하다 최근 해고된 제이슨 케니는 호주로 이민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아일랜드에는 현재 아무 것도 없다. 셀틱 타이거는 죽었다"고 씁쓸함을 토로했다.
인건비 상승이 아일랜드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 경영환경을 악화시키면서 철수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로 모토롤라는 지난해 5월 코크시 공장을 폐쇄했다. 아일랜드 내 고임금 일자리 대부분은 저임금 경제권인 남미와 극동지역 등으로 이동하거나 아예 없어지고 있다. 아일랜드의 대형 투자프로젝트 대부분에 참여했던 미국 자본이 금융위기로 썰물처럼 빠져나간 것도 경제에 치명타를 날렸다.
전문가들은 아일랜드가 직면한 도전들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아일랜드 성장 모델'의 성공 여부를 판가름해 줄 것으로 전망한다. 아일랜드는 부동산ㆍ건설시장 침체와 경쟁력 하락, 인건비ㆍ경제성장률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기대감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우선 주택ㆍ건설부문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여야 할 것으로 지적된다. 아일랜드 주택ㆍ건설부문은 한때 총생산 중 3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아일랜드 경제&사회연구소의 존 피츠제럴드 교수는 부동산 시장 위기가 해결돼야 아일랜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한다. 그는 "위기는 그릇된 정부정책 때문이다. 아일랜드 정부가 주택시장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난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일랜드가 회생하려면 주택시장에 기대기보다는 교육부문과 혁신분야에서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더블린 투자자문회사 '프렌즈 퍼스트'의 짐 파워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아일랜드의 경쟁력은 눈에 띄게 낮아졌다"고 진단하면서 아일랜드가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는 국가가 되려면 정책담당자들과 정치인들이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