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걸 곧이 곧대로 믿었다.
'사랑하기 위해선 준비가 필요하다. 첫단추는 지난 사랑을
걸러내고 걸러내도 남은 찌꺼기를 털어내는것. 그 감정을-
두번째는 그 사람대해 알아가는것.
그리고- 사랑할것'
지난 사랑의 잔여 감정이 있으면 순수하게 그 사람만을 사랑 할 수 없을터.
100% 사랑하려면 100% 비어 내어야 한다는 그 말이 어쩜 내 생각과 딱 들어 맞았을까-
그래. 나에겐 준비가 필요해. 첫단추 부터.
그대. 2화 : 준비
그대.
정수연. 이름 말고는 알고 있는게 없다.
주변 사람에게 물어 봐야 하나? 어떻게 내 마음에 있는 잔여물을 털어 버릴 수 있을까.
책상에 놓여진 머그잔에는 한참 전에 마시다 남겨 놓은 물이 반정도 차있었다.
한모금에 털어 넣는다- 약간의 먼지가 섞인듯 하지만- 그걸로 내 목의 갈증은 어느정도
채워졌다 할까.
덜그럭 덜그럭.
책상 서랍을 열었다.
- to. 송근섭. 으로 시작되는 수많은 편지.
무심코 내 책상에 책꼿이 위를 쳐다 보았다.
그녀에게 받은 선물.
지난 사람의 향기로 가득차 있는 내방.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창문을 열어 놓고 담배를 하나 태운다.
차그르르- 하는 언제 들어도 좋은 소리가 난다.
가슴 가득 채우고 한모금 내밷으며- 그녀에 생각도 하나씩 내밷어 보았다.
그렇게 하나를 다 피우고 나서 난 곰곰히 생각하다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기로 했다.
통화음이 뚜- 하고 울리고 나서 요즘 상가 어디서나 들을수 있는 흔한 유행가가 들려왔다.
그리고 자주 듣던 흔하지 않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 아차. 실수로 그녀의 번호를 눌러 버린건가.
"..어~ 오랜만! 뭐해?"
- 최대한 실수가 아닌척 말을 이어 가는 나. 살짝 이마에서 땀이 흐르는듯
당황스러움이 온몸에 흘렀다.
"일 해"
"바뻐?"
"응, 조금"
짧은 그녀의 목소리는 역시나 아직 그녀의 목소리였지만 짧아진 만큼
나에 대한 마음 역시 짧아진거겠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해가지고 내 머리를 쥐어 뜻고 싶은 심정이였지만. 차분히.
담배를 하나 다시 꺼내 물고 불을 붙이며 얘기를..
"할 애기 없어?"
- 컬럭컬럭.
"아..아니~ 그건 아니고. 뭐. 물어 볼거 있어서.."
'성격 급한건 여전하구나, 담배 연기가 사래 걸리면 얼마나 독하..'
"뭔데?"
- 그녀는 나의 사색 마저 기다려 주지 않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 뭐 그땐 그것마저 좋았지만
"너무 빡빡하시네~! 딴건 아니고 그냥 연예 상담 하나 하려고..."
3분정도 였을까
나의 머리는 텅 비어 버렸다.
짧은 블루스곡이 하나 지나갈 정도의 시간이였지만 내 마음에선 서늘하게
클래식 한 악장이 지나갈만큼 길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사람과 끝났다고 생각하려면. 이렇게 말로써. 편지를 태움으로써 물건을 갔다 줌으로써
그렇게 끝내는게 아니라고.
그냥 아예 그 순간 부터 연락도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끝. 내야 끝낸거라 하는거라고.
젠장맞게 그녀의 말은 전부 다 맞았다.
-쩝
입맛을 다시며 난 침대위에 누워서 생각해봤다.
그러다 다시 생각난 그대의 글.
그대의 글을 좆아 미니홈피로 들어가봤다.
예상대로. 였을까. 그대는 너무나 많지 않지만 적절하게 그대를 표현하고 있는
글로 가득 차 있었지.
- 만나고 싶다.
'응?'
오류.
그건. 만나고 싶다가 아니라. 외로워서 사랑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다 였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걸 몰랐다.
그저. 지난 사랑에 대한 후유증으로 그냥 사랑받고, 하고 싶다 였을뿐인데.
나의 뒤틀려진 자존심은 그저 만나고 싶다라고 알려줬고 나의 생각은 약간 맞지 않는
그 말을 그냥 받아들였다.
-
날씨가 싸늘한 겨울.
차들이 이리 저리 빽빽히 다니며
사람들이 도로를 가득 채웠고 네온싸인과 사람들 잡담 소리에 길거리는 온통 젊음으로
가득 찬듯 보였으나.
그 안에는 나는 없었다.
나를 채워줄 사람은 있었다.
신호등 맞으면 누군가가 서있다.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대를 확인한다. 손을 흔든다.
건너편에 보이는 가죽자켓에 청바지 어깨가까이 닿은듯한 짧은 머리.
사진보다 더 해맑은 웃음. 이쁜 얼굴은 아니지만 그 웃는 모습엔 그대의 많은것이-
많은것이 담겨 있는듯 했다.
- 두근 두근.
파란불이 켜졌다.
지난 한달간 그녀를 알게 되고 털어내는 준비 끝에 전화를 하고 얘기를 나누고
그리고 만나게 되는 지금. 이 신호등 건너가면서 보이는 길 건너편에는 그대가 보였다.
내 마음에도..
파란불이 켜졌다.
이 거리에 젊음은 가득 했지만 나는 없었다.
나를 채워줄 그대만이 가득했다.
그대와 함께할 서너스푼시간의 데이트.
그것이 그대와의 첫만남.
그대를 사랑할 준비.
준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