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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 수 없는 약속,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

이수정 |2008.10.17 03:22
조회 160 |추천 0

(신카이 마코토 감독을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네이뇸에 떠도는 사진을 보니, 그는 마치 제가 머릿속 외딴 방 한 켠에서 '분명 이런 모습일 거다'따위의 개인적 상상을 3차원 영상으로 프로그램화해 재현시켜 생명을 불어넣고는 밥도 주고 똥도 치워주고 컴퓨터와 프라모델에 싸인 방에 가둬놓은 채 사육하던 저만의 <미스터 오덕후>의 모습이 놀랄 만큼 현실에서 재현된 외모이군요......^^:: 매우 놀랐습니다.ㅜㅜ...그의 작품을 보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말입니다...ㅠ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을 보았습니다. 

 

그의 작품은 일관적인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흔히, 잡지를 보면 '그냥 그 이름을 좋아해서요.' 라던가 블라블라블라 하는 말들이 가득한 인터뷰로 감독들은 자신의 내면에 지니고 있는 집착과 트라우마를 숨기려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솔직히 그냥 좋아하는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엔 이유가 있고, 그저 자신은 깨닫지 못할 뿐인 거죠. (아니면 별로 알릴 필요성을 못 느끼거나 말이죠..)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을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아직 별의 목소리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작품 '초속 5센티 미터'와'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묘한 동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한 이야기와 한 주인공으로 만든 작품처럼 말입니다.

(사실, 신카이 감독의 노을을 표현하는 색감이라던가 빛을 평면에서 구현해내는 솜씨, 그리고 음악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기법의 서정성과 관객의 마음을 자유자재로 심연까지 빠져들게 만드는 연출력은 이미 단편에서부터 정평이 나 있습니다. 하여, 그의 작품 전반에서 보여지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며 동시에 뛰어난 미술가인 그의 재능은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작년이었던가요..

저는 처음 '초속 5센티미터’를 보았을 때 리뷰에서 들었던 것과 같은 유년의 첫사랑이나 '추억을 되짚어가는' 이야기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었습니다. 그 느낌은 반복해서 보면 볼수록 강해지더군요. '첫사랑'이나' '추억의 기억' 은 단지 본연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감독의 도구적 장치일 뿐, 그가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우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저는 '초속 5센티미터'의 주인공 '타카키'가 기다리는 것은 '아카리'가 아니라, 그저 '아카리' 로 대변되고 있는 '그 어떤 것'이며. 그 것은 '꿈의 <본질>'이라는 생각이었죠. 주인공이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야마자키 마사요시 의 one more time, one more chance의 가사처럼 카페의 창에 앉아 신문구석구석을 찾아 가며 헤매는 것은 '추억의 그녀'가 아니라 '자신이 잃어버린 것의 본질'이라는 것이죠. 

그 때, 영화가 끝난 후 자막이 올라가고 있는 스크린을 뒤로 하고 나오면서, 첫사랑의 추억을 절절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나 혼자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하며 억지를 쓰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 '구름 저편, 약속의 장소’를 보고 더욱 강하게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신카이 마코토의 중'장편에서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하늘'은 주인공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가장 대표적인 장치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을 가로지른 저편에는 언제나 '로켓발사대(초속)'나 '탑(구름저편)'같은 것들이 있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의도적 오브제들은 늘 주인공들이 다가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 평온한 현실과 괴리된 역동적이며 초과학적인 것(초속 5센티에서나 구름저편에서나 서정적이고 자연적인 작은 마을에 홀로 서있는 초과학적 결정체로 묘사됩니다)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 오브제들은 주인공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유년을 건너 어른이 되어가면서 점차 딱딱해지고 비루해져 가는 자신들을 구원해줄 수 있는 본질적인 '긍정적 미래'혹은 '꿈의 현실화'의 형상화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무엇인가가 결여된 자신에게 견딜 수 없어 하는 '초속5센티미터'의 주인공 타카키가 로켓발사대를 보며 '언젠가는 꼭 로켓을 보고 말 거라고 되뇌는 장면이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에서 꿈 속에서 헤매면서 잃어버린 기억을 주워담기 위해 필연적으로 탑에 가야만 하는 '사유리'와 '타쿠야'와 '호로키'의 모습은 정말이지 쌍생아처럼 닮아있습니다.  

그렇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에게 '하늘' 혹은 '우주'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이고 근원적인 생명력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을 가기 위해 찌를 듯 솟아있는 '탑'과 '로켓발사대'는 주인공이 꿈을 꾸는 이유이자 꿈 그 자체의 형상화인 동시에, 흡사 하늘에 닿기 위해 애써왔던 인간의 역사를 응축해 놓은 집약적 모습입니다. 그들은 각자 '비행기'와 '로켓'으로 '탑(더 궁극적으로는 국경을 넘어선 구름의 저 편)'과'하늘'에 가는 꿈을 가지고 있는 거죠.

'구름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결국 주인공들은 '비행기(그것도 주인공들 스스로 만든, 그들의 유년의 역사를 대변하는) 베라실라' 로 마침내 그들의 현실과 괴리되어 외롭게 떠돌며 잠든 이의 기억 속에서 부유하던 꿈과의 조우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초속5센티미터'에서의 '타카키'는 '로켓'이'우주' 로 발사되는 모습을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는 것으로 그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란 그는 도쿄의 작은 방에서 창문을 보며 '여기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며 '쓸쓸하게 자조하죠.

그런 면에서 3년 후의 작품인 '초속5센티미터'가 더욱 현실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초속5센티미터'의 주인공은 그저 하늘을, 바. 라. 만. 보고 있으니까요.

 

 

이 두 작품은 그래서 참 닮았습니다.

비슷한 연령대의 주인공들이나, 첫사랑에 인생을 건다는 공통점은 뒤로 하고라도,

교실에 햇살이 들어오는 장면들이나, 주인공이 양궁을 한다는 설정, 주인공들의 꿈을 형상화한 오브제들은 도시가 아닌 유년기의 고향에 존재하고 있다는 설정이나 그 오브제가 지니고 있는 '하늘'과 '비행', 혹은 '우주' 와의 연관성,

유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어가는 주인공이 도쿄의 작은 방에 갇혀 있다는 설정, 하늘에서 도쿄를 내려본 화면 등, 많은 동일한 구도의 장면들과 비슷한 설정들은 마치 하나의 작품을 주인공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다시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결론만 다를 뿐이지요. 물론, 같은 감독이기 때문에 비슷한 느낌의 화면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동일한 장치들은 반복되면서 하나의 공통된 이미지를 만들고, 그 이미지들은 유기적으로 반응하여 또 동일한 이미지를 생산, 연상시켜 관객들의 마음을 흔듭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너무나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장면과 의도적 화면삽입, 연출을 통해 그는 '하늘과 탐(혹은 로켓)'와 '현실과 도쿄'사이의 간극에 대해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신카이 마코토는 인물을 통하여 말을 하는 이야기꾼이 아니라 오브제를 통하여 은유 하는 시인에 가깝습니다.

'구름저편, 약속의 장소'에서 약속에서 도망치듯 도쿄로 온 '타쿠야'가 '도쿄에 오면 탑이 보이지 않을 줄 알았다(그런데도 날씨가 좋으면 가끔 보인다)'며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장면이나,

'초속5센티미터'에서 도쿄의 고등학교로 온 '타카키'가 '이 곳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아' 라며 중얼거리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감독은 매 순간, 장난치듯, 혹은 숨은 그림 맞추기를 하 듯, 같은 장면과 같은 대사를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유년기의 기억은 '추억'이자 '비현실적이고 비생산적인 것', 그리고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며 '도쿄라는 거대 도시로 대변되는 현실'과 타협하려고 애썼던 주인공들은 실제의 신카이 마코토 그 자신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어린 시절에 꾸었던 꿈들은 그 시절에 보았던 고향의 하늘, 그리고 그 곳과 가장 가깝게 치솟은 아름답고 거대한 기둥들로 대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첫사랑'과 '이룰 수 없는 것'은 동일한 것이며, 아이러니 하게도 그것은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아름다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잃어버리기도 쉬운 것이고 더 멀리,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신카이 마코토는 이렇게 이야기 하죠. '어느 정도의 속도로 살아야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초속 5센티미터), '그 옛날 우리들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했다.'(구름저편, 약속의 장소소)라고 말이지요. 그에게 있어 꿈과 순수했던 유년은 지킬 수 없는 약속이고 아무리 다가가도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인 것입니다.

 

 

작가로써,무언가, 나의 감정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사물이나 이미지를 개인적으로 마음 깊이 품고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습니다. 마치 시인처럼요. '나는 어른이 된다.'가 아닌 '도쿄에서는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로 표현할 수 있는 신카이 마코토가 참 부럽습니다. 글쎄요. 그게 그냥 멋지게 쓰려한다고 되는 걸까요.

그의 작품을 볼 때마다 제가 느꼈던 것은, 간절하게 반복해서 되뇌는 실제의 신카이 감독의 자전적 뉘앙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구체적이고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말입니다. 실지로, '도쿄', 혹은 '도쿄에서 머물렀던 기억'은 그에게 '타협해야 하는 현실' '무력함' '소중한 것의 결여'를 떠올리게 하는 하는 것 같습니다. 그저 은유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는 도쿄는 그런 도시인 겁니다. '하늘'과 '탑과 로켓' '유년의 첫사랑'이 그에게는 '본질적이고 순수한 꿈'과 같은 의미인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그의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 됩니다.

이번의 주인공은 현실의 도쿄에서 또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그의 하늘은 또 어떤 모습으로 형상화 되어 있을지, 그 하늘로 가기 위해 그가 타는 것은 베르젤라나 로켓이 아닌 또 어떤 것일지 말입니다.

 

그리고, 도쿄라는 거대도시의 한구석 작은 방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꿈을 향해 걸어왔을(아마도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꿈을 이루었다고 말해져도 좋을 만큼 성장한 신카이 마코토에게 저는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날아가고 있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약속의 장소를 잃어버린 세상에서...그래도...앞으로도 우리는 살아간다' 라고 읇조리던 '타쿠야' 처럼, 유령 같은 도시에서 꿈이란 것은 그저 첫사랑 처람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라고 치부하며, 건조해지고 딱딱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우리들에게 ‘탑’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그 느낌이 어떤 것인지,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 해 달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멈춰버린 채 잊고 지내왔던 제 깊숙한 곳의 숨어있는 꿈을, 똑,똑, 두드려 깨워 불러낼 차례입니다.

아직도 그 모습 그대로 내 안에서 숨쉬고 있을 내 푸른 풀잎같은 꿈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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