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세계 (It's a Free World..., 켄 로치 감독, 2007)
‘자유’가 너희를 억압케 하리니…
영화를 본 지 어느새 나흘이 지났다. 나흘 전, 영화가 끝나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즈음 시작된 명치께의 통증이 지금도 여전하다. 아니, 글을 쓰기 위해 이것저것 자료를 모으는 동안 통증은 더욱 깊어졌다. 상사의 성희롱에 당차게 대들던 앤지가 점점 표정을 잃어가던 모습과 오버랩되던 증오 가득한 이주노동자들의 눈초리, 안쓰러운 눈길로 앤지를 바라보던 폴란드 청년 캐롤과 친구가 부끄럽다며 차문을 쾅 닫아버리고 빗속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앤지의 절친한 친구이자 동업자 로즈, 엄마와 조금이라도 함께 하고 싶어 이래저래 사고를 치는 앤지의 아들 제이미와 변해가는 딸의 모습이 안타까운 앤지의 아버지……, 영국의 평범한 싱글맘 앤지의 주변 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얼음조각처럼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에 콕콕 박힌다. 아, 아프다.
자유로운 세계 - 계급 이동의 자유?
앤지는 동구권에서 이민 온 이들을 영국기업에 취업시키는 인력회사의 직원이다. 꽤 열심히 일했고 실적도 좋았다. 그러나 상습적으로 앤지를 성희롱해온 상사에게 대들었다가 바로 해고당한다. 빚도 있고 당장 먹고살 일이 막막해진 가난한 싱글맘 앤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간 인력회사에서 일했던 노하우를 발판 삼아 친구이자 동거인인 로즈와 ‘앤지&로즈 인력업체’를 창업한다.
그때부터 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에서 사용자로 계급적 지위가 뒤바뀐다. 종자돈이 없으니 우선은 사업자등록증도 없고 세금도 안 내는 불법업체를 운영하는 사기꾼이 돼 버린 것이다.
불안해하는 친구 로즈에게 앤지는 말한다. “지금은 돈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만 조금만 더 벌어서 정식으로 사무실을 차리면, 도로도 낼 수 있을 만큼 세금을 낼 거야.”
딸이 이민자들을 저임금 일자리로 내모는 악덕 알선업자가 됐다는 걸 알고 잔소리를 늘어놓는 아버지에게 앤지는 말한다. “그들(이민자)은 어찌됐든 일자리가 필요하고, 기업들은 값싼 노동력이 필요해. 난 그들이 바라는 것을 이뤄주는 일을 하는 거야.”
앤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도 마음만 먹으면, 그리고 머리만 잘 쓰면 누구나 사용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처럼 보인다.
자유로운 세계 - 노동의 수요와 공급의 자유?
앤지와 로즈는 사무실도 없이 자신들의 아파트에서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사무실 삼아 영업을 한다. 앤지네 회사에 인력시장 용 공터를 빌려준 식당 주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며, 앞으로 세상은 “너희들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이민노동자의 송출이라는 앤지네 회사의 업무나 앤지가 회사를 운영하는 형태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굳이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아도 되고 사업을 벌이기 위해 굳이 사무실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는 요즘 세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은 이렇게 노동의 수요와 공급 형태를 변화시켰다. 이 얼마나 자유로운 세계인가!
어디 노동뿐이겠는가?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가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유럽, 아시아 할 것 없이 전 세계를 뒤흔드는 모양새를 보라. 자본의 이동은 노동보다 훨씬 자유롭다. 마우스 클릭 한 번에 수천억 달러가 국경을 넘어 오가는 시대다. 그리고 그러한 자본의 이동이 이 나라 서민의 장바구니에 직접 타격을 가하는 시대다.
자유로운 세계 - 누구를 위한 자유인가?
자본과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은 먹고살기 힘든 노동자들이 국경을 넘게 했고, 그렇게 넘어온 값싼 노동력은 본국 노동자의 노동과의 가격비교를 통해 자본에게 선택된다. 본국 노동자는 값싼 이민 노동에 떠밀려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으로 내몰린다.
이민자들에게 값싸고 비인간적인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결국은 앤지의 아들 제이미와 같은 다음 세대에게 더욱 불안한 미래를 가져다 줄 거라고 경고하는 아버지에게 앤지는 절규한다. “아빠는 30년 동안 같은 일만 하고도 먹고살았지? 하지만 난 지금까지 30개도 넘는 일을 해왔어!”
그렇다. 안정된 일자리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 전 지구적으로 값싼 노동력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덕에 언제고 해고와 채용이 가능한 자유로운 세계, 그 세계에서 싱글맘 앤지가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위치한 이민자들을 등쳐먹는 길을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특별히 사악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녀에게 자본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서도 아니다. 그녀는 자유로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로운 세계를 뒤엎지 않고 참 자유는 없다
자유로운 세계는 앤지에게 노동자에서 사용자가 될 자유를 허락했다. 그리고 먹이사슬의 최하위에 있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을 억압할 자유 또한 허락했다. 임금을 떼먹힌 이민자들에게서 린치를 당하든 아들을 유괴당하든, 어쨌든 그녀는 자유롭다. 그녀의 자유는 고통스럽다. 그녀로 인해 고통당하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유 또한 고통스럽다.
수많은 앤지와 로즈, 그리고 이주노동자들에게 억압당할 자유와 억압할 자유, 그로 인해 인간성을 버릴 자유와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외면당할 자유를 허락한 것은 이놈의 자유로운 세계다. 이놈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로 이득을 보는 이는 계급 이동으로 신분상승을 꿈꾸는 앤지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앤지가 억압의 먹이사슬 말단에서 버둥대는 동안 배를 두드리며 자유를 만끽하는 이들은 따로 있다. 이놈의 자유로운 세계를 뒤엎지 않고서는, 진정한 자유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