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KBS, 92년 MBC, 그리고 2008년 “공정방송” 외침 계속
지난 대선 당시,이명박 후보 캠프의 상임특보였던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오면서 시작된 ‘YTN 사태’. 지난 7월17일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구본홍 사장 선임 안건이 통과되었고, 이후 이사회를 통해 공식 선임됐다.
오는 25일로 구본홍 저지 투쟁 100일을 맞는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지부장 노종면)와 구 사장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7월17일 YTN이 오전 9시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구본홍 사장 내정자에 대한 대표 이사 선임 안건을 통과시키고 있다. 용역 직원들이 노조원들을 제지하고 있는 가운데 김재윤 의장과 대주주들이 황급히 퇴장하고 있다.
출근저지투쟁, 단식투쟁, 피켓시위, 공정방송 리본, 사장실 앞 저지, 노조원 고소, 노조원 징계,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
지난 100일간의 YTN 사태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들이다. YTN 노조는 아침마다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을 벌였고, 사원들이 조를 짜가면서 단식투쟁을 이어갔다. 사장실 앞을 저지하는 것은 물론 그들의 ‘공정방송’ 의지를 담아 리본을 단 채 취재를 했다. YTN 노조원들은 투쟁 때마다 주먹을 불끈 쥔 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이러한 움직임에 YTN은 ‘징계’와 ‘고소’라는 카드로 노조원들을 압박했다. 회사는 노조원 12명을 업무방해,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위반 혐의로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고소했다. 그리고 인사위원회를 열어 노조 활동에 앞장선 노조원 6명에 대한 해임을 통보하는 등 모두 33명에게 징계 조치를 내렸다.
‘공정방송’ 90년 당시 KBS·MBC 투쟁 목표
YTN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일들은 낯설지 않다. 이미 지난 90년대 KBS와 MBC 투쟁 당시 벌어졌던 현상들이기 때문이다. 투쟁 시기와 내부 구성원만 다를 뿐, ‘공정방송’을 위한 노조원들의 의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이들을 향해 징계의 칼을 휘두르는 회사 쪽의 조치도 그때와 같다.
▲ YTN 노조원 100여명이 10월 7일 오전 서울 남대문로 YTN타워 후문에서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1990년 KBS의 투쟁과 1992년 MBC 투쟁의 목표는 ‘공정방송’이었고, 십여년이 지난 2008년 현재 YTN 노조가 투쟁을 하는 이유도 ‘공정방송’을 위함이다. 그렇기에 과거의 두 방송사와 YTN은 회사 쪽의 징계와 고소를 무릅쓰면서 ‘투쟁’을 해야 했고, 끝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러야 했다.
‘낙하산 인사’를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된 YTN 투쟁은, 지난 1990년 노태우 대통령 측근인 서기원씨를 사장으로 임명하면서 시작된 KBS 투쟁과 유사하다.
노조의 투쟁으로 YTN이 노조원 12명을 경찰에 고소한 것은, 지난 1992년 9월19일 MBC가 노조 간부와 노조원 15명을 고소한 것과 유사하다. 두 회사 모두 ‘업무방해’ 혐의로 노조원들을 고소한 것까지 같다.
1990년 4월 KBS투쟁
▲ 1990년 4월 리무진 방탄차로 2차 출근을 시도하는 서기원 KBS 사장(위쪽 사진), 같은 달 검은 리본을 착용하고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여성 앵커 이규원씨(아래 왼쪽 사진), 1992년 1월 복직을 요구하며 사장실 앞에서 단식투쟁 중인 안동수 당시 KBS 노조위원장(아래 오른쪽 사진) ⓒ
지난 1990년 2월 “KBS가 1989년도 예산 중 특근수당 회계를 부당 처리해 직원들에게 수당을 부당하게 지급했다는 사실을 감사원이 밝혀내고 특별감사에 착수했다”는 주장이 신문을 통해 보도됐다. 이에 감사원은 2월27일 전체회의를 열어 당시 서영훈 KBS 사장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에 대한 조치를 공보처 장관에서 통보했고, 결국 서 사장은 KBS 고위간부 10명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다.
노태우 대통령은 서 사장의 면직 제청을 수리했고, KBS 노조는 “정권의 충견이 또다시 KBS 사장이 되게 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4월3일 열린 KBS 이사회에서는 KBS 노조가 가장 경계했던 인물인 서기원씨가 사장으로 임명제청을 받았다.
당시 KBS 노조는 서기원 출근 저지 투쟁과 함께 제작거부 투쟁에 돌입했다. 이후 4월12일과 30일, KBS에 경찰 병력이 진입해 농성 중인 사원들을 연행했으며, KBS에 대한 공권력 진입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이어졌다.
CBS, MBC 등 전 방송계로 확대됐던 제작거부 투쟁은 5월을 기점으로 진정되었으며, KBS 노조 간부들은 5월18일 서기원 퇴진 운동 서명을 청와대에 전달하며 노태우 대통령을 향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KBS 7000여 사원들은 지난 한 달여간 공권력 투입에 따른 방송 제작거부 사태에 방송인으로서 가슴 깊이 아픔을 통감하면서 오늘부터 방송 제작복귀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KBS 전 사원들이 줄기차게 벌여온 서기원 사장 퇴진 촉구가 한 개인의 퇴진을 위한 것이 아닌 KBS가 진정한 국민의 방송,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으로서 거듭나기 위한 올곧은 목소리였다는 것이 국민의 여론을 통해 재삼확인 됐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KBS의 4월 투쟁은 정권 차원의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서 싸우며 언론 민주화 운동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IFJ(국제언론인연맹)는 “KBS 투쟁은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분투”라고 평가했다.
1992년 MBC 파업투쟁
▲ 1992년 10월 MBC 노조의‘공정방송 쟁취 및 해고자 복직투쟁-언론의 주인은 국민입니다’에 참가한 MBC 노조원들. ⓒ
1987년에 설립된 MBC 노조. 1989년 회사가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부인하면서 노사 간 갈등이 시작되었고, 매달 열릴 예정이었던 공정방송협의회도 회사 쪽의 거부로 열리지 않게 됐다.
이후 회사는 19991년 해고된 노조위원장의 대표성을 문제로 단체교섭을 회피했으며, 이에 MBC 노조는 한 발 양보한 안을 회사 쪽에 제시했으나 회사 쪽은 거부했다. 결국 MBC 노조는 1991년 5월1일부터 집행부 전원이 철야농성에 돌입, 9개월간 농성을 이어갔다.
1992년 8월, 노조는 해고된 간부 2명에 대한 복직을 요구했으나 회사는 이를 거부했고, 나아가 노조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인상 지급하고 단체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MBC 노조는 노조원 928명을 상대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 83.8%의 찬성으로 파업안을 가결시켰다.
당시 최창봉 사장은 9월7일 노조에 보낸 고지문에서 “노조는 노동쟁의조정법에 따라 지난 2일부터 모든 쟁의행위를 할 수 없으므로 불법파업을 즉각 중지하고 처벌이 있기 이전에 정상근무에 즉각 돌입하라”고 경고했다.
지방 MBC까지 파업이 이어지고 시민사회단체들이 투쟁을 지지하고 나서자, 회사는 9월19일 노조 간부와 노조원 등 15명을 ‘업무방해 및 노동쟁의조정법’ 위반으로 고소했다. 이틀 뒤엔 한 일간지에 광고를 내어 “노조의 파업은 불법이며, 해고된 2명의 사원은 사장실에 난입해 온갖 폭언 욕설과 함께 사장을 강압적으로 억류하는 등 반인륜적 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노조는 이튿날인 9월22일 회사와 최창봉 사장을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노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맞고소 했으며, 성명을 내어 “악화된 여론을 돌이키려고 일간지 광고에 억대의 허위광고를 싣다니, 귀한 회사 공금을 이렇게 허비해도 되는 건지 되묻고 싶다”고 비난했다.
MBC 노조의 파업 31일째인 1992년 10월2일, 검찰과 경찰은 MBC에 경찰을 투입했고, 노조원 300여명은 경찰 500여명에 둘러싸인 채 눈물을 흘리며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의 노래를 불렀다. 경찰은 항의 집회를 하던 노조원 300여명을 강제 연행했다.
당시 한 노조원은 취재 기자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기 오신 취재진들에게 고합니다. 이곳은 권력이 폭력을 휘둘러 언론자유를 짓밟는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런 폭력이 가능하게 된 데는 여러분 언론인들의 침묵도 일조했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이 안타까운 현장을 국민들에게 똑똑히 전해주십시오.”
10월21일 MBC 노사 간의 최종협상이 이뤄졌다. 회사 쪽은 ‘인사권은 회사의 고유권한’이라는 명분을 이끌어냈으며, 노조는 공정방송협의회 활성화 방안을 이끌었다. 파업 이후 노조 지도부의 구속 및 노조원 징계를 포함해 지방 MBC노조 간부 61명이 보복 징계를 당하는 등 후유증이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언론노련은 MBC의 50일간 파업 승리 요인으로 △조합원들의 단결력 △지방 MBC 노조의 동조 파업 돌입과 재건 △ 노조비상대책위원회가 만들어낸 파업투쟁속보를 통한 선전홍보 △시청자 대표로 대변되는 범국민대책회의 움직임 등을 꼽았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YTN지부 노조원 100여명이 9월 25일 오후 1시 서울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경찰 조사를 앞두고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과거 방송사 노조 투쟁과 너무나도 닮은 YTN 투쟁
2008년 YTN 투쟁과 과거 방송사 노조 투쟁은 닮았다. 구체적으로 △출근 저지 투쟁 △다른 언론사의 지지선언 △시민사회단체 및 시민들의 전폭적인 지지 △해외 언론단체의 높은 평가 △노조원 해임 △노조원 징계 △노조원 고소 등의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다만 과거 방송사 노조 투쟁과 YTN 투쟁의 다른 점은, 아직까지 YTN에 ‘공권력 투입’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YTN 주변 대한상공회의소 앞에는 전경 버스 3대가 상주해있으며 노조의 출근 저지 투쟁이 시작되면 100여명의 전경들이 노조 근처를 주시한다. 노조가 “폭력행위를 해서 공권력 투입의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는 투쟁 방침으로 평화적으로 투쟁을 이어가서 그런지, 아직까지 공권력 투입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과거 방송사 노조원들이 울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모습과 ‘공정방송’을 외치는 모습이 2008년 10월 YTN에서 재현되고 있다. 지난 1992년 MBC의 한 노조원이 취재 기자들을 향해 던진 “이 안타까운 현장을 국민들에게 똑똑히 전해달라”는 한 마디는, YTN을 취재하는 기자들에게 YTN 노조원들이 던진 한 마디였다.
시간이 흘러감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있다. ‘공정방송’을 향한 언론인들의 외침과 투쟁은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현재에도 나타나고 있고,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공정방송’ ‘언론자유’는 눈물겨운 투쟁 속에 겨우 터를 잡을 수 있고, 그럼에도 권력은 언제고 그 터를 빼앗으려고 한다는 것을 한국 언론사는 뚜렷히 기록하고 있다. 34년전 10월24일, 동아일보 기자 200여명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이 2008년 언론인들의 가슴에 뜨거움을 주는 것처럼, ‘YTN의 투쟁’은 34년 뒤 후배 언론인들의 가슴 한 편에 뜨거움으로 간직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