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 튀는 신경전 끝에 잠시나마 화해를 이루는 듯 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깊은 골이 파이고 만다...’
13회의 내용을 요약해본 것이다.
단 두 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두 줄의 내용을 이루는 ‘갈등의 골’이
왜 그토록 깊어질 수 밖에 없었는가를 요약하기 위해선,
더 많은 문장들을 필요로 하게 될 것 같다.
우선 문제 제기부터 해보자.
왜, 그들은 그처럼 극단적인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 이유는 근원을 해결치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가장 기본적인 첫 번째 문제의 근원은 음악관의 차이다.
애초부터 강마에와 강건우는 음악적 추구와 그 표출방식에 있어 상이했다.
그러나 사제지간이 됨으로써 이 문제는 잠시 덮어졌었다.
그런데 서로 간의 가르침과 배움이 채 무르익기도 전에,
그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만 것이다.
바로 감정의 문제다.
강건우가 상처 입은 것은 루미에 대한 그 자신의 감정이었다.
더욱이, 그토록 존경하며 따르는 스승이자 형과도 같은 강마에가
자신이 사랑해마지 않는 그녀가 진정 사랑하는 남자란다.
게다가, 애초부터 그에게는 지켜보는 것 외엔 별다른 선택권이 없었다.
어차피 강마에가 루미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는다 해도,
지금 막 스스로의 감정을 절절하게 인식하고 있는 루미가
자신에게 되돌아올 성 싶지는 않다.
그나마 강마에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외면적으로는 선택권을 부여해주긴 했었다.
하지만, 그 말 자체가 이미 강마에 또한
루미에게 마음이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건,
루미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그에게로 떠밀어 주는 것...
루미가 강마에에게 멋진 여자가 되고 싶은 것처럼,
건우 역시 루미에게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던 것이리라.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지만,
바로 그 순간 강마에는 그의 이러한 선택을 미처 기다리지 못하고
이미 그 스스로 제자 건우가 아닌 연인 루미를 택하고자 그녀를 만나러 간 것이었다.
이를 뒤늦게 접한 강건우의 마음은 다시금 상처 받는다.
감정적 상처를 이중으로 입은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이 상처받은 자존심을 감정적으로 분출하지는 못하고 있다.
루미가 그에게서 바라본 ‘착한 건우’의 가면을 절대 벗지 않은 채,
제법 쿨한 척 하면서 스승에게도 멋진 제자가 되고자 한 것이다.
대신, 그는 이를 음악적 자존심으로 메우려 한다.
감정적으로 반발하고 폭발하지 못한 감정들을
음악적 방식으로 분출하고자 꾀한 것이다.
여태껏 강마에가 가르쳐온 ‘기본’에 따르지 않고,
기존의 자기 성격에 맞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것으로써 말이다.
루미에게 전화를 걸어 강마에의 본마음을 전한 그 직후부터
이미 그의 지휘는 강마에의 가르침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를 새삼 눈으로 목격하게 되자,
강마에가 지정해준 것과는 완전히 상반된 해석으로
스승으로부터 더욱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강마에는 그로부터 비틀린 감정의 분출을 유도해내고자,
청신경 종양의 루미를 몰아붙였던 그 방식 그대로
그의 심리를 민망하리만치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몰아붙여 간다.
분명, 강마에는 그를 감정적으로 폭발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불혹의 흔들림에 처한 자신을 따끔하게 호통 치던 제자에게
맞는 것은 나중에 미루자고 했던 그 말을,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건우는 그가 원하는 방식의 분출을 끝내 하지 않고 있다.
이와는 달리, 마우스 필하모니가 오직 그 자신만의 영역임을 선포하고,
그 어떤 관여나 참견도 허용하지 않겠노라며
감정적 분노를 음악의 영역으로 이행시키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스승이 지정해준 베토벤으로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제대로 살릴 수 없기에,
낭만적 스타일을 보다 더 잘 살릴 수 있는 차이코프스키로 바꾸고 있기까지 하다.
그리고는 강마에의 세심한 안배인 줄도 모르고선,
자신들의 실력으로 정정당당히 페스티발에 입성한 줄로만 아는 것이다.
그래도 진실을 모르는 강건우의 자존심은 어느 정도 회복될 수 있었다.
감정적인 자존심의 손상을 음악적 자존심으로 메울 수 있어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일시적이나마 타협적 화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자존심 회복의 장이 되어 주리라 믿었던
공연 무대에 오르기 바로 직전, 이마저도 손상당하고 만다!
그의 실력이나 노력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유명 피아니스트 섭외 및
조직위에 대한 강마에의 반어법적 홍보라는 과정을 통해
그나마 기회가 주어진 것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강마에가 이미 그에게 말한 바대로,
스승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고 있던 꼭두각시에 불과했던 것이다.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던 음악적 자존심마저 처참하게 무너지고 만 것이다...
사실, 강마에가 이렇게까지 안배하고 관여한 데에는
이 천재적 재능의 수제자를 깊이 아끼는 마음뿐 아니라,
시향에서 쫓겨난 단원들의 복귀 문제와도 관련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리고 또 하나의 숨겨진 이유도 조심스레 추측해보게 된다.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무참히 찢겨져 버린 건우의 심리를
누구보다도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에,
음악적으로 이를 보상해주고 싶은 심리가 그 저변에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세심한 배려가 오히려 제자의 반발심을
더욱 증폭시키는 결과로 나타나고 만 것이다.
그런데 예고편을 보노라면, 이는 건우에게만 해당되는 사항 같지는 않다.
바로 강마에 자신에게도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듯 하다.
제자의 마음을 음악적 자존심으로 보상해주고자 했던 것이,
오히려 그 자신의 음악적 자긍심의 손상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이를 음악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감정에 그 책임을 전가시키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욱 그 골이 깊어지고 만 데에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지 않고 일시적 봉합을 꾀했기 때문인 것 같다.
감정적 자존심을 감정의 분출로 해결하지 않고 음악적으로 메우고자 한 것,
또 상처받은 음악적 자존심에 대한 책임을 감정에 전가시키려 하는 것 등 말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갈등의 골을 해결해줄 수 있는 방책이,
이미 이번 13회에 동시에 제시되어 있음도 발견하게 된다.
바로 각자 제 나름의 사정을 지니고 있는 단원들이다.
그 중에서도 김갑용과 하이든, 그리고 박혁권 부부의 모습을 통해서다.
왜냐하면, 이들도 자신들의 문제에 있어 처음엔 일시적 봉합만 시도했지,
그 근원을 해결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현실적 상황을 직면하고는 스스로 이를 수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갈등이 해소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먼저, 박혁권 부부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시향에서 쫓겨나고서도 임신한 아내를 위해 차마 입에 담지 못했다.
그들 가정에 가장 중요한 이 문제를 거짓으로 덮으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많은 이들 앞에서 진실이 들통 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도피하려고만 했던 박혁권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강마에가 진실을 펑하고 터뜨려준 것이다.
하지만, 그럼으로써 오히려 아내는 더욱 남편을 안타까이 여기며,
직장에서 쫓겨난 현실이 아닌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사실을 탓하는 것이다.
또, 이 힘든 상황이 이들 가족을 더욱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지게 만들고도 있다.
김갑용과 하이든 역시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김갑용의 치매는 이미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속도를 더디게 할 수는 있을지라도,
완벽하게 치유할 수 있는 병은 아닌 것이다.
이때도 처음 그 해결책을 제시해주고 있는 이는 강마에였다.
12회에서 강마에는 김갑용을 손수 마우스 필의 창고 연습실로 안내해,
그의 기억에 맞춰 현실을 조작해주고 있다.
이에 하이든은 크게 반발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 대한 기억만큼은 빼앗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그를 병원에 데리고 가 치료를 받게끔 하는가 하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아주길 눈물로써 호소하기도 한다.
이에 김갑용 또한 진심을 다해 그 바람을 이뤄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다.
이미 8회에서 강마에는 김갑용한테 그렇게 말한 적 있다.
현실이 그러한데 어쩌겠느냐고.
그리고 이제 고집불통 하이든마저 그와 같은 현실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리하여, 페스티발 공연 무대를 바로 눈앞에 둔 그 순간,
그녀는 스스로 하이든이기를 포기하고 그의 딸 영주가 되어주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갈등을 진정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상처의 일시적 봉합이나 지금 처한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문제의 근원을 정확히 찾아내어 그 자체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함으로써 절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를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비로소 새로운 시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결코 시작도 있을 수 없다.
강건우와 강마에, 이들 사제도 감정문제는 감정의 폭발로써,
음악적 의견 대립은 음악 그 자체로 분출했어야 했다.
그런데도 감정은 음악으로, 음악은 감정으로 자리바꿈 시켰기에,
오히려 그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고 심각한 오해마저 낳고 만 것이다.
또한, 이는 가족과의 불화가 잠시 묘사되고 있는 정희연이나,
곧 있으면 귀가 멀게 될 두루미 또한 마찬가지다.
사실, 루미 역시 지금은 일시적 봉합이자 도피이기도 하다.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