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빌딩 숲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네요.
17층에서 내려다보는 거리는 참 재밌어요.
출근 시간이 되면 빌딩 안으로 우르르 들어갔다가,
퇴근 시간이 되면 상자 곽을 뒤집어놓은 듯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저기 긴 우산으로 땅을 콕콕 찍어대며 걷는 남자,
문자를 보내며 건널목을 건너는 여자,
서점으로 들어가고 있는 여자와 남자...
모두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달콤한 퇴근을 맞이했겠죠..
우리 사무실 사람들도
회의가 끝나자마자 퇴근 준비 하느라 바쁩니다.
데이트 약속이 있는 것 같은 태훈씨,
태훈씨는 방금 화장실에서 옷까지 갈아입고 나가고 있어요.
그리고 립스틱을 고쳐 바르고 있는 민해씨,
가방을 둘러 맨 채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있는 주헌씨..
모두들 갈 데가 있는 모양인데..나만 갈 데가 없나 봐요.
난, 데이트라는 걸 해 본 지가..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이젠 데이트를 어떻게 하는 건지,
사랑이 어떤 마음인지도 모르겠어요.
심장이 무뎌질 대로 무뎌졌나 봐요.
마지막 사랑을 하고 난 후에 심장이 고장 나 버린 것 같기도 해요.
그 때 너무 아팠거든요.
지금은 오래돼서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 땐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힘들었어요.
살갗이 없는 사람처럼 아팠었는데..이젠 그 기억도 흐릿하네요.
시간의 힘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다시는 웃을 수 없을 것 같았고,
다시는 그 거리를 걸을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난 어느새 웃고..그 사람과 헤어졌던 거리를 걷고..
그렇게 아무 일 없었던 사람처럼..잘 지내고 있더라구요.
언제 누군가를 사랑했었나 싶게
너무도 멀쩡하게 하루, 하루를 살고 있더라니까요.
그런 내가 참 대견하고, 고맙죠.
하지만 한 편으론 사랑..이라는 게 참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게 좋아해놓고..지금은 얼굴조차 가물가물하잖아요..
갈 데가 없어도..약속이 없어도 난, 괜찮아요.
저 사람들도 솔로인 내가 부러울 때가 있을 거예요.
둘이 함께 있다고..늘 행복한 건 아니니까요.
난 지금 이렇게 혼자 있는 게..편하고 가벼워서..좋아요.
『 사랑이...사랑에게 말합니다.
솔로의 시간을 즐기라고,
둘이 되면 혼자였던 시간이 가끔 그리워질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