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잎 속의 검은 잎
- 기형도 -
두택시운전사는 어두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이따금 고함을 친다, 그때마다 새들이 날아간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하는 한번도 만난 적 없는그를 생각한다.
그 일이 터졌을 때 나는 먼 지방에 있었다
먼지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문을 열면 벌판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그해 여름 땅바닥은 책과검은 잎들을 질질 끌고 다녔다.
접힌 옷가지를 펼칠 때마다 흰 연기가 튀어나왔다
침묵은 하인에게 어울린다고 그는 썼다.
나는 그의얼굴을 한번 본 적이 있다
신문에서였는데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이 터졌다, 얼마 후 그가 죽었다.
그의 장례식은 거센 비바람으로 온통 번들거렸다
죽은그를 실은 차는 참을 수 없이 느릿느릿 나아갔다.
사람들은 장례식 행렬에 악착같이 매달렸고
백색의 차량 가득 검은 잎들은 나부꼈다.
나의 혀는 천천히 굳어갔다, 그의 어린 아들은
잎들의 포위르견디다 못해 울음을 터뜨렸다
그해 여름 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없어졌고
놀란 자의 침묵 앞에 불쑥불쑥 나타났다
망자의 혀가 거리에 흘러넘쳤다
택시운전사는 이따금 뒤를 돌아다본다
나는 저 운전사를 믿지 못한다, 공포에 질려
나는 더듬거린다, 그는 죽은 사람이다.
그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장례식들이 숨죽여야 했던가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내가 가는 곳은어디인가
나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서
그 일이 터질지 아무도 모른다, 어디든지
가까운 지방으로 나는 가야 하는 것이다.
이곳은 처음 지나는 벌판과 황혼,
내 입 속에 악착같이 매달린 검은 잎이 나는 두렵다
엄마 생각
- 기형도 -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비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시적 화자는 '어린화자 + 성인화자'이다. 마지막 연인 '아주~~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이라는 구절에서 보면 아랫목은 아주 뜨끈한 공간이지만 반대로 윗목은 차가운 공간이다. 어머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그의 유년시절을 마지막 구절에서 유추할 수 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복수는 나의 것'이라는 영화제목이 이 시를 패러디 한 것이다. 시의 해석이 너무나도 많아 짧은 답가로 해석을 대신한다. 그가 아직 살아있다면 이 시를 그에게 보내주고싶다.
꽃 잎
- 정희도 -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애달피 지는 저 꽃잎처럼 속절없는 늦봄의 밤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구름이 애써 전하는 말 그 사람은 널 잊었다.
살아서 맺은 사람의 연 실낱 같아 부질없다.
꽃 지네 꽃이 지네, 꽃이 부는 바람에 지네.
이제 님 오시려나, 나는 그저 애만 태우네.
바람이 부는 것은 더운 내 맘 삭여주려
계절이 다 가도록 나는 애만 태우네.
꽃잎 흩날리던 늦봄의 밤 아직 남은 님의 향기
이제나 오시려나, 나는 애만 태우네 .
시에 사용한 기법으로는 만해 한용운님의 대표적인 기법인 대구법(=통사구조의 반복)을 주로 사용하였고 윤동주님의 대표적인 시적 소재인 바람과 구름을 의인화 하여 서정적자아의 현실을 비유하였고 반복되는 구절을 통하여 공감각의 이미지를 형상화 하였다. 아직은 조금 서투르지만 김소월님의 진달래꽃에서 보이는 기법인 2연과 리듬을 파격으로 표현하여 제목과 주제를 상징하였다.
'꽃 지네 꽃이 지네, 부는 바람에 꽃지네' 이 구절을 사용하여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형상을 표현하였다.
'꽃 지네...꽃이 지네...꽃이 부는 바람에 지네...' 꽃은 그대로 있는데 중간에 글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형상으로 점점더 멀어지는 거리감을 표현하였다. 진정으로 좋은 작품은 구체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그 심상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를 배운다는 것은 삶을 배우는 것과 아주 흡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