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버블론이다. FRB 의장 재직 시절 경고를 무시하고 낮은 금리를 유지해 버블을 만들었다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린스펀의 속 보이는 핑계일까. 버블은 항상 터진 다음에야 그것이 버블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버블에 대한 판단은 어렵고 버블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다만 경제학자들의 버블에 대한 정의를 종합하면 버블은 △시장이 비효율적이거나 △투자자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거나 △우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정보의 부족, 단기적인 수요 불균형 등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대다수 사람이 군중심리에 이끌려 비이성적으로 자산가격 상승에 대한 '과신'이 형성되면 버블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단지 상황적인 우연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는 것이 버블이다. 게다가 지금은 금융상품 발달로 파생상품이 범람하면서 버블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다.
◆ BC 2세기 주식열풍, 16세기 튤립버블
= 투기로 인한 버블에 대한 최초 기록은 기원전 2세기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로마법에는 자유로운 자산 이전을 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리대금, 외환거래, 환어음 발행이 가능했다.
시장이 번성하면서 조세 징수, 신전 건립을 담당했던 법인체인 'Publicani'의 주식 투기 열풍이 발생했고, 이들의 투기로 인해 상당수 사람이 곤궁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근대사회에 들어서 가장 유명한 사례는 네덜란드의 '튤립 버블'이다. 16세기 중반 유럽으로 전파된 튤립은 네덜란드가 재배 및 신품종 개발의 본산지가 됐다.
튤립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독특한 컬러를 만들어 내고, 이런 희귀 품종은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한 달 만에 튤립 가격이 최고 5000배나 상승하는 비정상적인 시장이 형성된 것이다. 당시 기록을 보면 '황제 튤립' 한 뿌리면 암스테르담의 대저택을 살 수 있었고, 황소 1000마리를 팔아 튤립 뿌리 40개를 사며 기뻐했다고 한다.
1637년까지 튤립 버블은 최고조로 치닫다가 튤립을 더 이상 살 사람이 없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투매 현상이 나타나 가격은 순식간에 폭락했다. 이후 툴립 가격은 이전 가격의 1% 이하로 떨어졌고, 네덜란드 정부는 매매 가격의 3.5%만 지불하면 채무를 변제해 주는 조치에 나섰다.
결국 세계 최고 경제대국이던 네덜란드는 주도권을 영국에 빼앗기는 몰락을 겪게 된다. 이 밖에도 미시시피의 주식 버블, 영국 철도 건설 붐에서 시작된 철도 버블이 근대사회의 유명한 버블 붕괴 사례다.
◆ 美 부동산 버블이 부른 '빅뱅 세계경제'
= 최근 미국발 금융위기는 미국 부동산시장 붕괴로 이어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유발된 것이다.
미국 정부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미국 부동산 가격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면서 사람들은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아 투기 목적으로 집을 구입하게 된 것.
은행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을 판매하면서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도 쉽게 대출을 받아 부동산 투기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상황이 바뀌어 금리가 상승하면서 대출 이자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은 집을 팔기 시작했고 '매수'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부동산시장이 폭락한 것이다.
자산가격이 폭락하면서 사람들이 대출을 갚지 못하다 보니 은행들의 손실도 불어나게 된 것. 지금 금융위기의 시작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였지만 금융사에 대한 규제 완화로 인해 미국 투자은행들이 과도한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에 확대된 것이다.
2004년 6월 미국에서는 통합감독대상(CSE) 제도 시행으로 증권회사에 대한 총부채규제(부채 총액을 순자본의 15배 이내로 제한) 적용이 면제되면서 이들 투자은행의 레버리지는 평균 30배에 달했다. 고수익ㆍ고위험을 지향한 영업 전략을 택하면서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킨 것이다.
부동산 가격이 붕괴되면서 다양한 파생상품을 통해 부동산에 투자했던 이들 투자은행의 수익은 급락한다.
결국 5대 은행 중 리먼브러더스와 베어스턴스는 파산을 맞았고, 메릴린치도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합병되는 수모를 겪었다. 잠재적인 유동성을 무시한 과도한 파생상품 거래가 빚어낸 참극인 것이다.

= 돌이켜보면 미국은 20세기 세계 경제에서 버블의 역사를 기록해온 '버블 본산지'나 다름없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 발생한 버블은 '비이성적인 경제 낙관론'의 확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는 하루 1300만주 매도 물량이 쏟아지면서 이유 없는 몰락이 시작된다. 주가 폭락에 불안해진 증권사들은 고객들에게 매수를 권했고 외국 은행과 기업들도 콜시장에서 대출을 회수하면서 29일 300이던 다우지수가 1932년엔 41로 90% 가까이 폭락했다.
1913년 FRB 출현으로 불황이 사라질 것이란 낙관론이 형성되면서 미국 국민은 차입을 통한 주식 투자가 일반화될 정도로 주식시장에 대한 과도한 맹신을 갖게 된다. 이후 유럽 국가 경쟁력 향상, 미국의 수출 둔화세 등 악재가 눈에 띄었지만 이미 이성을 잃은 군중은 초단기 수익을 얻기 위해 과도한 투기에 나섰다.
'불안한 심리' 속에서도 투자를 확대하던 미국민이 순간적인 장세 하락에 불안감이 커지면서 너도나도 주식시장에서 돈을 빼는 군중 현상이 나타나 미국 증시는 이유 없이 폭락했다. 미국에서 발생한 닷컴 버블도 전형적으로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닷컴기업에 대한 과신'이 낳은 결과다.
2000년대 초 닷컴기업 열풍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나스닥지수는 5000선을 돌파했다. 당시에도 인터넷 기업은 적자를 면지 못했지만 '미래를 선도하는 사업'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돌면서 인터넷 기업에 과도하게 투자자금이 몰렸던 것이다.
당시에는 닷컴기업들이 짧은 기간에 기업을 알려 시장에 '눈먼 돈'을 유치하는 데 열을 올렸다. 매출이 1000만달러에 불과한 기업이 슈퍼볼 중간 광고를 하기 위해 400만달러를 쏟아붓기도 했다. 이후 닷컴기업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면서 5000을 돌파했던 나스닥지수는 몇 개월 만에 37% 하락한 3000선까지 폭락한다.
◆ 터져버린 버블 '잃어버린' 일본
= 1980년대 초에 시작된 일본 자산시장 버블은 버블 붕괴 후 경제가 버블이 생기기 전보다 악화된 전형적인 사례다. 무역적자가 심했던 미국은 1985년 9월 제임스 베커 재무장관이 플라자 호텔에서 달러 평가절하를 유도한 '플라자 합의'를 이끌어 낸다. 그 결과 1986년 1월에 달러당 259엔이던 엔화는 150엔까지 떨어져 일본 상품 가격은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엔고 현상으로 성장률에 위협을 받았던 일본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면서 경기 부양에 나선다. 1985년 5%였던 기준금리는 1987년 2.5%로 인하됐고, 이 결과 자산가격은 폭등하게 된다. 닛케이 주가는 1985년 이후 4년 동안 세 배 올랐고 부동산 가격은 5년 동안 4배 이상 올랐다. 1990년 당시 일본 전체 부동산 가치는 미국 전체 땅값의 4배 수준.
자산가격의 과도한 폭등을 감지한 일본 정부는 이후 다시 금리를 높이고 부동산대출 규제에 나섰다. 이에 따라 한때 4만엔에 육박하던 닛케이 평균 주가는 2003년 5월 8000엔으로 급락하고 부동산 가격도 폭락했다.
2006년 일본 평균 지가는 1991년의 4분의 1에 불과한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버블이 붕괴되고 일본은 장기적인 경기 침체를 겪으면서 '잃어버린 10년'을 맞게 된다. 버블을 치료하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자 주식은 계속 폭락하고, 이후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금리를 인하했지만 이미 죽어버린 경제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 버블붕괴 한가운데서 대책 구하다
= 역사적인 버블 사례를 볼 때 버블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투기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없다면 거품 붕괴 시점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하지만 버블 붕괴에 대한 대비가 어려운 것은 '지금이 버블인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버블은 우리에게 결코 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이르렀다. 사람은 그것을 피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배워서 피할 수 있는 방법도 모른다"는 비관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쳇말로 '증권가 객장에 아이를 업은 엄마들이 나타나면 주식시장은 버블'이라는 말이 있다. 너도나도 주식 투자에 나섰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블 붕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는 투자하지 말라"는 세계적인 투자 귀재 워런 버핏의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산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군중심리에 이끌려 '묻지마'식으로 투자하는 행태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버블 붕괴 후 대책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적인 경험을 종합해 볼 때 재정의 역할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국민총생산 대비 재정지출 비율이 11.7%(1927년)에서 21.4%(1932년)로 증가했다.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고용을 증대하며, 기업활동을 활성화해 불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일본도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의 위기를 재정 확대를 통해 이겨낼 수 있었다.
1998년에는 23조9000억엔에 달하는 긴급 경제 대책을 발표하는 등 '공공투자'를 확대해 2000년 이후 제조업 부활과 경기 회복을 이뤄낼 수 있었다. 지금의 금융위기에서도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정부들은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회사 살리기에 나서고 있다.
[출처] 매일경제 2008.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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