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는 얘기를 첫 수업시간에 들을 줄로 알았었습니다. 이번 달에 개봉한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서 푸하하 웃음을 터뜨려버렸네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예전 우리가 했던 그대로를 그 아이들도 할 거라고 믿어버린 이유는 대체
무엇이었는지…. 93년 그 봄날 첫 교생수업을 마치던 날 생각했었습니다.
공선배처럼 초중고등학교시절을 성당에서 지내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저에게는 하나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눈부시다고 밖에 할 수 없는 보조개와 미소로 기억되는 하나의 이름-아벨
아벨…창세기의 주인공 중 하나인 카인의 동생
그는 선생님이었습니다. 그것도 하늘같이 멀기만 한 사람이어서 미사해설을 맡아서 항상 마이크를 쥐고
살았던 그 당시에 잘나가던 나로서도 잘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요즘 아이 같으면 그가 어디에
사는지 나이는 몇 살 인지, 어느 대학에 다니는지 다 알아보고 그럴 테지만 그 당시의 저는 감히
그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저 그 분의 얼굴을 보는 것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건 지금도 별로 변하지 않았군요)
지금 생각에도 당시 그분이 내 마음을 알 수는 절대 없었을 것 같습니다만,
암튼 그는 내 앞에서 웃고 있는 눈부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군대를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건 저에게 형벌이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그 얼굴만을 기다리며 살던 제게 그 사실은 저의
세계를 포기하라는 말로만 들렸던 거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두가지 뿐이었습니다.
그 때 까지 한번도 직접 말을 못해 본 그 선생님에게 내 마음을 전하던가, 아니면 깨끗이 포기하는 것.
왜 나에게 이련 시련을 주시냐고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미사준비 하기보다 한 시간도 더 먼저 도착해서
성당 앞에 혼자 매달려 계시는 하얀 고상을 바라보면서 물었던 것 같습니다. 왜 내게 이런 아픔을
주시느냐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런 고민의 시간이 혼자만의 쇼~~였습니다만, 그당시 열세살 제게는 정말 심각하고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결정했어요. 그를 만나기로 - 한 것이지요.
가버리고 나면 이젠 시도조차 해 볼 수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고통과 기쁨은 동전의 양면 같은 거라고,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 내 마음을 말할 수는 없었지만, 그에게 무언가 앞 뒤 없이 중얼댔죠. 멋있게 말하는 것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거든요. 영원히 숨이 멈출 것 같이 긴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내게 위문편지를 보내달라며
상냥하게 웃어주었습니다. 내 주소를 묻고 적어가던 그의 손가락을 보면서도 어찌나 행복하던지요.
차마 눈을 쳐다보지는 못하고, 그의 볼에서 쏘옥 샘처럼 들어가던 보조개만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렇게나 두렵고 차갑던 시간은 찬란한 햇살처럼 빛났고, 그가 제대하던 몇 년 후 봄까지
글과 글은 띄엄띄엄 시간 사이를 오갔습니다.
그는 목련을 좋아한다고 했습니다. 내년 봄에 목련이 필 때면 제대를 할거야. 그 하얀 꽃이 참 보고 싶다.
라고 쓴 글이 아마도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그 봄에 그는 제대를 했고, 난 중학교 이학년이 되었으니까요.
아마도 그는 저라는 아이가 있었던 것도 기억 못하실 것이고, 자신이 목련을 그렇게 좋아했다는 것조차
잊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내게 목련이라는 꽃은 아직도 그 분의 얼굴이고 이름이고 보조개입니다.
국어시간에 김춘수님이 라고 했던 마음을 저는 너무나 절절히 이해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 전까지 봄에 피는 꽃이었던 목련은 그렇게 나에게 와서 눈부시게 하얀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 후, 몇 번 그 분을 뵐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 몇 번을 멈칫거리던 저는 조용히
뒷걸음질로 돌아나왔습니다. 내 마음속의 목련을 그 때 그 모습으로 남겨두고 싶었거든요.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남겨두는 법을 이제는 조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내년 봄 – 숨죽였다가 터져나오는 목련의 꽃봉오리를 보면
또다시 그 분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열 세 살 그 때의 그 마음과 함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