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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이영주 |2008.11.05 01:01
조회 178 |추천 0

 

 

아내가 결혼했다 (2008)

감독 : 정윤수

 

 

 

 

 

소설에서 영화로, 파격을 가장한 보수성이 극대화되다

 

 

이 영화, 별로 안 보고 싶었다. 이미 원작인 박현욱의 동명소설을 읽었고, 그때 이미 이 책의 다소 파격적인 문제제기 이면의 고루함과 보수성에 대해 침튀기며 이야기한 바가 있기에, 굳이 같은 내용의 영화를 보고 정력을 쏟아가며 딴지걸 필요가 있을까? 뭐, 그런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일행의 의견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무진장 보고 싶어하지만 시간이 자꾸 어긋나 만나지 못하고 있는 는 이미 다 봤다 그러고. ㅠㅠ 어쩌겠는가, 그냥 봤다.

역시나 2시간 내내 불편했다. 책은 그나마 톡톡 튀는 문체의 재미라도 느낄 수 있었지만, 영화는 손예진의 예쁜 얼굴마저도, 김주혁의 물 오를 대로 오른 연기마저도, 그저 불편하기만 했다. 책을 읽었을 때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했던 불편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스크린 위에서 구체적으로 시각화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재작년 책을 읽고 투덜거렸던 내용은 대략 이랬다.

 

사랑과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나도 하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그렇지만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이 중혼이어야 할까? 그래, 중혼, 좋다구. 그런데 중혼을 결정하는 아내에 대한 묘사를 봐. 술 잘 마시고 섹스 테크닉 끝내줘(사실 이 부분에 대한 묘사는 가장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기도 해. 구태의연한 남성의 섹스 판타지 그대로잖아?), 거기다 정리정돈이 취미이고 요리는 특기야, 육아에도 헌신적이잖아? 외모가 전형적인 미인이 아니라고 해서 그녀가 과연 평범한 여자일까? 범상치 않으니 중혼을 결정했다고? 그래, 그랬겠지. 그런데 그녀의 범상치 않은 특징들이 어쩜 이렇게 가부장적이니? 가부장제도에 충실할 수 있는 특성을 충족한, 특별한 여자나 돼야 중혼이라는 반反가부장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는 것, 너무 모순이지 않니? 그래, 이 책이 왜 축구 이야기로 시작해서 축구 이야기로 끝났는지 알겠어. 축구란 경기는 성별중립적인 스포츠가 아니잖아.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2002월드컵 이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축구는 여전히 남자 스포츠야. 오죽하면 우스개소리로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 베스트 3위가 축구 얘기, 2위 군대 얘기, 1위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란 이야길 하겠냐고. 그런데 문제의 그 '아내'는 이 축구마저 사랑해.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열혈 마니아야. 아내가 축구를 좋아하는 것과 주인공을 반하게 만든 아내의 특성이 아주 기막히게 들어맞지 않아? 물론, 주인공은 무엇보다도 아내가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더욱 좋았다고, 축구가 마치 자신이 좋아하는 아내의 특성 중 하나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축구는 주인공이 사랑하는 아내의 은유이지 않아? 아니면, 아내가 주인공이 사랑해마지 않는 축구의 은유든지. 물론, 여기서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서 상대편 골문에 넣는 스포츠가 아니라 가부장제의 은유이기도 하지. 내가 지금 억지 부리고 있니?

 

2년 전에 책을 읽고 투덜거렸던 불만들은 영화를 통해 더욱 극대화된다. 나도 나이가 두 살이나 늘었고, 그 동안 현재의 결혼제도, 가족제도가 얼마나 여성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도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자유로운 여성, 객사가 꿈이던 여성이 결혼을 두 번씩이나 선택한다는 건, 소설보다 더욱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동거는 도드라진 부분만 보는 거고, 결혼은 삶이 포개지는 거라고? 그래, 맞다. 헌데 그냥 독립된 개인 둘의 삶이 포개지는 게 아니라 남편, 혹은 가장이라는 역할과 아내, 혹은 며느리, 엄마라는 역할이 포개지는 거다. 그게 행복하다고? 그래서 또 결혼하고 싶다고? 참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작가의 필력과는 별개로, 역시 남성작가가 결혼제도 가족제도에 문제제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많이 아쉬워했더랬다. 그러나 영화는 그러한 문제제기의 진지함보다는 남자들의 성적 판타지, 그에 부응하는 손예진의 예쁘기만 한 외모와 나름 오락적이랍시고 끼워넣은 사랑과 전쟁 류의 신파에 집중함으로써 한계에 대한 아쉬움을 뛰어넘는 불쾌감을 선사한다.

이 영화는 실패다. 남성 판타지가 가득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남성관객은 여자가 두 번 결혼했다는 가정 자체에 불쾌감을 느낄 테고, 결혼제도에 대한 파격적인 질문에도 불구하고 여성관객은 결혼제도와 성역할의 억압적 성격을 미화시킨 영화의 전제와 남성 판타지의 향연에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도저도 아닌 거다.

그래서 사랑은 배타적일 수밖에 없는가, 오로지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이 사랑의 본질인가, 사랑의 본성에 맞는 결혼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꽤 진지한 물음은 이 영화에서 설 곳이 없다. 정윤수 감독의 전작이 뭔가 뒤져 보니 다. 하하... 이 감독, 결혼제도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고민이 참 많은 감독인 건 알겠는데, 아직 영화로 만들 만큼은 아닌 것 같다. 공부하세요! 그리고... 사람들 인터뷰좀 해보세요! 자기 판타지만 늘어놓지 말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끝.

 

 

영화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이 영화를 보며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져서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극장에서 나와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머릿속을 정리해보려 수첩에 끄적거렸다.

 

 

하나. 둘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게 가능해?

동시에 둘 이상에 대해 사랑의 느낌을 가지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해. 사랑은 이런 것이라고 정의하기 힘든 참 다양한 감정의 총합이지 않나? 그랬을 때 사랑으로 불리는 다른 종류의 감정이 각기 다른 사람에게 동시에 들 수 있다고 생각해. 하지만 감정과 별개로 둘 이상을 동시에 사랑'하는' 것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사랑하는 것은 동사니까. 행동이니까. 그것은 인간이 선택하는 거잖아.

그런데 참 우스운 건 나는 가능하지만 연애하고 있는, 혹은 결혼상태의 상대방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상상을 해보면, 그렇게 쉽게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는 거야.

여기서부터 헷갈리는 거야. 사랑이 도대체 뭘까? 지금까지도 모계사회를 이루고 살고 있는, 결혼제도가 없는 여인국 '자바'에서도 연애하는 상대남자 '아시'는 평생동안 몇명이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연애하는 동안은 한 명뿐이었잖아? 그럼 사랑의 본질적 속성은 배타적인 걸까? 다만 감정은 변화하게 돼 있고, 그래서 사랑했던 사람의 존재감이 나뭇잎처럼 가벼워질 수도 있는 거고, 대신 다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커지는 거고, 그런 건가?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하라고 법적 제도적으로 강제해 놓은 일부일처제 결혼제도가 사람의 본성과 그다지 맞지 않는다는 것은 알겠는데, 사랑이 뭔지는 도저히 모르겠다. 이런, 젠장.

 

둘. 성애화된 욕망과 사랑의 경계는 어디까지야?

이것 역시도 사랑이 뭘까, 와 같은 질문이지. 난 영화 속 남자주인공 덕훈이 인아를 사랑한 적이 한번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자신의 성적 판타지를 실현시켜 줄 섹스파트너가 필요했던 거고, 가사노동을 충실히 해줄 파출부가 필요했던 거고, 자신의 가족들을 수발할 도우미가 필요했던 건데, 인아가 그 모든 걸 갖추고 있으니까, 게다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그걸 하니까, 어머니와 창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여성, 이 세상에 절대 없을 것 같은 완벽한 존재인 인아에게 집착한 거라고 생각했어.

이혼을 포기할 때 덕훈이 하는 짓좀 봐. 인아더러 "바르셀로나" 해보라잖아. 그건 자신이 인아에게 성욕을 느꼈던 첫 순간을 재현해보면서 여전히 인아가 섹스파트너로 유용한지 시험해본 거지, 사랑을 확인한 건 아니잖아?

섹스와 관련된 용어 잇기 게임을 하면서 결국 남자는 섹스를 여자는 사랑을 선택해. 그래놓고 서로 사랑한대. 도대체 성욕과 사랑의 경계는 어디메쯤인 거야?

 

아, 머리 아파. 가족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그에 맞는 가족제도는 무엇인지, 굳이 가족제도에 사랑을 끼워맞춰야 하는 건지 이야기하다가 머리 아프다고 포기했는데, 이 영화를 보니 다시 그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미칠 것 같다. 그만 생각해야지.

그래, 이 영화에 대해 더 이상 딴지걸지 말아야겠다. 불쾌했던 건 영화 탓이 아니다. 이 영화가 건드린 주제, 즉 사랑과 결혼이 그리 만만치 않은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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