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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O

이준용 |2008.11.05 21:39
조회 28 |추천 0

미 대선이 오바마의 승리로 끝났다. 사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발화할 때 쉽게 떠올리는 이미지에 미국식의 대선투표방식은 그리 명료하게 겹쳐지지 않는다. 행정기관에서 유권자 명부를 만들어 국민 모두를 '당연히' 유권자로 인정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은 자발적으로 '등록'을 하는 사람만을 유권자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정치학에서 말하는 '안정적 양당제' 국가일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발적으로 '유권자 등록'을 할 나름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한 자일 가능성이 높기에, 당연히 미국의 정당은 중산층을 공략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비교적 진보적이라는 민주당과 보수적이라는 공화당의 차이는, 그렇게 크지 않다. 어쩌면, 우리나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차이보다도 작을지 모른다.

 

김규항이 일찍이 미 대선에 대해 "관심없다"는 태도를 보인건 그 때문이다. 어차피 '시민'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잔치에서 그만도 못한 사람들, 그러니까 유권자 등록을 하러 갈 시간이나 여유도 없는 사람들의 처지는 전혀 고려받지 못하기 마련이니까. 민주당이 아무리 공화당보다 '진보적'이라 하더라도, 그들은 고작해야 미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할 뿐이라는 거다. 우리나라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도 마찬가지다. 국가간의 정치 철학의 크고 작은 차이는 가령 당장 농산물 값이 폭락해 논밭을 갈아 엎어야 하는 농민이나, 부당 해고되어 단식 농성중인 공장 노동자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실상 한국에서 그들은 '시민'이나 '국민'이 아니니까.

 

오바마를 '오레오'라 부르는 일각의 분위기는 정확하진 않아도 방금 이야기한 종류의 시각과 어느정도 궤를 같이한다. 글이 심각해서 혹시 못알아챈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오레오'는 그 과자 '오레오'가 맞다. 겉은 까맣고 속은 하얀 그 과자. 흑인이지만, 거의 백인의 정체성을 가진 이를 약간 비아냥대는 단어다. 마이클 잭슨을 그렇게 불렀고, 마이클 조던도 그 불명예스런 별명을 달고 살았다. 마이클 조던이? 하고 의아해 할지도 모르지만, 마이클 조던은 확실히 '전형적인 흑인'과 미묘하게 달랐다(고 한다). 먼저 말투가 달랐다. 미드나 영화를 유심히 본 사람은 알겠지만, 흑인이 쓰는 영어는 백인이 쓰는 영어와 조금 다르다. 모음의 발음 방식이라든가, 억양이라든가, 그런 것들. 마이클 조던은 '백인 영어'를 썼고, 그가 하는 행동이나 생활 방식은 대체로 '백인 중산층'-혹은 거기 편입돼 선을 그은 흑인 중산층-의 그것과 비슷했다. 마이클 조던이 위대한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흑인'으로서 100% 받아들이기엔 껄끄럽다는 얘기다. 같은 수퍼스타지만 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오프라 윈프리와는 분명 다르달까. 여튼, 오바마에 대한 시선도 비슷하다. 백인인 어머니, 하버드 대학 졸업, 게다가 미국에서 노예 생활을 한 '진짜 흑인'의 후예가 아닌 케냐 이민자. 사실 오바마에게 큰 기대를 거는 것은 무리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자그마한 '차이'에 조금 더 주목하고 싶다. 이건 박근혜나 나경원을 지지하지 않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얼핏 보면 비슷한 문제일 수도 있다. 박근혜나 나경원이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어느정도 있는 것은 분명하고, 그들이 사실상 '한국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것도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 자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자식을 키우는 여성이면서도 여성과 장애인에 대해 가장 멸시어린 시선을 던지는 정당에 몸을 담고 있는 나경원이나, 그보다 인격적으로는 얼마만큼 괜찮은 사람인지는 모르나 정치적으로는 오십보 백보인 박근혜나, 그저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일 뿐이다. 나는 누구보다도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오길 염원하는 사람이지만, 한나라당에 적을 두고 있는 여성을 여성으로 간주할 생각은 없다. 그렇다면 오바마는 다르다는 얘긴가? 조금 다르다. 오바마는 자신의 '색깔'을 정치적 토양으로 활용-혹은 이용-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합'할 줄 아는 리더십을 갖춘 것 같다. 그가 노무현처럼 될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지만, 그가 획득한 상징적 가치들이 노무현보다 더 크다. 대상이 중산층에 한정되어 있다 하더라도, 어쨌거나 '흑인'이라는 집단을 향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박근혜는 아버지가 남겨준 정치적 자산 외에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아버지의 그늘은 그녀에게 안락하겠지만, 그 그늘에선 마초적이고 반 여성적인 냄새가 강하게 난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는 이 상황에서 별 의미가 없다. 나경원은 정당 대변인으로서 많은 말들을 쏟아내지만, 정작 그녀의 내부엔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내 생각에, 그녀는 자신이 '일반 여성'과는 '다른 여성'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그런 이미지를 솎아낼-그러니까 오바마 처럼-능력도 별로 없어 보인다. (전여옥에 대해선 말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난 지금도 그녀를 '전여오크'라 부르고 싶은 충동에 휩싸여 있다.)

 

오바마에 대한 우려라든가, 김규항과 같은 관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내가 지금 오바마를 찬양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이 지구의 정치사에서 신기원을 열었고, 미묘한 차이는 여러가지로 큰 균열을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조금 해본다. 그 균열의 여진이,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 그 모든 인종주의적인-다시말해 소수자에 대해 배타적인- 벽에도 자그마한 금을 만들기를 기대해 본다.

 

사족. 지금 이 순간 나는 또다시 이나라의 대통령에 대해 환멸감이 밀려온다. 이명박은 과거 10년의 정권을 이념에 치우쳐 실리를 잃은 정권으로 매도했고, 그 잃은 '실리'를 취하겠다고 노골적으로 '부시 프렌들리' 노선을 일관되게 걸었다. 그러나 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단 1년이었고, 사실 이명박이 준비해야 할 외교 상대는 부시 다음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잘 모르는 내가 보기에도 부시 정부는-공화당 정권은-그 생명을 다한 것처럼 보였었다. 이명박이 정말 '실리' 외교를 알았다면, 부시에겐 대충 하고 오바마나 힐러리에게 붙었어야 했다. (우리가 미국에 붙어야 한다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관점을 받아들인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최소한 관망하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 그러나 그에겐 몇 개월 앞을 내다볼 능력 조차도 없었다. 이제 그는 뒤늦게 오바마가 천명하는 '환경'이니 '지속가능한 발전'이니 하는 가치에 동조하는 척 한다. 그러면서 원전을 더 만들고 도로를 더 만드는 식의 개발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환경과 원전과 도로는 완전히 극과 극이다. 앞으로 4년동안 전혀 정치적 노선이 다른 미국과 '함께'해야 할텐데, 그에겐 별다른 대책이 있는것 같지 않다. 이명박은 실리도 잃고 명분도 잃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대통령으로 미국측에 비춰질 것이다. 관망만 하고 있었다면 교활하다는 소리는 들었을지언정 영리한 대통령이라는 인상은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못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외교는 아무데도 없었다. 오바마는, 우리의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우리들'에 대해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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