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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이야기

김동곤 |2008.11.10 16:09
조회 672 |추천 0


 

                       감자 이야기

                                                            김 동 곤            

오랜만에 소식이 없었던 대학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예전같이 모임을 가져야 한다는 긴박한 목소리였다. 대답을 하고 선뜻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자녀들 결혼 문제로, 바쁜 일상 때문에 그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그리고 연락처가 필요했던 것이다.

 풍습대로 혼례는 마치 그 부모의 인생살이에 활동만큼 돼 보이기도하며 청첩장은 성적표쯤 되는 것처럼, 보내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기대와 조바심을 갖게 된다.

 얼마 후 섣부른 시인이 쓴 글처럼 만들어진 초대장이 집에 도착하였다. 봉투를 여는 순간 나는 고지서를 받은 느낌이었다.

어김없이 혼삿날에 모두 모였다. 식장보다 오히려 피로연장이 더 일찍 붐빈다.

강남에 위치한 P호텔에서 바쁜 혼인식과 피로연을 마친 우리 일행은  강북방향의 몇 친구와 자가용 안에서 그 동안의 안부, 그날 결혼식 참관했던 일들을 얘기 하던중 주례 얘기로 이어졌다. 운전하던 친구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의 결혼식주례 경험담을 전해 들었다. 내용이 화재가 되었다.  주례를 맡았던 신혼부부가 찾아와서 삶은 감자 먹는 일로 다툼이 있은 후 ‘이혼을 하겠다’고 온 것 이었다. 신랑은 삶은 감자를 먹을 때 소금을 찍어 먹었고 신부는 설탕을 발라 먹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 하소연을 주례였던 그에게 고해바치고, 성격, 집안 관계 등을 덧붙여 사태가 심각해졌다. 둘 사이에서 목사님이 이렇게 답변한 것이다. “우리 고향은 강원도인데 고추장을 발라 먹는다..”라고 한마디를 했다는 바람에,듣고있던 우리도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전라도와 경상도는 김치를 걸쳐서 먹는데..” 하는 나의 말에 옆에 있던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웃으며 박수를 친다. 그쪽에 고향을 둔 친구였다. 맞다는 것이다.

오래 전 시베리아 여행 중 간이역에서 삶은 감자와 러시아의 딱딱한 빵을 사서 먹던 일이생각 난다 . 그 지방에서는. ‘감자와 함께 찐 대파’를 곁들여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말도 빠질세라 거침없이 이어진 여러가지 감자 먹는 너스레에 차중은 왁자지껄한 표정으로 더 이상의 기대감이 없어 보였다.

세상이 넓은것처럼 현대인들은 집을 떠나 타지방이나 외국으로 여행을 하게 되며 현지의 음식을 경험하게 된다.

 지구상에서 유난히 우리나라사람들은 타지에가면 그곳 음식물에 경험하기를 두려워한다. 고추장이나 컵라면, 그 밖의 여러 밑반찬을 휴대하고 먹기를 즐긴다.

물론 잘 먹으면서 여행 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지만 현지인들은 그러한 우리를 반기지 않는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냄새에 대한 거부감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평생을 함께 식사해야 하는 부부는 신혼 때부터 음식 성향에 따라 마찰이 있는거 같다. 먹고 자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서 ‘함께 사는 것이 가장 힘든 일' 이라고 어느 수도자가 말했다. 음식뿐 아니라 말이나 행동에서 자기 입장과 주장만을 내세우며 살아가는 것은 이기적이라고 말한다. 함께 사는 배우자의 입장에 서보는 행동은 이타적이라고 하겠다. 이해를 돕는다면, 배우자에게 행위의 잘못됨을 찾지 말고 나와 같지 않고 ‘다르다’ 라고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랑하며 존중하고 살겠다는 혼인서약서의 맹세처럼, 맞춰가며 살아간다고 흔히 말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상호간의뜻을 일치 시킨다고 말한다. 어쩌면 부부가 살면서 닮아간다는 것은,  좋고 나쁜 습관을 공유하며 장단 맞추듯 맞춰 살았기 때문에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열길 물속과 한 길 사람 속을 비교하며 모르는 일이라고 일관해 온 동양인에게 서양사람 들은 이런 방법을 제시한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을, 1피트(30.48cm)아래로 내려(움직여)서 그 곳 가슴 쪽 느낌으로 대화하라고 말한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

보리와 쌀의 양보다 감자를 더 많이 넣어 가마솥에 밥을 지어 먹던 그 때는, 어른이 우선 이였고 가난한 이웃과도 나누고 위로하면서 살았던 추억이 있다.

자연에서 얻은 먹을거리에 농약을 하고 유전자 변형을 시키고, 건강에는 무관하게 빠른 시간 안에 더 많은 소득을 올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우리 자연이 준 콩으로 가미하지 않고 정성들여 메주 빚어 첼로 음악을 들려주며 20년이 넘도록 간장 된장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만든 음식 재료는 사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선홍빛 고기를 선호하는 현대인이 성급하고 거칠어지는 이유는 동물들이 죽는 순간 받는  스트레스가 그대로 몸에 남게 되어 그것을 취하므로 그대로 흡수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에서 일어나는 질병을 해결하는 것 또한 자연에서 나는 평범한 먹을거리를 찾아 떠나라는 것이다. 

시집간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였다. 여교장 선생님의 학생지도방법이 떠오른다. 학교길의 군것질을 대신해서 감자와 고구마를 삶아 등교하게 했으니 얼마나 현명한 교육자였는가.

 배고픔을 이기려 온 가족이 모여 먹던 그때 그 하지감자 한 바구니를 아랫집 친구가 가져왔다. 합천에  혼자되신 어머님께서 금년농사지은 것이라며 같이 나누어 먹자고 하였다. 압력솥에 찌면 편리하다.모두모여 오손 도손 먹어야겠다.  제일위층의 젊은 부인은 아주 먼나라가 고향인데 무엇으로 어떻게 준비해줄까. 나와 친구는  김치를 곁들여 막걸리 잔을 돌려 볼 작정이다.

                                                              EA082107D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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