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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이 앗아간 장밋빛 인생

박종구 |2008.11.10 20:46
조회 281 |추천 4

 

 

하늘이 열린다는 개천절 하루 전, 그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열린 하늘만큼이나 침통했다. 지금도 열린 하늘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며 눈물 흘리고 있지는 않을까. 또한, 이 세상에 대한 원망을 풀지 못한 채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을까. 故 최진실 씨의 사망 소식을 접한 나는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무언가에 사로잡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시간이 흐르면 잊히겠지...'라는 말. 수많은 아픔과 고통을 위로해왔던 이 흔하디 흔한 말을 이번에는 무시하고 싶다. 아주 철저히.

 

 

 

# 20여 년 동안 우리에게 많은 추억과 아름다운 미소를 남기고 떠난 故 최진실 씨의 안타까운 삶을 들여다본다. 자살 직전, 그녀는 어머니에게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녀가 세상 사람들에게 그토록 섭섭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그녀의 자살. 어쩌면 이미 예견되었던 건 아닐까? 악성루머, 악성댓글.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잔인하기에 착한 딸이자 든든한 누나였으며 무엇보다 삶의 원동력이라고 했던 사랑스러운 두 아이의 엄마를 무참히 짓밟았는가! 지금 들끊는 분노의 감정은 너무도 정당하다.

 

 

 

# 故 안재환 씨의 자살로 야기된 사채에 대한 심각성이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을 즈음, 비극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있었다. 어느 증권회사 여직원 백모 양이 퍼뜨린 악성루머가 바로 그것이다. 괴소문의 내용은 故 안재환 씨의 사채 40억 가운데 25억이 故 최진실 씨의 돈이라는 것이다. 이는 삽시간에 인터넷을 통해 퍼져 나갔고 그 여파는 실로 그녀에 대한 사랑과 애정보다 더욱 빠르고 강력했다. 이 괴소문으로 말미암아 故 최진실 씨는 순식간에 절친한 후배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비정한 사채업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 것이다. 이것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악플러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사실확인도 안 된 근거 없는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인 일부 네티즌들은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될 잔인한 말들을 쏟아붇고야 말았다.

 

 

 

# 이미 4년 전, 이혼이라는 큰 아픔으로 우울증이라는 영혼의 감기에 걸린 그녀였는데... 그때도 악성댓글에 시달렸던 그녀다. 오죽하면 한동안 인터넷을 끊고 살았을까. 이번에도 그랬다. 가혹한 악성루머와 그에 동조한 악성댓글 때문에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녀. 그녀가 자살한 다음 날은 그녀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두 아이 중 큰 아이의 운동회 날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아들이 힘차게 운동장을 뛰는 모습을 그녀는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설렘은 이내 세상이 그녀에게 보낼 따가운 시선에 대한 두려움으로 변해가고 있었으리라.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 연예인들의 계속되는 자살 이유 중 가장 큰 하나가 바로 인터넷이라는 괴물 속에서 태어나 너무나 빠르게 자라는 악성루머와 악성댓글 때문이다. 故 정다빈 씨도 그랬고 故 유니 씨도 그랬다.

 

 

 

# 이번 비극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故 안재환 씨와 그의 아내 정선희 씨 역시 악성댓글 때문에 커다란 정신적 고통과 함께 물질적 어려움도 함께 겪어야 했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악성댓글은 가장 무서운 살인마가 되어 또 다른 생명을 노리고 있다. 언제, 누구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에 더 큰 공포가 서려 있다. 악성댓글의 표적에 일반인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쌍방향 인터넷의 흐름 속에 일반인들 역시 인터넷을 통해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사람에게 거의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40kg의 체중감량 후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여학생이 그 후, 악성댓글에 괴로워하다 자살한 사건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다.

 

 

# 故 최진실 씨의 생전 활동 모습

 

# 말 한마디에 천냥 빚 갚는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언어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인터텟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말 때문에 상처받으려면 그 말을 던지는 사람과 직접 마주하거나 전화통화를 하거나 아니면 지인들의 입을 통해 전해 듣게 되는, 아주 제한적 여건이었다. 또한, 악의적인 말을 하는 사람 역시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된 상태이기에 쉽게 함부로 내뱉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 故 최진실 씨는 2004년 이혼의 아픔을 극복하고 2005년 드라마 '장밋빛 인생'을 통해 재기에 성공한다. 밥보다 수제비를 더 많이 먹으며 자랐다는 그녀의 어릴 적 어려웠던 시절을 아는 우리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우리 역시 그녀의 오뚝이 같은 삶의 모습을 통해 적지않은 힘을 얻은 것 또한 사실이다. 선망하는 연예인의 삶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코 무시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에서야 2005년 KBS 연기대상 최우수 연기자 수상 소감을 본 나는 아려오는 가슴 한구석 때문에 움찔하고야 말았다. 네티즌들이 주시는 상이 너무 값지고 크다고... 그리고 너무 감사하다고 한 그녀였는데... 그녀의 장밋빛 인생을 무참히 짓밟은 존재 역시 네티즌들이라니... 일부라고 하기엔 그녀에겐 너무도 가혹한 형벌이었으리라.

 

 

 

 

#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려 애썼던 그녀였기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애도의 글들이 그녀의 쓸쓸한 미니홈피를 한조각 한조각 채워가고 있다. 나 역시 그 조각들 중 한조각을 채우고 왔지만 그것만으로는 허전하고 가슴 저린 마음을 달래기엔 너무도 부족하다. 자살 이틀 전, 미니홈피에 올린 지인과의 마지막 사진 속의 그녀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그녀만의 몫이었을까. 또다시 침통하다.

 

 

 

 

# 두 아이와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 나지 않는다. 배우 최진실이기보다 다정하고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자 했던 故 최진실 씨. 그래서 우리의 마음은 더욱 아파진다.

 

 

 

 

# 그녀의 장밋빛 인생도, 두 아이의 건강한 삶도 모두 새벽이슬처럼 사라졌다. 악플러들의 상당수는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거나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고 점점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들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열등감 또는 사회에 대한 막연한 원망이 익명성이라는 검은 가면을 쓰고서 거침없이 인터넷을 휘젓는 현실이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자신이 악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주저 없이 공격하는 것이다. 내가 피해자 일수도 때론 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심각한 고민을 해야 한다.

 

 

 

# 어느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공지 내용이다. 故 최진실 씨의 자살과 관련한 거의 모든 기사에 대한 댓글을 차단했다.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일 뿐, 이런 식의 대응은 근본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인터텟이라는 시대적 매체를 우리 사회에서 없앨 수는 없지 않은가.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집합체인 인터넷에서의 댓글 차단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떡하나.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인터넷 실명제 법안에 나는 적극, 찬성한다. 실명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악성댓글의 뿌리라고 볼 수도 있는 익명성을 없앨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게시글이나 댓글의 이해당사자가 삭제를 요청할 경우, 아무런 검토 없이 24시간 내에 그 게시글이나 댓글을 삭제하겠다는 것에는 절대, 반대한다. 그렇게 된다면 정당하고 바른 비판의 목소리가 쥐도 새도 모르게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 실명제가 도입된다면 글을 올리는 사람에게 법적, 사회적, 양심적 책임을 즉각적이고 실질적으로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함부로 악성루머나 악성댓글을 올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해당사자의 요청 시에는 무조건 삭제한다는 것은 인터넷 통제를 통한 정권 연장의 수단으로 밖에는 비치질 않는다. 인터넷 실명제에 대해서 반대하는 야당의 태도 역시 못마땅하다. 반대의 이유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검은 가면을 쓰고 무책임한, 악의적인 독설을 뿜어내는 이들의 표현이 계속 자유로이 활개치도록 보고만 있을 것인가. 이들의 표현은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방종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이른바 '최진실 법'을 두고 힘겨루기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에서는 고인에 대한 진정한 명복을 비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겉으로는 애도한다지만 그들의 발언에서는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한 특별한 소재로 삼으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정치인들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이제 모든 국민은 체감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 역시 이러한 악성루머와 악성댓글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음을 각성하여 성숙한 여론 형성을 할 때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변해야 한다는 것. 그 어떤 제도나 법도 변하지 않는 사람을 아우를 수는 없다. 사이트 운영자의 윤리의식 강화와 더불어 누리꾼들의 자정능력을 지속적이고 실질적으로 키워나갈 수 있는 방안 마련 등의 범사회적 노력이 절실하다.

 

 

 

 

# 그녀의 자살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남겨진 이들의 찢어지는 아픔과 슬픔이 생생히 살아있다.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어머니가 계시다. 가난했던 시절, 함께 의지하며 그래도 꿋꿋이 자라주던 동생이 있다. '최진실 사단'이라 부를 만큼 끈끈한 우정으로 함께했던 많은 지인 또한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 엄마가 아파할까 봐 아빠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고 하는 두 아이... 이 아이들의 고통은 도대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세상 사람들에게 섭섭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엄마를 가슴 속에 묻어둔 아이들의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까? 쉽게 용서할 수 있을까? 부디, 다시는 이 불쌍한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말기를.

 

 

 

 

# 故 최진실 씨의 자살이 그녀의 가족과 지인들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있다. 바로 유명인이 자살했을 때, 사회적으로 확산하는 '베르테르 효과'가 그것이다. 그녀의 자살 직후, 일반인들의 자살이 잇따랐다. 이를 베르테르 효과라 단정 짓는 이유는 바로 그들의 자살 방법이 故 최진실 씨와 같기 때문이다. 즉, 모방자살이다. 故 안재환 씨의 자살 후에도 그의 자살 방법을 그대로 모방하여 자살 한 사람들이 발생했다. 얼마 전에는 자살사이트에서 만난 세 명이 故 안재환 씨와 같은 방법으로 자살했다. 베르테르 효과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심각하다. 베르테르 효과는 그 옛날 한때 번졌던 자살 바이러스가 아니다. 지금 우리 사회 전체를 감싸고 있다. 故 최진실 씨의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앞으로도 이러한 모방자살이 잇따르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다. 그 순간만 넘기면 된다고 하는데...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 순간순간은... 육으로는 짧은 시간이지만 영으로는 너무도 길고 긴 시간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 순간 역시 시간에 불과하기에 세월의 흐름 앞에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만약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그것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 또한 너무도 잘 안다. 자살의 문턱에 섰을 때... 나의 떨리던 그 손끝과 스쳐지나가는 아련한 추억들은 지금 떠올려도 끔찍하다. 그 심정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그 절박한 순간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엔 오직 단 한 사람뿐이니까. 바로 나. 20여 년 동안 우리네 삶 속에서 함께 숨 쉬며 친구처럼 누나처럼 언니처럼 동생처럼 딸처럼 손녀처럼... 그렇게 그렇게 밝게 웃던 그녀의 모습은 영원히 함께 할 것이고 우리는 그런 그녀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에...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그때는 배우 최진실이 아닌 인간 최진실로서 장밋빛 인생을 행복하게 그려나가기를... 다시는 고통 없는 세상에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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