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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주전자 外 _ 유홍준

김선미 |2008.11.14 05:39
조회 91 |추천 0


 


 


노란 주전자

유홍준



그날, 누이는 누런 주전자를 들고 뙤약볕 속을 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거시기가 달린 주전자를 들고 가고 있었다 목마르고 목말라 아버지의 거시기를 빨며, 불볕 속을 가고 있었다 누런 아버지의 거시기가 흘러 얼룩이 진, 검정 무명치마를 입고 가고 있었다. 옆구리 찌그러진 주전자 되어, 한 됫박 눈물 찔끔거리며 돌아올 수 없는 길 가고 있었다 이놈의 주정뱅이, 이놈의 아편쟁이, 이놈의 개망나니, 어머니가 주전가를 마구, 마구 짓밟으며 울부짖었다 주전자만 보면 지금도 나는, 긴장을 한다 주전자처럼 어깨를 오므리고, 파르르 떠는 나는 노란 주전자의 노란 주전자, 머리뚜껑이 들썩거리는









펌프

유홍준



열다섯 살,

식어빠진 수제비를 퍼먹었다



봄날이었다

한낮이었다

빈집이었다



한 바가지 물을 목울대에 퍼 담고 펌프를 자아댔다 우리 집 펌프는 왜 이리 자꾸 물이 빠지는 거냐 어머니 푸념이 떠올랐다 사라져버린 아버지를 죽이고 죽이고 죽이고 어서어서 고장나버려라 이깟 펌프 이깟 생, 갓 수음을 배운 나는 거칠게 거칠게 펌프를 자아댔다



살점을 모두 뜯어 수제비를 끓여놓고

집 나간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봄밤이었다



달빛이었다



헛짓이었다



펌프 탓이었다









가족사진

유홍준



아버지 내게 화분을 들리고 벌을 세운다 이놈의 새끼 화분을 내리면 죽을 줄 알아라 두 눈을 부라린다 내 머리 위의 화분에 어머니 조루를 들고 물을 뿌린다 화분 속의 넝쿨이 식은땀을 흘리며 자란다 푸른 이파리가 자란다 나는 챙이 커다란 화분모자 벗을 수 없는, 벗겨지지 않는 화분모자를 쓴다 바람 앞에 턱끈을 매는 모자처럼 화분 속의 뿌리가 내 얼굴을 얽어맨다 나는 푸른 화분모자를 쓰고 결혼을 한다 제멋대로 뻗어나가는 넝쿨을 뚝 뚝 분지른다 넝쿨을 잘라 새 화분에다 심는다 새 화분을 아내의 머리 위에 씌운다 두 아이의 머리 위에도 덮어씌운다 우리는 화분을 들고 사진관에 간다 자 웃어요 화분들, 찰칵 사진사가 셔터를 누른다







아홉시

유홍준





나는 아홉시 방향으로 나아갔다 목적이 없는 아홉시, 앞으로 나란히 아홉시, 아홉시를 향해 나는 아홉시를 밀며 나아갔다 아홉시를 뚫고 나간 육체의 흔적으로 내 시계는 찌그러졌다 터져나갔다 내 인생의 아홉시는 시계 밖으로 나가 떨어졌다 아홉시 방향에는 목화밭이 있다 가시울타리가 있다 새 떼가 울고 있다 길쭉한 저수지가 있다 땡볕 아래 익사한 송아지가 눕혀져 있다 성황당이 있다 한 해에 한 명씩만 넘어간느 고갯마루가 있다 커다란 소나무 가지에 동아줄이 덜렁거리고 있다 동아줄에 달린 시체가 덩그렁 덩그렁 아홉시를 알리는 종을 치고 있다 아직도 아홉 살짜리 형이 그 종을 치고 있다









베개

유홍준




지푸라기가 든 베개를 베고 잤다
베개를 던지며 놀았다 지푸라기가 튀어나왔다
지푸라기처럼 푸석한 아이였다 가벼운 아이었다 쓸모없는
아이었다 머리가 아팠다 늘 6교시를 다 채우지 못했다
뒈져버려, 아버지 목침을 던졌다
아버지 목침이 내 머리를 깼다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가슴이 아팠다 베개가 늘 젖었다
젖은 베개를 그냥 농속에 집어 넣었다 싫었다
베개 위에 얼룩꽃이 자랐다
어머니 메밀이 든 베개를 만들어 주신다
참숯이 든 베개를 사 오신다
가설무대 약장수가 파는 바이오 磁力베개를 사 오신다
아직도 뒷골이 아프냐 큰애야
제 윗도리를 벗어 둘둘 말고 자는 인부처럼
잠이 달아야 한다 큰애야 뭐라 해도 베갯속은
잘 말린 人肉이 최고라더라 큰애야
머리 아픈 건 말 할 수 있지만 가슴 아픈 건 말 할 수 없어요
어머니,
허벅지 베어낸 살을 말려 내 베개 지으신다
어머니 또 내 베개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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