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에른스트 얀들
숲은 여늬때처럼 서 있다
숲은 여늬때와 달리 서 있다
숲은 수수하게 서 있다
숲은 의젓하게 서 있다
가시들을 두려워하는 자
숲으로 오지 않는다
숲으로 오는 자
가시들을 두려워한다
가시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숲으로 온다
누가 가시들을 두려워하는가
누가 가시들을 두려워 않는가
누가 숲으로 오지 않는가
누가 숲으로 오는가
누가 여늬때처럼 서 있는가
누가 여늬때와 달리 서 있는가
누가 의젓하게 서 있는가
누가 수수하게 서 있는가
누가 서 있는가
숲이 서 있다
누가 서 있는가 숲이
숲이 서 있다 숲이
태연히 섰는 숲
숲을 이루고
태연히 섰지 않는 숲
숲을 이루지 못한다
태연히 섰는 숲 그리고 태연히 섰지 않는 숲
숲을 이루고 그리고 숲을 이루지 못한다
차라리 푸른 숲을
태연히 섰는 숲 푸른 숲 이루고
태연히 섰지 않는 숲 푸른 숲 이루지 말았으면
누가 서 있는가 숲이
푸른 숲을
누가 푸른 숲을
그냥 푸른 숲을
누가 그냥 푸른 숲을
아주 푸른 숲을
누가 아주 푸른 숲을
수수하게 푸른 숲을
누가 수수하게 푸른 숲을
의젓하게 푸른 숲을
혹은 노루귀풀
혹은 폐초
혹은 산사나무
혹은 가랑잎
진찰
에른스트 얀들
의사님 나 멈출 수 없어요 설사
나 줘요 약 좀 설사 멎게
의사님 나 멈출 수 없어요 아야 아야
나 줘요 약 좀 아야 아야 멎게
의사님 나 멈출 수 없어요 머리 욍욍 잠자려 하면
나 줘요 약 좀 머리 욍욍 멎게
의사님 나 멈출 수 없어요 발작
나 줘요 약 좀 발작 멎게
큰 정적 앞에서
에른스트 얀들
그것은 안개가 되어
나의 둘레를 빙빙 돈다
그것은 안개가 되어
나의 속으로 밀려든다
그것은 안개가 되어
나의 입으로 품어 나온다
그리곤 거짓말을 쓴다
죽음은 건강하다
소음 소음 소음 소음
나의 둘레를
소음 소음 소음 소음
나의 속으로
소음 소음 소음 소음
나의 입에서
소음 소음 소음 소음
큰 정적 앞에서
숱한 길들
에른스트 얀들
숱한 길들이 내 안에서 교차한다
말하자면 나는 늘상
여러 길을 한꺼번에 가고 있다
나는 가난하다
하지만 생각한다
가령 이 길들 중에 하나가
벗어날 출구라면
난 부유할 것이라고
숱한 길들이 내 안에서 교차한다
말하자면 나는 늘상
여러 길을 한꺼번에 가고 있다
나는 가난하다
하지만 생각한다
가령 이 길들 중에 하나가
벗어날 출구하면
난 한결 더 가난할 것이라고
숫자
에른스트 얀들
입 하나
발 둘
대륙 다섯
손가락 열
그리고 털들
입 하나
발 둘
대륙 다섯
손가락 열
그리고 털들
그리고 털들
그리고 털들
모순이 아니야
에른스트 얀들
인생은
점점
길어진다
말하자면 점점
짧아진다
늘어나지는 않는다
입맞춤
에른스트 얀들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그래
도서관
에른스트 얀들
숱한 문자들
단어들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
숱한 단어들
문장들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
숱한 문장들
텍스트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
숱한 텍스트들
책들에서 빠져나올 수 없음
숱한 책들
묻어 있는 숱한 먼지
착한 청소부
먼지떨이 들고 서 있음
일곱 아이들
에른스트 얀들
애들 몇이나 두었습니까? - 일곱
둘은 첫번째 마누라한테서
둘은 두번째 마누라한테서
둘은 세번째 마누라한테서
그리고 하나
꼬마놈은
내가 그냥 낳았다오
영혼
에른스트 얀들
아이가 가리킨다
한 손으론
저 하늘을
또 다른 손으론
갓 세운
무덤을
그리곤 웃는다
할아버지가 저 밑에 있는데
어째서 저 하늘에
있다는 거냐
아 그렇지 영혼은
잊고, 기억하고
에른스트 얀들
나는 나를 나 위에 앉힌다
나는 나를 비운다
나는 나를 헹구어 나 속으로 집어 넣는다
나는 나를 쏟고 흘린다
나는 나를 잊는다
나는 나를 기억한다
나는 나를 얻는다
나는 나를 마무리짓는다
나는 나를 꼬여 나 속으로 넣는다
나는 나를 지치게 한다
나는 나를 잊는다
나는 나를 기억한다
보디빌딩
에른스트 얀들
누워 있다가
서 있다가
걸어가다가
서 있다가
누워 있다가
서 있다가
걸어가다가
서 있다가
누워 있다가
서 있다가
걸어가다가
서 있다가
누워 있다가
삶
에른스트 얀들
산다
들러붙어 있다
산다
들러붙어 있다
두 눈을
사물에
두 눈을
사물에
두 눈을
사물에
꼭 붙인다
본다
본다
본다
낱말들한테서는
에른스트 얀들
낱말들한테서는
전혀 기대하지 말라
낱말들은 너를 위해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낱말들은
탐욕스럽게 와서
너와 네 원고지를
범람한다
낱말들이 네게
행하는 것이 아닌
네가 가장
하찮은 낱말일지라도
낱말에 행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무엇인가 된다
다섯번째
에른스트 얀들
문 열려
한분 나와
한분 들어가
네 번째
문 열려
한분 나와
한분 들어가
세 번째
문 열려
한분 나와
한분 들어가
두 번째
문 열려
한분 나와
한분 들어가
다음번째
문 열려
한분 나와
몸소 들어가
안녕 의사님
두 손을 위한 작품
에른스트 얀들
오른손이 손뼉을 친다
왼손이 손뼉을 친다
두 손이 손뼉을 친다
오른손이 오른손 안으로 손뼉을 친다
왼손이 왼손 안으로 손뼉을 친다
두 손이 두 손 안으로 손뼉을 친다
두 손이 오른손 안으로 손뼉을 친다
두 손이 왼손 안으로 손뼉을 친다
각기 손이 두 손 안으로 손뼉을 친다
오른손 없이 손뼉 친다
왼손 없이 손뼉 친다
두 손 없이 손뼉을 친다
당신 곁에 누워
에른스트 얀들
나는 당신 곁에 누워 있다. 당신의 두 팔은
나를 안고 있다. 당신의 두 팔은
한결 나의 존재 그보다 더한 것을 안고 있다
당신의 두 팔은 내가 당신 곁에 누워
당신이 두 팔로 나를 안아줄 때라야 있는
그 현존을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