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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外 _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김선미 |2008.11.17 01:04
조회 32 |추천 0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전쟁이 끝나 형이 돌아왔을 때

그의 이마에는 자그만 은별이 붙어있었는데

그 별 밑은

끝없는 나락이었다.



베드덩 대전투 때

포탄조각이 그를 때렸다.

아님 그륜발트에서였다던가

(그는 자세한 내막은 잊어 버렸다)



여러가지 언어로

말을 자주 했었지만

그중 그가 가장 즐겨 쓴 언어는

역사의 언어였다.



숨이 막힐 때까지

그는 자기의 죽은 친구에게 돌격을 명령했다.

롤랑이나 코발스키나 한니발



악을 썼다.

이게 마지막 공격이노라

칼타고도 곧 함락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 흐느끼며

나폴레옹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그가 자꾸자꾸

얼굴이 파리해지는 것을 보았다.

지각능력을 빼앗겨

그는 서서히 하나의 석상으로 변해갔다.



음악을 듣는 귀, 조개껍질 속으로

돌덩어리가 수풀에 들어섰다.

안면의 근육이

굳어지고

두 눈은 멀고 건조한

단추로 변한 채

그에겐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만 어떤 감촉뿐

그는 손으로 무슨 말을 연신 해댔는데

오른 손에는 소설

왼 손에는 병사의 회고록이 들려 있었다.



그들이 내 형을 잡아다

마을 밖으로 쫓아내 버렸다.

그는 매년 가을이면

야위고 아주 고요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집 안에는 발을 들여놓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를 찾아 창문을 두드려 댄다.



우리는 거리를 함께 걷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내 얼굴을 쓰다듬는 그는

빗방울의 눈먼 손가락이다.








우리들의 두려움은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우리들의 두려움은

잠옷을 입지도 않고

부엉이 눈을 하고 있지도 않다.

귀중품 상자의 뚜껑을 열지도 않는다.

촛불을 끄지도 않는다.



죽은 자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들의 두려움은

주머니 속에서 발견되 종이조각

"보이체크 자식더러 조심하라구 해

들루가 거리가 온통 야단이라구"



우리들의 두려움은

태풍의 날개를 타고 솟아오르지 않고

교회당 첨탑 끝에 내리지도 않는다.

땅에 밀착해 있다.

서둘러 꾸린 보따리.

따스한 옷가지와

먹을 것과

무기가 담긴 보따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리들의 두려움은

죽은 자의 얼굴을 하고 있지 않다.

죽은 자들은 우리에게 친절해서

우린 그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닌다.

같은 담요 밑에서 잠을 자고

그들의 눈을 감겨 준다.

그들의 입술을 제자리에 놓아 준다.

마른 장소를 골라

그리고 그들을 묻어 준다.



너무 깊지 않게

너무 얕지도 않게.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돌은

완벽한 짐승이다.

자신에 꼭 알맞게

한계를 의식하며 산다.



딱 알맞게

자갈됨의 의미로 가득차



아무에게 아무 것도 상기시키지 않는

향기로

아무에게도 겁주지 않고 욕정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의 열정과 냉정은

정당하고, 권위에 차 있다.



자갈을 손 안에 쥐고

나는 답답한 회한에 잠긴다.

그리고 그것의 몸에는

거짓스런 따스함이 스며든다.



- 자갈을 길들일 수 없다.

끝까지 자갈을 고요하고 맑은 눈초리로

우리들을 들여다 본다.







나무 주사위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나무 주사위는 오로지 그 외모로만 설명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러므로 그것의 본질을 영원히 알 수 없는 벌을 받았다.

아무리 재빨리 둘로 갈라 보아도, 그 즉시 그것의 내부는 벽이 되고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신비가 일개 껍데기로 변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둥근 돌 한 개, 쇠막대기, 나무

입방체 따위에 관한 심리학적 기초를 세우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혓바닥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나도 모르게 나는 그녀 이빨의 경계선을 넘어 버렸고

그녀의 날랜 혓바닥을 삼켜 버렸다. 그것은 지금 내 안에서

살아 있다. 일본서 잡은 물고기처럼 내 심장에 솔질을 한다.

수족관의 유리벽인 줄 알고

내 횡격막에 솔질을 한다. 밑에 가라앉은

진흙을 휘젓는데

내가 목소리를 빼앗은 그녀가 그 큰 두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을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

그녀에게 말문을 열 때 어떤 혓바닥을 써야 할지

- 도적맞은 혓바닥을 써야 할지, 아니면 내 입 속에서 넘치는

그 육중한 감미로움에 녹아 버린 혓바닥을 써야 할지.







신화

즈비그니에프 허버트




처음엔 밤과 폭풍의 신이 있었다, 눈이 없는 새까만 우상이었다. 그 앞에서 그들은 벌거숭이로 피투성이로 길길이 날뛰었다. 후에 공화국 시대에는 수많은 신이 있었다. 마누라와, 애새끼들과, 삐꺽거리는 침대와 그리고 하릴없이 터지는 천둥 번개와 함께. 나중에는 미신을 믿는 신경병 환자들만이 주머니 속에 소금으로 만든 작은 상(像)을 넣고 다녔다, 빈정댐의 신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당시 그보다 더 위대한 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야만인들이 왔다. 그들도 역시 그 자그만 빈정댐의 신을 높이 평가했다. 발굽으로 짓밟아 음식에 양념으로 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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