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대학로에 갔다. 마침 딸래미한테 아동극도 보여주고, 환상적인 놀토의 하루를 보내고자 함이었다.
예상대로 연극 관람은 즐거웠고, 점심도 맛있었다. 하지만 거리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넘쳐났고, 그에 비례해서'돈으로 사는 낭만'만이 판을 친다. 예전엔 대학로에서의 시간이 마냥 즐거웠는데, 이젠 나도 늙어버린걸까. 갑자기 어딘가 조용하고 차분한 곳으로 피신하고 싶은 생각만 드니...^^
조용한 곳을 찾아가려는 열망을 담아 우린 발걸음을 옮겼다. 남편의 제안대로 '낙산'에 한 번 가보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뒷길로 올라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작은 골목이 나온다. 구불구불한 골목 벽엔 재미난 낙서가 가끔 보이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붉은 글씨로 씌어진 '참을 인' 이었다. 마로니에서 예술을 논하던 사람들도 골목안의 치열한 삶 속에선 '참을 인' 을 무수히 가슴에 새기었을 것이다.ㅎㅎ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손으로 꾹꾹 눌러 쓴 듯한 글씨의 간판들이 우리를 반긴다.
도식적이고 화려한 도시의 간판들에 비하면 모양새는 좀 빠지지만 멋으로 치자면 한수 위이다.
2006년도에 공공 디자인 작업의 하나로 '낙산프로젝트' 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 작업의 결과, 낙산으로 오르는 길 곳곳에서 설치미술과 벽화를 볼 수 있다.
낡고 노쇠했을지도 모를 낙산마을의 풍경이 덕분에 생동감있어 보인다.
드디어 낙산에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아기자기해서 즐거운 산행(?)이었다.
성곽도 재정비가 잘 되어있었다. 맑은 날엔 멋진 서울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을 듯 하다.^^

평화로운 낙산의 풍경을 지나 성곽 너머 삼전동엔 재개발 준비가 한창이다.
'오랜시간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을 많은 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상념에 잠시 젖어본다.
개발은 편리하지만 때론 냉정하다.
그나마 그것이 반드시 지속가능한 개발'이 되기를 기도할 수 밖에.

낙산까지 들어오는 마을 버스 3번, 출발하는 뒷모습이 정겹다.
덧붙이자면 노선을 알짜배기로만 잘 정한 것 같다.^^

낙산 성곽을 한바퀴 둘러보고 나서, 올라 온 반대방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 올 때 처럼 포근한 풍경이 우릴 반겨주었다.
자유롭게 색칠해 진 다양한 문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이 골목엔 숨겨져 있다.
낙산의 예술을 멀리서 고고하게 바라보는 그것이 아니었다.
때론 힘들고 각박한 삶속으로 온전히 스며든 예술이었다.
그 힘으로 경사진 계단을 오르는 무수한 발걸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을 것이다.
계단길을 한참내려오니 이승만 대통령이 기거했다는 '이화장'이 나온다.
이제 낙산마을 탐방을 마칠 때가 된 것이다.
초행의 낙산이었지만 우린 길을 잃지 않았다.
낙산 어디에서나 내려오는 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의 정다운 골목길처럼
'그저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가면 길을 찾을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이 낙산마을에 펼쳐지길 바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