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한 남자가 있었어요.
그 남자는 매일 아침 동내 가게에 들려서 복숭아 통조림을 샀어요.
가게에 들려서 뭔가를 열심히 고르는 척을 하다가
항상 계산대 위에 올려 놓는 건 복숭아 통조림이었어요.
사실 남자는 복숭아 통조림은 필요 없었거든요!
복숭아 알레르기가 있어서 어디선가 복숭아 향만 풍겨와도
살 갓에 붉은 반점이 돋았거든요.
그러니까 남자한테 중요한 건 복숭아 통조림이 아니라
매일 아침 8시 30분에 그 가게를 찾아 오는 누군가가 중요했던 거에요.
가게 문을 열며 환하게 주인한테 인사하는 상냥한 목소리
냉장고 문을 열고 캔 커피 하나를 꺼내는 유난히 하얗고 길다란 손
언제나 동전이 수북하게 들어있는 보라색 가죽 지갑
매일 복숭아 통조림 하나를 들고 그녀 뒤에 서서 계산을 기다리는 일이
남자에겐 희망의 전부였어요.
물론 그때 까지만 해도 여자가 남자에게 말을 걸어올 거란 걸
남자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단 걸…….
그 여자
한 여자가 있었어요.
그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일 아침 캔 커피를 사러 갔어요.
여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자의 좁은 집은 그녀가 사다 나른 캔 커피로 비좁았죠.
왜 하필 커피를 시작을 했을까? 후회가 돼요.
혹시 그쪽도 복숭아 통조림을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죠?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차마 하지 못했죠.
하지만, 마시지도 않는 그 커피를 사기가 지겹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여자는 그 커피를 남자에게 내밀며 말을 걸었어요.
마시라고……
이제 두 사람은 같이 살기로 했어요.
남자가 그녀의 집 가득 늘여 놓은 캔 커피를 본 순간……
여자가 남자의 집에서 장식장 가득한 복숭아 통조림을 본 순간……
두 사람은 각자 선채로 호 홉을 가다듬어야 했죠.
매일 아침 그 가게에 가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은……
같이 살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두 사람은……
이미나 / 그 남자 그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