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취업 100% 희망의 말뚝을 박아라 지역 발전의 축은 지역에서 발견한다
국내 유일 마필관리 전문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
학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네비게이션에 찍힌 길을 따라 가다보니 저 멀리 푸른 초원이 보였습니다. 초원에는 잘생긴 준마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거나 산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눈에도 국내 유일의 마필관리 전문학교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교장 고성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해발 고도 500미터에 위치한 이 학교는 꽤 오래 전에 특성화의 길을 시작했습니다. 오늘 얘기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특성화 1세대 학교로서 그 명성을 지켜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앞서 소개한 두 학교(한국뷰티고등학교·충북반도체고등학교)가 이제 막 특성화와 마이스터를 시작했다면 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는 이미 정착 단계에 들어서 있는 곳입니다. 특성화 학교로서 성공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사례입니다. 폐교 위기까지 갔던 -9;한국경마축산고등학교(이하 경마고)-9;에서 들어보겠습니다.
◆한국 경마 80년 금기의 역사를 넘다
△한국마사회 서울경마장 1명 △한국마사회 부산경마장 4명 △한국마사회 제주육성목장 2명 △한국마사회 장수 경주마 목장 5명 △대기업 승마장(한화로얄새들승마클럽, 베르아델 승마클럽) 3명 △내륙말생산자협회 말 목장 2명 △동일계 진학 4명.
21명 중 17명 취업. 경마고의 2008년 졸업생 현황이다. 전체 21명의 졸업생 중 17명이 자신의 전문기술을 살려 취업하는 데 성공했다. -9;성공했다-9;는 말이 어색할 수도 있다. 이들에겐 -9;모셔져 갔다-9;는 말이 더 어울린다. 국내 유일의 마필관리 전문교육을 받은 최고의 마필관리사로서 취업은 3년 전 입학과 함께 보장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고성기 교장은 "전문계 고등학교의 목표는 단순합니다. 기술인재를 육성해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하는 것이죠. 저희 학생들은 취업률이 90%에 육박합니다. 입학 할 때부터 자기가 어디 가게 될지, 무슨 일을 할 지 분명히 알고 들어옵니다"라고 말했다. 취업률 90%. 지금의 우리에겐 꿈처럼 느껴지는 아득한 소리다.
사실, 취업의 -9;양-9;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앞서 열거한 것처럼 이들의 직장은 대부분 -9;빵빵하다-9;. 속된 말로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는 마사회가 가장 흔한 선택지고 못해도 대기업 승마장이다. 더러 목장으로 직행해 목장주의 꿈을 키우는 학생들도 있다. 경마고 학생들이 3학년 때 경마장이나 승마장으로 실습 나가 받는 평균 임금은 월 80~90만원. 이들이 졸업 후 초임으로 받는 연봉은 평균 2천만원 안팎이다. 취업의 -9;양-9; 만큼이나 그 -9;질-9; 또한 남부럽지 않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 있는 것은 고등학교 3년을 통해 배운 기술과 지식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자적인 전문성은 단순한 취업을 넘어 금기의 벽을 허물었다. 우리나라 경마 80년 역사상 여성 마필관리사는 없었다. 500kg이 넘는 경주마를 다루는 험한 일을 하기에 여성은 부적합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또 이 분야에 도전하는 여성 또한 없었다. 금기의 벽은 이진실(22)씨에 의해 깨졌다. 그녀는 제주도 민간목장에서 어린 말을 길들이는 전문 트레이너로 3년 간 활동한 뒤 지난해 국내 최초로 부산경남경마공원의 여성 마필관리사가 됐다. 그녀는 경마고 1기 졸업생이다.
▲ 고성기 교장이 -9;패독-9;에 있는 경주용말 품종 더러브렛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패독은 말들이 산책을 하거나 운동하는 -9;운동장-9;이다. 경마고에는 경주용말 21마리가 학생들과 동고동락하고 있다.
◆폐교 직전의 학교를 구하라
특성화는 기왕에 잘하던 학교가 더 잘하기 위해 택하는 수순이 아니다. 그것이 아니면 생존 자체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잡는 마지막 동아줄인 경우가 많다. 경마고는 한 때 폐교가 검토되던 소위 막장까지 간 학교였다.
2001년 60명 정원에 15명이 지원했다. 미달은 10년 전부터 계속 되어온 익숙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2001년의 경우는 조금 더 특별했다. 15명의 학생 중 졸업할 때 교실을 지킨 학생은 겨우 6명뿐이었다. 정원의 10분의 1 밖에 학생을 받지 못한 학교는 도교육청으로부터 사실 상 사형 선고를 받게 됐다. 그 때 시작한 것이 바로 특성화고등학교로의 전격적인 변화였다.
"정말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젖소부터 시작해 한우, 돼지, 양, 사슴, 말, 닭까지 가축이란 가축은 다 해봤습니다. 학교를 문 닫게 할 수는 없고 축산을 포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스러져 가는 학교의 현실은 쉽게 막을 수가 없었어요.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준도 악화일로를 걸었던 것이 사실이구요."
평교사 시절 경마고에서 교편을 잡은 바 있는 고성기 교장은 당시의 어려움을 이렇게 회상했다. 숙의 끝에 그 누구도 도전하지 않은 마필전문 학교로 변신을 시도했다. 마지막 몸부림은 학교에 빛을 열어주었다. 마필관리라는 생소한 분야는 그 때까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교에도 이렇다 할 전문 과정이 없던 불모지였다. 동물자원학과나 수의학과에서 유사한 교육을 실시하기는 했어도 어디까지나 과목의 일부에 불과했다.
말의 탄생과 훈련, 경주, 관리,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교육하고 관리하는 것은 경마고가 최초였다. 이전에는 대부분 경마장이나 승마장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일을 배우는 도제식이었다. 체계적인 교육이 전혀 없던 분야에 경마고가 -9;가설-9;을 세우고 10년에 가까운 -9;실험-9;을 거쳐 -9;사실-9;을 증명한 것이다. 고등학교에서도 마필관리 전문가를 기를 수 있다는 -9;사실-9;을 말이다. 폐교 직전의 학교가 지금은 내신 30%의 학생들이 도전장을 내미는 잘나가는 전국구 학교가 됐다.
10일 마감된 올해 신입생 지원자 중 절반은 전북 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그 중에는 지난해 떨어지고도 올해 다시 도전장을 내민 학생도 있었다.
▲ 최준호 교사가 애완용말인 셔틀랜트 미니어처 포니를 소개했다. -9;포니-9;는 다 자란 키가 1m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달콤한 특성화 열매의 쓴 뒷맛
경마고의 놀라운 반전 얘기는 이쯤에서 접어두자. 서두에서도 밝혔듯 오늘 해야 할 정말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다. 오기홍 교사는 특성화는 -9;중독-9;과도 같다고 했다. "특성화를 처음 시작하게 되면 나라에서도 그렇고 교육청에서도 그렇고 지원을 많이 해줍니다. 그래서 학급도 늘리고 시설도 갖추고 이것저것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런 지원은 어디까지나 단기적이라는 겁니다. 잘라 말하면 특성화 지정 받더라도 3년 정도 지나면 예산도 끊기고 관심도 줄어든다는 겁니다. 그 때는 어떡합니까. 혼자 살아남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외부 지원의 달콤함은 오래 가지 않는다. 결국 학교 스스로 비전을 갖고 자립하는 것이 특성화고가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다. 그것은 결국 학교운영과 경비라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아무리 참된 가치와 전문화된 교육 과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학교운영이 어려우면 그 어떤 것도 실현할 수 없다.
경마고는 공립학교로 전교생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수업료를 면제 받는다. 마사회를 비롯해 외부의 지원도 일부 있지만 예전 같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 사료 값이 오르면서 학교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같은 난관을 타개하기 위해 경마고는 몇 년 전부터 -9;학교기업-9;이라는 형태로 자립의 토대를 갖춰 나가고 있다. 경마고에는 현재 번식마 8두를 비롯해 승용마 21두, 망아지 4두, 애완용 말 2두 등 총 35두가 있다. 이 중에서 번식마가 학교의 주 수입원이다. 새끼를 낳아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학교운영비로 쓰는 것이다.
휴양마 사업도 하고 있다. 경주 중 부상을 당한 말 등을 학교로 데려와 치료하고 보호하며 관리비를 받는다. 내년에는 실내승마장을 만들어 지역 주민들에게 승마교실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실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모두 학교 수익과 관련돼 있다. 동시에 학생들의 실습과 교육이라는 목적도 함께 달성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경마고의 사례는 특성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학교운영이 가능해야 함을 말해주고 있다.
▲ 삼성전자가 기증한 경주마. 애니콜이라는 이름의 이 말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줬다.
경마고의 사례를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지면을 통해 소개된 세 학교의 놀라운 유사성을 정리하는 것으로 국내 사례를 끝마치려 한다. 첫째는 망하기 직전의 학교가 되살아났다는 것이고 둘째는 변화의 원동력이 학교 내부에서 시작됐다는 점이다. 셋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 또한 내부, 특히 교사들에게 있었다는 점이고 넷째는 특성화를 시작하는 초기 단계에는 뭉칫돈이 들어가는 만큼 외부 지원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섯째는 특성화는 가장 잘 할 수 있는 분야, 그 중에서도 유망한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유념해야 할 것은 외부 지원은 머지않은 시점에 끊긴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다. 다음 주부터는 2회에 걸쳐 마이스터 제도의 본고장인 독일의 직업교육 사례를 소개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